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금융협회장은 은행이나 증권, 보험협회장과 달리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여러 업권을 이끌어야 하는 어려운 자리다. 여신협회에는 카드·리스·할부·신기술금융업 4개 업종의 회사들이 뒤섞여 있다. 이들이 처한 문제들 역시 각자 달라서 업계를 잘 아는 전문가이자 베테랑이 아니면 협회장 역할을 수행하기가 쉽지 않다는 평가를 듣는 자리다. 카드사들은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 등의 여파로 정부와 갈등을 겪고 있고, 캐피탈업계는 경쟁 격화라는 어려움에 처해 있어 이들의 이익을 조율하는 협회장이 절실한 상황이다.
서울 중구 다동길 43 한외빌딩 13층 여신금융협회. 차기 여신금융협회 회장 선임 작업이 임박하면서 유력 인사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박정훈 기자
현재까지 거론되는 인물은 관료 출신과 민간기업 출신으로 크게 갈린다. 우선 관료 출신 중에서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행정고시 선배와 동기들이 입길에 오른다. 최규연 전 저축은행중앙회장, 예금보험공사 사장을 지낸 김주현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 등이 대표적이다.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과 이기연 전 여신협회 부회장도 자천타천으로 거론되고 있다.
최규연 전 회장은 행시 24회로 최 위원장의 한 기수 선배며 금융위에서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내다 2011년 조달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기연 전 부회장은 2014~2017년 여신금융협회 부회장을 역임했기 때문에 카드 부가서비스 축소나 레버리지 비율 확대 등 카드사들의 현안들을 대변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전 부회장은 1986년 한국은행 입행 이후 금감원으로 옮겨 신용감독국 팀장, 법무실장, 은행·중소서민감독 담당 부원장보를 역임했다. 그는 현 11대 회장 선출 당시에도 회장 후보 물망에 올랐지만 입후보하지는 않았다. 김주현 대표는 최 위원장과 행시 동기로 금융위 사무처장을 맡은 후 예금보험공사 사장을 역임했다.
이들 가운데 김주현 대표와 신제윤 전 위원장은 현 정부의 인사기조를 감안할 때 다소 불리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대표의 경우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사장과 중앙고 동기라는 점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신 전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경제 슬로건이었던 ‘창조경제’의 핵심인 ‘창조금융’을 진두지휘했다는 점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평가다.
이들 외에 김성진 전 조달청장(행시 19회), 김교식 아시아신탁 회장(행시 23회) 등 옛 기획재정부 출신 인사들도 후보로 거명된다. 김 전 청장은 과거 한국거래소 이사장, 김 회장은 저축은행중앙회 회장직에 각각 도전한 경험이 있다. 다만 김 전 청장은 1951년생, 김 회장은 1952년생으로 상대적으로 고령이라는 점에서 ‘디지털 금융시대’와 맞지 않다는 얘기도 나온다.
민간 출신으로는 정수진‧정해붕 전 하나카드 사장과 고태순 전 NH농협캐피탈 사장, 박지우 전 KB캐피탈 사장이 초반 레이스에서 다소 앞서는 분위기다.
정수진 전 사장은 1955년 전남 장성 출생으로 전남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보람은행에 입행했다. 보람은행 안양지점장, 하나은행 남부지역본부장, 하나은행 리테일영업그룹 총괄(부행장), 하나저축은행 대표를 거쳤다. 2016년 3월부터 지난달까지 하나카드 대표를 지냈다. 현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업계 이해도가 높다는 장점이 있다.
역시 하나카드 CEO 출신인 정해붕 전 사장도 물망에 올랐다. 정 전 사장은 전북대를 졸업한 후 제일은행에 입행했다. 이후 하나은행 부행장을 역임한 후 2012년 하나SK카드(현 하나카드) 사장으로 선임됐다. 정 전 사장은 하나카드와 외환카드의 통합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임기가 끝난 고태순 NH농협캐피탈 대표는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으며 역할을 할 일이 있다면 출마하겠다는 입장이다. 박지우 전 KB캐피탈 사장도 후보로 거론된다. 박 전 사장은 취임 후 자산을 크게 늘리고 역대 최대 규모의 순이익을 연달아 갱신하는 등 KB캐피탈을 크게 성장시킨 인물이다.
유구현 전 우리카드 사장도 이름이 오르내린다. 유 전 사장은 대구 출신으로 상업은행에서 시작해 2015년 우리카드 사장으로 선임됐다. 그가 사장으로 있던 2015년 우리카드는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유 전 사장은 이를 인정받아 연임에 성공했다. 사장 연임은 우리카드가 우리은행에서 분사된 후 그가 최초다. 이외에도 서준희 전 BC카드 사장의 이름도 심심찮게 거론된다.
여신금융 업계에서는 ‘관 출신’ 인사가 오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조금 더 우세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 김덕수 회장의 경우 신용카드 인지세 인하, 여신금융회사의 행정정보 공동이용기관 지정, 상품 약관심사 사후보고제 등 업계 발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카드업계 최대 관심사였던 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비롯해 부가서비스 축소 허용, 레버리지 배율 규제 완화 등 주요 현안에 대해서는 업계 입장을 사실상 대변하지 못해 민간 출신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정부와 금융당국 등을 상대로 업계 대표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관 출신 인사를 은근히 바라는 분위기다.
여신협회장의 임기는 3년이다. 협회 정관에 따르면 회장은 8개 카드사(비씨·롯데·삼성·신한·우리·하나·현대·KB국민카드) 사장들과 7개 캐피탈사(롯데·아주·하나·현대·IBK·JB우리·KB캐피탈) 사장들로 구성된 이사회가 회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회추위)를 구성한다. 회추위에서 단독 후보를 선정하고 추천한 뒤 여신협회에 소속된 전체 회원사가 모이는 총회에서 찬반 투표를 통해 회장으로 선임하는 절차를 거친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