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보와 공감의 균형
지난 설연휴 당시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편성돼 호평받았던 MBC ‘구해줘 홈즈’는 3월말 정규편성됐다. 국내 최초로 ‘부동산 예능’을 표방하는 ‘구해줘 홈즈’는 연예인 코디들이 일반인 의뢰인을 대신해 살 집을 돌아보고 추천하는 프로그램이다.
최근 방송에서는 20년 만에 이사를 하려고 고민 중인 5인 가족을 위해 코디들이 나섰다. 그들은 각각 용인과 이천의 부동산을 소개했다. 용인에 위치한 아치하우스는 방과 화장실이 5개 배치돼 다인 가족이 살기 좋은 집으로 눈길을 끌었다. 편백나무 천장과 통유리창 등이 소개되자 “내가 살고 싶은 집”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경기도 이천의 집은 넓은 마당과 황토방까지 갖췄다. 주변 외관 또한 훌륭하고 비교적 서울에서 가까운 편이라는 것도 장점이었다.
MBC ‘구해줘 홈즈’ 방송 화면 캡처.
‘구해줘 홈즈’의 파일럿 방송 당시, 3억 원으로 전셋집을 구하는 모습에 대한 반응이 분분했다. 3억 원이라는 금액도 충분히 크기 때문에 위화감이 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규 편성 후 이 프로그램은 서울 외곽과 지방으로 눈을 돌렸다. 용인과 이천 외에도 부평, 부산 등의 입지 조건과 내구성이 뛰어난 집들을 조명하고 ‘탈(脫) 서울’을 시도해 지지를 받았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구해줘 홈즈’는 5주 연속 2049(20세부터 49세까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4월 29일 방송된 ‘구해줘 홈즈’는 메인 타깃 지표인 2049 시청률 1부 3.3%, 2부 4.5%를 기록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자취방을 구하는 20대 초반부터 30대 신혼부부, 가정을 건사하는 40대 가장 등이 부동산에 관심이 높다는 방증이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필수적인 요소는 ‘의식주’(衣食住)다. 이 중 하루 세 끼를 먹는 음식과 요리를 소재로 한 ‘식’은 먹방을 통해 꽃을 피웠다. 맛있는 음식을 찾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삶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대중은 더 싸고 더 맛있는 음식을 찾기 위해 먹방에 몰입했다.
‘의’는 넓은 의미에서 옷을 넘어 패션 전체를 의미한다. 이미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를 비롯해 각종 프로그램이 패션을 소재로 사용한 바 있다. ‘공항패션’을 비롯해 연예인들이 착용한 장신구 하나하나가 언론과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정도로 패션에 대한 관심 또한 높다.
그리고 이제는 ‘주’다. 그동안 삶의 공간은 예능에서 주로 연예인들의 집 공개를 통해 다뤄졌다. 그들의 휘황찬란하고 넓은 집을 보며 대중은 부러움과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 일종의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구해줘 홈즈’는 바로 이런 틈새시장을 공략한 프로그램이다. 서울의 집값은 나날이 치솟고 있는 세태 속에서 ‘구해줘 홈즈’가 제시하는 가성비 높은 집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MBC 관계자는 “언론에서도 주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서울의 집값 위주로 이야기하는데 ‘구해줘 홈즈’는 눈을 조금만 돌려도 좋은 집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정보를 얻는 동시에 공감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시청자들이 호응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제2의 집, 그 이름은 ‘직장’
직장은 ‘제2의 집’이다. 직장인 대다수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집보다 회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 안에서 일하며 돈을 벌고, 끼니를 챙기며 인간관계를 맺는다. 직장의 규모는 차이가 있겠지만 월급을 받으며 생활하는 대다수가 직장인의 범주에 포함된다. 그래서 드라마 ‘미생’과 같은 사실감 넘치는 직장 이야기는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의 중간 형태인 모큐멘터리 KBS 2TV ‘회사 가기 싫어’가 대표적이다. “회사 가기 싫어”는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습관처럼 뱉는 말이다. 지난해 6부작으로 방송돼 지지를 받은 이 프로그램은 12부작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속에서는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장면이 다수 포착된다.
KBS 2TV ‘회사 가기 싫어’ 방송화면 캡처.
20년 넘게 회사 생활을 한 50대 중년 부장은 동기들에 비해 승진은 뒤처졌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고, 40대 과장은 “나 때는 말이야”를 남발하다가 후배들의 빈축을 산다. 한창 일할 나이일 30대 대리급 직장인들은 ‘잘나가는 무리’와 ‘뒤처지는 무리’로 나뉘며 무한 경쟁 속에서 허우적댄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20대 신입사원들은 아등바등 살아가는 선배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강조한다.
지난 4월28일 첫 방송된 KBS 2TV 새 예능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는 각 조직에서 CEO 역할을 맡고 있는 유명인 대표들의 삶에 카메라를 들이민다. 심영순 한식 연구가와 이연복 셰프, 그리고 프로농구팀 LG 세이커스의 감독 현주엽 등이 그 주인공이다.
심영순은 “간이 너무 심심하다. 중환자가 된 심정으로 먹는 기분”이라는 지적으로 직원들을 긴장하게 만들었고, LG 세이커스의 김종규 선수는 “경기가 잘 안되거나 그런 날에 방으로 호출을 하신다. 주로 혼나러 가는 것”이라고 현주엽 감독의 성향을 폭로(?)했다. 대중이 미처 알지 못했던 카메라 밖 그들의 실제 삶이다.
‘회사 가기 싫어’가 회사에서 ‘을’(乙)인 직장인들의 삶에 방점을 찍는다면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는 ‘갑’(甲)에 해당되는 대표들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소소한 재미를 전달한다. 연출을 맡은 이창수 PD는 “많은 것을 이루고 난 뒤 자신을 돌아볼 의향이 있는 보스들 위주로 섭외하고 있다”며 “이 분들은 어느 정도 흉을 듣더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의견을 듣고 싶어한다”고 설명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