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감독은 사구 후 선수들의 대처에도 남다른 철칙을 선보였다. 연합뉴스
[일요신문] SK는 최근 수 년간 ‘클린 베이스볼’의 선두주자로 꼽혀온 구단이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 재임 시절만해도 빈볼성 사구로 인한 논란에 자주 휩싸여야 했다. ‘그라운드에서 적에게 얕보여서는 안 된다’는 김 감독의 철칙이 경기 곳곳에 묻어났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전 SK 투수 조영민의 ‘벌투’ 사건이다. 조영민은 2008년 4월 목동 히어로즈전에서 2회부터 마운드에 올라 7회까지 공 120개를 던지면서 6이닝 16피안타 4볼넷 9실점을 기록했다. 논란이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는 투구 수와 성적이다.
당시 그는 SK 불펜의 핵심 요원으로 활약하고 있던 투수다. 경기 상황에 따라 수시로 몸을 풀고 대기해야 하는 불펜 투수들은 한 경기에서 30~40구만 던져도 ‘많이 던졌다’는 얘기를 듣는다. 하지만 조영민은 웬만한 선발 투수들도 한 경기에 다 못 던지는 120개의 공을 쉴 새 없이 뿌려야 했다. 앞선 4경기에서 총 4⅓이닝을 던졌던 그가 이 한 경기에서 그것보다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사령탑이었던 김성근 감독은 경기 후 “초반에 실점한 뒤 경기를 내줬다고 생각해서 최대한 투수를 아끼려고 조영민을 계속 던지게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내부 사정을 아는 야구 관계자들은 다른 얘기를 했다. 조영민이 4회에 당시 히어로즈 소속이던 정성훈에게 빈볼을 던진 뒤 ‘미안하다’는 의미의 수신호를 보냈는데, 그 모습이 김 감독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것이다.
정성훈은 조영민의 광주일고 1년 선배다. 당시에도 몸에 맞는 볼이 나오면 투수가 타자에게 적절한 사과의 제스처를 보내는 게 ‘매너’로 여겨졌다. 그러나 김 감독은 경기 후 조영민에게 “아무리 선배라도 그라운드에서는 적이다. 그런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안 된다”고 일침을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다음날 불펜 투수로 자리를 잡아가던 조영민을 2군으로 보냈다. 2019년의 KBO 리그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해프닝이다.
물론 김 감독의 이런 ‘강성 기조’는 한화 사령탑에 오른 뒤에도 이어졌다. 2015년 4월 12일 부산 롯데전에서 전 한화 투수 이동걸이 당시 롯데 소속이던 황재균에게 몸에 맞는 공을 던져 퇴장을 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동걸이 몸쪽 위협구 두 개를 연이어 던진 뒤 3구째에 몸을 맞히면서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났고, 결국 심판진이 빈볼로 판단해 퇴장 선언을 한 것이다.
당시 한화 벤치에서 이동걸에게 빈볼을 지시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KBO 상벌위원회는 이동걸뿐만 아니라 김 감독에게도 제재금 300만 원 징계를 내렸다. 김 감독은 이와 관련해 “감독 생활을 50년 가까이 하면서 한번도 빈볼을 지시해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