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저서 ‘운명’에서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가장 아쉬움이 남았던 일로 공수처 설치 불발을 꼽은 문재인 대통령. 하지만 대선 후보 당시 논의됐던 방향들은 대통령 당선 직후 조금씩 바뀌었고, 패스트트랙을 앞두고 국회 각 정당별 이해관계가 새롭게 반영되면서 처음 논의됐던 것보다 ‘개혁 정신’이 후퇴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4월 2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이상민 위원장이 공수처법·검경수사권 조정 신속처리안건을 의결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 1999년 처음 등장
공수처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9년 김대중 정부.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고, 내부 비리 척결에 한계가 있는 검찰권을 견제할 수 있는 별도의 수사기관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참여연대 제안으로 시작됐다.
이후 2004년 11월, 노무현 정부도 정부 주도로 공수처 설립 법안을 발의한다. 그러나 이는 당시 한나라당 의원 30여 명 이름으로 ‘공수처 추진 백지화 결의안’을 먼저 제출하면서 무산됐고, 이후 19대 국회까지 관련 법안은 단 한 번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이후 검찰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고, 공수처 설치를 공약으로 제시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움직임은 본격화됐다.
사실 이는 대선 당시에는 대부분의 후보들의 공통된 정책이기도 했다. 유승민 당시 바른정당 후보는 검찰이 가진 수사권과 기소권은 분리하되 경찰에 수사권을 부여하기보다는 제3의 조직으로의 공수처 신설을 내놓았고, 안철수 국민의당, 심상정 정의당 후보 역시 공직자 비리수사처 설치 찬성 입장이었다. 홍준표 후보만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를 언급하지 않고, 검찰 개혁과 특별감찰관 권한 강화로 대통령 주변 비리를 차단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리고 2년여의 시간이 흐른 2019년 4월.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의 합의로 이제 공수처 설립은 처음으로 국회 문턱을 넘었다.
# 공수처장 임명권자 ‘관건’
그렇다면 대선 전인 2016년 8월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 발의 안과 현재 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의 4당 합의안 내용은 얼마나 어떻게 바뀌었을까.
가장 먼저 구체화된 것은 2016년 당시 국민의당과 함께 발의한 박범계 의원 법안. 공수처에 대한 국회의 권한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법안은 공수처가 인지 사건 외에도 감사원과 국가인권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등이 의뢰한 사건도 맡을 수 있도록 했다. 특히 국회 재적의원 10분의 1 이상이 연서(連署)할 경우 공수처가 즉시 수사에 착수하도록 의무화했다. 의원수 30명 이상의 정당은 어떤 견제 없이 수사 착수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공수처장 역시 국회 등의 추천으로 구성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장추천위원회’에서 단수(1명)의 후보자를 추천하면, 인사청문회를 거친 뒤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였다. 형식적인 임명은 대통령이 하지만, 사실상 국회가 추천하는 단수 후보자라는 점에서 임명권이 국회에 있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이 안은 ‘청와대’에 유리한 방식으로 바꿨다. 청와대는 백혜련 의원을 통해 낸 발의안에서 공수처 수사 대상을 대통령, 국회의장·국회의원, 대법원장·대법관, 헌법재판소장·헌법재판관, 국무총리, 검찰총장, 판·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 등으로 규정했지만 기소 대상자에는 판·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만 이름을 올렸다. 대통령과 대통령 친인척, 국회의원 등은 모두 기소 대상에서 빠졌다.
공수처장 임명권도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백 의원 발의안에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추천위원회가 2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그 중 1명을 지명한 후 인사청문회를 거쳐 처장을 임명한다”고 명시했다. 검찰처럼, 대통령이 임명권을 가지는 수사기관이 하나 더 생긴다는 비판이 나온 대목이다.
4월 2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사보임된 오신환 의원이 채이배, 임재훈 의원 옆에서 발언권을 요구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오신환, 권은희 의원의 사보임을 놓고 진통을 겪었던 바른미래당은, 공수처에는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기소권 및 경찰 수사 종결권 등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 ‘견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논란 끝에 결국 패스트트랙에 백혜련 의원 발의안과 함께 올라탄 권은희 의원 안은 수사 견제와 임명권 등에 대해 국회 권한을 소폭 확대한 게 특징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판사와 검사, 경찰 등에 대해 현직만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공수처장 임명 역시 국회에 일부 권한이 넘어왔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 중 1인을 임명하는 구조지만, 국회 청문회 후 국회 동의를 필수로 받도록 했다. 야당 중 한 곳이라도 반대하면 불가능하게 조치도 해놓았다.
검찰 관계자는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 국회에 있을 때는 국회 중심의 공수처를 당 차원에서 제안하다가 정권을 잡고 난 뒤에는 ‘대통령의 처장 임명권’을 대폭 강화한 안으로 통제를 강화하려고 했고 이를 야당인 바른미래당이 다시 제한하는 셈”이라며 “결국 검찰의 힘을 뺀다면서, 국회와 정부가 각자 유리하게 끌고 가려고 칼을 대고 있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