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연합뉴스
최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교보생명과 FI 사이의 풋옵션 계약 관련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교보생명 관계자가 4월 12일 교보생명의 FI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대표와 교보생명보험 임원들을 사기 및 배임 혐의로 처벌해달라고 제출한 진정에 따른 조치다.
검찰에 제출된 진정서에 따르면, 어피너티는 지난 2012년 8월 대우인터내셔널로부터 교보생명의 지분 24%를 매수하기로 하고 교보생명 임원과 공모해 2015년 9월까지 기업공개(IPO)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신 회장이 어피너티가 원하는 시기에 시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주식 전부를 매수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풋백옵션’에 합의하도록 했다. 당시 교보생명 임원은 풋백옵션의 구체적 내용을 신 회장에게 알리지 않은 채 불리한 내용의 계약을 서명하게 했다는 것이 진정서의 주요 골자다. 신 회장이 계약 옵션 사항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터라 2018년까지 IPO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것. 또한 일부 임원들이 긴밀하게 어피너티의 담당 회계법인과 공모해 시가보다 2배 비싼 풋옵션 계약을 체결한 의혹도 제기했다.
먼저 2배나 비싼 풋옵션 계약은 계약 체결 당시 시행 중이던 금융감독원 감독지침인 ‘사모펀드(PET)의 옵션부 투자’ 관련 사항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옵션행사가격은 행사 당시 시가(시가가 없는 경우 본질 가치)를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또 금감원이 2010년부터 강화된 ‘기업인수시 FI에게 제공된 풋백옵션 공시’도 시행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풋백옵션 관련 정보는 인수기업의 재무구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투자 정보인 만큼 주요사항보고서를 통해 즉시 공시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를 어길 시 자본시장거래법 위반으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교보생명의 경우 신 회장 개인과 FI 간 계약 체결로 과징금 등 처벌은 면했다. 이에 노조는 수사 대상 임원들이 금융당국의 법조항이나 감독지침을 알고 회사와 관리임원들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신 회장 개인이 FI와 계약을 체결토록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도 “교보생명의 경우 대주주인 신 회장 개인과 FI 간의 계약인 만큼 과징금 부과 등 처벌을 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교보생명의 인수합병을 전제로 한 분쟁 사유는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교보생명은 생명보험사 중 유일한 오너기업이다. 신 회장은 창업주 고 신용호 전 회장의 장남으로 서울대 출신이다. 수사 대상인 임원들 역시 서울대 출신들로 신 회장의 측근으로 꼽힌다. 그런데 진정서에 따르면 측근이던 임원들이 신 회장을 부추겨 신 전 회장의 조기퇴진을 이끌었고 이 과정에서 그룹 주요 보직에 안착했다고 한다. 현재의 상황 역시 FI를 개입시켜 신 회장의 오너경영체제를 흔들어 경영까지 좌지우지하려는 저의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진정서에 실려 있다. 이런 까닭에 검찰 수사 범위에 교보생명 전현직 임원들까지 포함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교보생명 전현직 임원들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일요신문DB
하지만 FI 컨소시엄은 계약 주체가 신 회장인 점이 분명하며 신 회장의 지분 인수 제안을 받아들였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지난해 11월 신 회장과 교보생명이 IPO를 약속대로 이행하지 않아 손실이 발생했다며 주당 40만 9000원에 풋옵션을 행사한 것은 정당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신 회장은 주당 24만 원 정도를 제시하며, FI가 제시한 적정 매도 가격이 너무 높다고 맞서고 있다.
양측은 현재 중재재판을 앞두고 있다. FI 측이 지난달 중재를 신청하면서 이미 중재인을 선임했고, 교보생명도 조만간 중재인을 선임할 예정이다. 비공개 단심제로 법원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중재 판정은 최장 1년 6개월 동안 진행되지만 빠르면 5개월, 늦어도 1년 안에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대한상사중재원의 평균 중재 기간이 7개월인 점을 감안하면 교보생명의 상장 계획은 연내 어렵다는 분석이다.
중재 결과가 FI의 승리로 나올 경우 신 회장은 1조 원 이상 최대 2조 원가량을 어피너티컨소시엄에 배상해야 하기 때문에 교보생명의 경영권이 제3자에게 넘어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FI 컨소시엄에는 어피너티 외 IMM PE, 베어링 PE, 싱가포르투자청(GIC)으로 구성됐다. 이날까지 신 회장의 교보생명 지분은 약 34%이며 어피너티컨소시엄은 약 24%다. 신 회장의 지분은 약 34%이지만 중재 패소 시 지분 등 개인 자산을 처분해야만 한다. 신 회장이 상장예비심사 청구를 목표로 IPO 실무작업을 서둘러 진행하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중재재판이 마무리되기 전 공모가를 확정해 FI 측이 요구한 풋옵션 가격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이에 어피너티가 아닌 제3의 FI를 구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란 지적도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신 회장으로선 제3의 FI를 찾을 수도 있지만 시간이 많지 않아 중재재판을 통해 가격이든 기간이든 적정선을 찾는 데 열중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중재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인 데다 당사자가 주주들이라 회사가 이 사안에 대해 설명하기 좀 그러하다. 또 당사자인 주주가 얘기하면 되지 않느냐하겠지만 중재가 들어간 상황에서 말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답변했다.
이어 “(2012년 계약당시 풋옵션 조건 사안에 대해 제기되는 의아한 부분 등은)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며, 중재상태라 법률대리인들이 중재재판에서 (시시비비를) 가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찰 수사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검찰 수사 대상인 2012년 풋옵션 계약 당시 관계자 중 한 명은 이미 회사를 그만둔 상태로 “할 말이 없다”며 전화를 급히 끊었으며, 임원으로 재직 중인 또 다른 관계자는 “관련 사항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검찰 수사기간은 6월까지로 알려졌다. 중재재판과 함께 검찰수사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국내 생명보험사 중 유일한 오너기업인 교보생명과 신 회장의 경영권이 위태위태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