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바둑커플 1호 권효진과 웨량의 연애 시절 모습.
1995년 입단한 권효진은 프로바둑기사 권갑용 8단의 장녀다. 지금 프로기사를 목표로 공부 중인 딸까지 입단하면 ‘국내 최초 부녀 프로기사’, ‘한중 기사커플 1호’라는 타이틀에 ‘국내 최초 모녀 프로기사’도 추가된다. 이제 14년 차 주부인 권효진은 바둑계에서 가장 바쁜 ‘엄마’다. 프로기사를 지망하는 딸 지우를 위해 도시락을 싸고, 매일 왕십리 한종진도장까지 데려다주는 게 기본 일과다. 서울 반포에서 회원제 클럽 서래바둑연구실을 운영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은 여자바둑리그(서울 부광약품) 감독으로 한국기원으로 출근한다. 매월 초가 되면 월간바둑에 줘야 하는 연재물 ‘권효진의 중국바둑 이야기’ 원고 마감에 머리를 싸매고, 시간이 생기는 대로 새로 연 ‘바둑맘 TV’라는 유튜브 채널도 업데이트한다.
중국리그에 진출하고자 마음먹은 한국기사들은 대부분 권효진을 찾아와 상담받는다. 국내 대회가 줄어들면서 예전보다 한국기사들이 중국리그 진출에 적극적이라고 한다. 권효진은 “올해 여자 갑조리그엔 김채영과 조혜연, 여자을조리그는 최정·오유진·김혜민·조승아가 나선다. 예전과 달리 네임밸류 있는 기사는 팀마다 경쟁이 붙어 계약을 위해 별도로 노력할 필요가 없다. 특히 최정·오유진·김채영 등은 팀에서 부르는 게 값이다”라고 말한다. 한국바둑계 마당발이자 ‘슈퍼맘’인 권효진 6단을 반포 서래바둑연구실에서 만났다.
한중 바둑커플 2호가 될 이슬아 5단과 뤄더룽 4단.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호’ 여자의 14년 전 러브스토리
권효진은 2005년 동갑내기 중국기사 ‘웨량’과 결혼한 한중 커플 1호다. “권갑용 바둑도장은 연례행사로 베이징 녜웨이핑 도장과 정기 교류전을 가졌습니다. 2003년 1월은 도장에서 김지석, 박정환, 백홍석, 이영구 등 쟁쟁한 기사들이 함께 중국으로 갔어요. 당시 전 제1회 정관장배 4강에 올라 자신감 넘치고, 승부욕이 불타던 시절이었지요. 중국에 도착한 날부터 바둑을 두기 시작했는데 20명 넘게 있던 그 방에선 모두 저를 피하는 분위기였어요. 아무래도 홍일점이라 부담이 있었겠죠. 마침 드르륵 문을 열리고, 얼굴 허연 남자 한 명이 들어왔어요. 지각한 그는 어쩔 수 없이 저랑 마주 앉았습니다. 잘 뒀는데 제가 역전패했어요. 첫 날이라 다들 한판만 두고 끝내는 분위기였는데 전 억울해서 다시 두자고 말했죠.”
“커이 자이샤 이판마?” 분한 얼굴로 쏘아보며 한판 더 두자는 여자를 이길 남자는 없다. 웨량은 한국여자에게 툭 튀어나온 중국어에 놀랐고, 바둑에 대한 그녀의 열정에 반했다. 서로 첫 인상은 강렬했다. 교류전을 마치고 헤어질 때 웨량은 한 달 뒤에 열릴 정관장배에 응원 간다고 약속했다. 2월 열린 준결승 3번기에서 권효진은 장쉔(현 8단, 창하오 9단의 아내)에게 1국을 지고 2국에서 어렵게 반집승을 거뒀다. “기다리던 그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대국하는 내내 호텔방 테이블 위에 놓인 밸런타인데이 선물용 초콜릿에 마음이 쓰였어요. 3국에서 역전패당한 후에야 뒤늦게 등장해선 ‘위로해주러 왔다’며 고백했고, 서로 마음을 확인했습니다”라고 말한다.
제1회 정관장배 준결승 2국 권효진과 장쉔의 대국.
그 해 6월, 웨량은 장주주-루이나이웨이 부부 소개로 한국에 왔다. “남편이 한국에 적응하는 기간이라 여러 가지 구실로 만났어요. 스파링 사범으로 일하는 곳이 권도장이 아니라서 주로 건대 입구 주변에서 치킨을 먹었습니다. 저는 콜라잔을 앞에 뒀고, 주당인 그는 맥주를 물처럼 벌컥벌컥 마셨죠.” 6개월 후 연말엔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서 함께 바둑교실을 열었고, 2년 더 연애 끝에 2005년 4월 결혼식을 올렸다. “2007년 첫 아이를 가지면서 전 한국으로 돌아왔고, 남편은 도장 운영 때문에 중국에 거주하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한국에 와요. 남편과 저의 성을 딴 악권국제바둑도장은 중국 전역에 지점이 열세 곳입니다. 도장 사업하며 아이를 키우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14년이 흘렀습니다. 벌써 아들 현은 6학년, 딸 지우는 4학년입니다. 두 돌 때 이미 한글을 읽던 아들은 바둑을 일찍 시작했지만, 3학년 때 그만뒀어요. 딸은 오빠만 바둑을 시켜준다고 시샘하다가 7살부터 늦게 시작했어요. 아이들은 스스로 좋아할 때 도와주면 됩니다. 뭐든지 부모 욕심으로만 시작하면 실패하기 쉬워요. 교육도 ‘부득탐승’이죠.”
#중국바둑 이미 열기 식어…대학가산점 폐지가 결정타!
중국에서 바둑도장을 운영하는 남편 웨량은 중국바둑계 현실을 들려주는 정보원이자 취재원이다. 권효진은 “중국은 기존 리그 운영을 위해 입단 인원도 늘리고 있어요, 매년 평균 20명 정도를 선발하다가 2017년에 30명, 2018년에 44명까지 뽑았습니다. 별도로 지역입단제도 신설했어요. 입단 인원을 급격히 늘리니 반대로 도장에서 공부하던 학생은 확 줄었습니다. 10개가 넘던 베이징 내 바둑도장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현재 세 군데 정도만 운영 중입니다”라고 말한다.
권효진 6단은 서울 반포에서 회원제 클럽 서래바둑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에서 프로를 지망하는 아이들은 거의 사라졌다. 4년 전 중국에서 체육종목 운동원에 대한 대학입학 가산점이 폐지된 이유가 크다. 2015년 이전은 바둑 프로기사 5단 이상은 ‘특급’ 판정을 받고 어떤 대학도 갈 수 있었다. 특급은 전 NBA 농구선수 야오밍 정도가 받는 등급이다. 아마 6단(전국대회 우승자)부터 프로4단까지도 ‘1급’으로 어지간한 대학은 골라서 갈 수 있었다. 최소한 아마 5단증만 있어도 별도 가산점이 있어 바둑을 배우면 대학 입시에 아주 유리했다. 한국 못지않은 교육 열기를 품은 중국에선 엄청난 특혜였다. 물론 지금도 대학별로 체육종목에 대한 특례입학제도는 남아있다. 최근 커제 9단이 칭화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사례처럼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젊은 프로기사는 비교적 편하게 대학에 갈 수 있다. 그러나 예전과 같은 전국적 바둑 열기는 사그라들었다.
권효진은 “지역마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바둑대회나 시장은 아직 활발합니다. 다만 어린 프로기사 지망생은 현저히 줄어들었어요. 불과 10년 전만 해도 ‘90후’라 불리던 영재들과 입단지망생은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지만, 지금은 한국보다 프로지망생 숫자가 적은 형편입니다. 중국에서도 재주 있는 아이들이 프로의 길은 잘 안 가려고 합니다. 이런 추세라면 아마 ‘05후’ 세대부터는 중국이 한국을 이기기 어려울 거예요”라고 말했다.
박주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