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에 항의하는 자유한국당 4명의 의원과 당협위원장이 2일 국회 본청 앞에서 ‘문재인 좌파독재정부의 의회민주주의 파괴 규탄 삭발식’을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패스트트랙에 올라탄 안건은 선거제, 공수처 설치, 검경수사권 조정이다. 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 핵심 공약인 사법개혁에, 야3당은 선거제 개편에 방점이 찍혀 있다. 자유한국당은 이를 저지하기 위한 총력전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볼썽사나운 꼼수와 폭력사태 등이 발생했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자유한국당 해산 찬성표가 160만 명을 넘어섰다. 그런데 정작 안건 자체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이 ‘수 싸움’에만 빠져 홍보를 게을리 하고 있다는 비판도 뒤를 잇는다. 국회에서조차 “우리가 지금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모르겠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여야 4당이 합의한 공직선거법 주요 내용부터 살펴보자. 우선 내년 총선부터 권역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의석수는 300명을 유지하되, 지역구(253→225석)와 비례대표(47→75석) 수를 조정한다. 비례대표 후보자 선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고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각 당 투표로 그 명단을 정한다. 지역구에서 아깝게 떨어진 후보를 비례대표로 구제할 수 있는, ‘석패율제’ 도입도 눈길을 끈다. 또 최초 선거권 부여 나이를 19세에서 18세로 낮췄다.
권역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언론 등을 통해 자주 보도됐지만 이해는 쉽지 않다. 명칭도 어려울 뿐더러 계산법이 복잡한 탓이다. 정혁진 변호사는 “선거법이라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가 쉬어야 한다. 국민들이 자신들의 대표를 뽑는 것인데, 어떤 방식으로 선출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말부터 너무 어려워서 전문가 아니면 국민들 대부분 모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향후 수정될 가능성이 높지만 여야 4당이 내놓은 초안의 골자부터 설명하면 우선 각 당 전체 의석수를 정당득표율에 따라 1차 배분한다. 이때 비례대표 의석은 50%만 연동한다. ‘준연동형’이라는 명칭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2차는 6개 권역별(△서울 14 △경기·인천 23 △충청·강원 10 △대구·경북 7 △부산·울산·경남 12 △호남·제주 9)에서 각 당이 미리 정한 의석을 정당득표율로 따져 나누게 된다. 통상의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권역별’을 가미한 셈이다.
A 당이 내년 총선에서 정당득표율 10%를 얻었다고 가정해보자. A 당은 우선 전체 300석 중 10%에 해당하는 30석을 1차 확보한다. 그 다음 30석에서 이 정당의 지역구 당선자를 뺀다. 만약 이 정당이 지역구 10곳에서 승리했다면 남은 20석만을 놓고 준연동형을 적용한다. 20석 중 50%인 10석을 배분한다는 얘기다. 각 당은 비례대표 전체 의석수인 75석을 이런 식으로 나눈다. 여기까지가 1차 배분으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다. 2차 배분은 1차에서 채우지 못한 비례대표를 ‘권역별’로 배분하는 방식이다. 만약 1차 배분에서 65석의 비례대표가 확정됐다면 나머지 10석을 놓고 각 당이 정당득표율에 따라 나눈다. A 당은 10%를 얻었기 때문에 10석 중 1석을 가져갈 수 있다. 그 기준은 각 당의 권역별 득표율 및 지역구 당선자에 따라 정해질 전망이다. 따라서 A 당은 총 21석(10+10+1)을 확보하게 된다.
이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 지역구 당선자를 내기 어려운 소수 정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제도다. 어떤 정당이 지역구에서 2석을 냈지만 정당득표율에선 10%를 얻었을 경우를 계산해보면 1차 배분에서 우선 300석의 10%인 30석을 가져간다. 이어 30석에서 2석을 뺀 28석의 50%인 14석을 확보한다. 또 2차 배분에 따라 최소 1석 이상을 배정받는다. 지역구는 비록 2석이지만 1, 2차 계산을 거쳐 최소 17석을 얻게 되는 셈이다. 정의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이 선거제 개편에 사활을 걸고 있는 배경으로 풀이된다. 이들은 정당지지율을 의석수에 반영할 수 있고(사표 방지), 거대 양당 횡포를 막을 수 있는 소수정당들의 원내진입을 용이하게 한다는 부분을 강조한다.
회의론도 적지 않다. 현실적 측면에서 과연 이 법안이 통과될 수 있느냐다. 자유한국당의 강력 저지와는 별개로 벌써부터 민주당 내에서 ‘다른 목소리’들이 흘러나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민주당과 야3당의 동맹이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얘기다. 자유한국당 한 의원은 “쉽게 말하면 민주당이 공수처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자신들과 우리 당의 의석수 몇 개를 야3당에 떼어주는 주는 ‘딜’을 한 것”이라면서 “민주당 현역 의원들 상당수는 아마 자유한국당과 의견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본회의에 올라가더라도 결국 민주당 반대표로 인해 부결될 것”이라고 점쳤다.
이는 지역구 조정과도 맞물려 있다. 지역구 28석을 줄이는 과정은 지금의 패스트트랙 정국보다 더 큰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뿐 아니라 야3당 의원들 중에서도 지역구를 줄이는 문제에 반대하고 있는 의원들이 적지 않아 향후 새로운 뇌관이 될 전망이다. 정개특위 소속 김재원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선거법 개편 시 서울 지역구는 49석에서 42석으로 줄어들게 된다. 강남을 제외하고는 민주당 의원들의 지역구다. 민주당과 민주평화당 텃밭인 광주 전북 전남 모두 2곳이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역시 민주당 강세지역인 경기에서는 3곳이 축소 대상이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당론으로 정한다고 하더라도 지역구 축소는 의원 개인의 생존이 달려 있는 문제다. 아마 해당 지역구에 속해 있는 의원들은 반대표를 던질 것이다. 이것을 당에서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민주당뿐 아니라 야3당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해결 방안은 의원수를 늘리는 일뿐이다. 지역구를 축소하지 말고 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얘기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누가 다느냐만 남았다. 아마 상임위를 거치면서 논의될 것이다. 의원 수를 300명으로 못 박고 시작하면 합의가 힘들어진다. 하지만 의원 수를 늘리자고 하면 국민들 비판이 거셀 것이다. 국민들에게 솔직히 얘기를 해도 받아들이겠느냐.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고, 이는 결국 선거제를 바꾸기 힘들어지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론적인 면에서도 부정적 의견들이 쏟아졌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나라가 손꼽히고 있다는 것도 그 중 하나다. 현재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나라는 7개국(독일 뉴질랜드 헝가리 볼리비아 스코틀랜드 레소토 웨일스)뿐이다. 볼리비아(대통령제)를 제외하곤 모두 의원내각제를 통치구조로 두고 있다. 한국 정치의 특성에 대한 고민 없이 선거제만 바꾼다고 해서 과연 정치 개혁을 이룰 수 있느냐는 의문도 적지 않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대통령제는 소선거구와, 의원내각제는 비례대표제와 짝을 이뤄야 순기능을 한다는 게 정치학의 오랜 경험적 연구 결과다. 또 다당제는 대화와 타협하는 전통이 전제조건”이라면서 “과거 여소야대 국면을 떠올려 봤을 때 당은 서로 싸우려고만 할 것이다. 따로 논의해야 할 선거제도와 공수처를 한 번에 처리하려다 보니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지는 채 교수의 비판이다.
“국민들에게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압도적으로 대통령제가 높다. 이런 식으로 선거제를 바꾸면 결국 의원내각제로 가는 수순을 밟게 된다. 민주당은 의원내각제를 하고 싶어 하는지 밝혀야 한다. 정치권이 국민들에겐 이런 얘기를 하지 않는다. 국민들이 이런 사정을 알면 크게 분노할 것이다. 지역구 (축소) 논의가 시작되면 어찌될지 알 수 없다. (부결된다면) 지금까지 도대체 뭐한 것이냐. 이렇게 싸우기만 하고 얻은 게 무엇이냐. 자유한국당과 민주당이 내년 총선 사전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생각밖엔 들지 않는다.”
석패율제에 대한 논란도 거세다. 자유한국당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은 “지역구 투표로 투표 목적이 다른 비례대표를 선출하고, 후보자와 유권자 간 평등권을 심대하게 침해하는 석패율 제도는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고 했다. 또 “석패율이 적용된 지역구 후보는 다른 후보와 달리 지역구 투표에서 낙선해도 패자부활 비례대표로 두 번에 걸친 당선기회를 가진다”며 “석패율 적용 지역 유권자는 그렇지 않은 지역과 달리 추가적으로 지역구 투표를 통해 비례대표 선출권을 누린다는 것도 헌법에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채진원 교수도 “비례대표 공천이란 게 결국 힘 있는 사람들이 나눠먹기를 하는 것 아니냐. 정당 공천이 투명하게 되지 않으면 기득권 나눠먹기로 전락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흥미로운 점은 고 노회찬 전 의원이 석패율제를 강하게 비판했다는 것이다. 노 전 의원은 2012년 통합진보당 대변인 시절 “비례대표 몇 석을 중진 구제용으로 쓰려는 것” “중진들의 낙하산”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이 18석 중에 17석을 가져가는 것을 그대로 둔 채 석패율로 인해서 민주당 낙선자 한 명을 구제한다. 이것이 지역주의 완화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 등의 발언으로 석패율제를 반대했었다. 자유한국당 한 재선 의원은 “정의당은 항상 부르짖던 노회찬 정신에 위배되는 합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노 전 의원은 석패율제를 도입하면 선거제를 위한 연대는 없다고 주장했었다. 정의당은 노회찬 전 의원이 생전에 했던 말들을 외면하지 말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