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출석하고 있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사진 연합뉴스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공소장에 따르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 등은 환경부 산하기관 6곳에서 위와 같은 방식으로 기관장과 임원을 교체하려고 시도했다.
검찰은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강요,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신 전 비서관은 지난 2017년 7월경 부하직원을 통해 환경부 측에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 중 한국당 출신 인사, 지난 정부 청와대에서 추천한 인사 등을 우선 교체할 대상자로 선정하라”는 지침을 전달했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의 임명 경위, 당적 등 경력을 확인해 14명을 교체할 대상자로 선정했다.
김 전 장관도 청와대 방침에 적극 협조했다. 김 전 장관은 환경부 운영지원과장에게 산하 공공기관 임원 교체 계획을 보다 구체적으로 수립해 청와대에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환경부는 이후 교체 대상자로 선정된 인사들에게 사표를 낼 것을 종용하고, 사표 징구 상황을 주기적으로 청와대에 보고했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제25조 제5항, 제26조 제5항에 따르면 기관장은 직무수행의 현저한 지장, 직무태만, 허위보고서 작성 등 윤리경영 저해, 경영실적 부진, 비위사실에 대한 수사·감사 결과, 기타 정관에 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임기 중 해임되지 아니하도록 규정하여 임기 보장을 명문화하고 있다. 특정 정당 출신 인사라고 해서 교체를 추진하는 것은 명백한 법률 위반이다.
김 전 장관은 일부 인사가 사직서 제출을 계속 거부하자 환경부 감사관실을 동원해 압박하는 방법으로 사퇴를 종용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은 2018년 2월경 장관실에서 감사담당관에게 사퇴를 거부한 임원들에 대한 감사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감사관실은 사표를 제출하고 있지 않던 일부 인사의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 등을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결국 해당 인사가 사표를 제출하자 어떠한 후속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대로 감사를 종료했다.
이들은 전 정부 인사를 내쫓고, 그 자리에 현 정부 인사를 앉히는 과정에서도 불법을 저질렀다.
환경부는 청와대에서 추천하는 최종 후보자가 정해지면 해당 후보자가 서류·면접심사를 통과하는데 유리하도록 미리 임추위(임원추천위원회) 일정을 알려줬다. 환경부는 내정자들에게 면접 준비에 필요한 업무보고 자료(외부 비공개)와 면접용 예상질문 자료까지 제공했다.
환경부 실·국장(임추위 당연직 위원)은 추천 후보자에 대해 심사 결과와 상관없이 무조건 높은 점수를 부여하기도 했다.
청와대가 추천한 일부 인사는 서류심사조차 통과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청와대가 추천한 A 씨는 자기소개서에 지원 동기, 경력 등에 대한 내용 없이 ‘백두대간을 종주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시를 쓰는 등 백두대간의 중요성을 사회 전반에 인식시켰다’는 내용을 기재했다.
직무수행계획서에는 구체적인 계획 없이 막연하게 ‘모든 역량과 경험을 토대로 이바지하겠다’고 적었다.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실 소속 행정관은 환경부로부터 A 씨가 서류심사조차 통과하기 어렵다는 보고를 받자 “다시 한 번 검토해봐라. 필요한 지원을 다해서 최종 후보자가 될 수 있게 하라”고 했다.
환경부 직원들은 ‘지원동기, 실적 및 경력’ ‘기타 사회공헌활동’ ‘맺음말’로 각 항목을 구분하고 각 항목에 해당하는 내용을 채우는 방법으로 A 씨의 자기소개서와 직무수행계획서를 대신 작성해줬다.
이렇게까지 노골적인 인사개입이 있었음에도 지난 2018년 7월경에는 청와대가 내정한 B 씨가 서류심사에서 탈락하는 일이 발생했다.
B 씨가 서류심사에서 탈락했다는 사실을 보고받은 신미숙 전 청와대 비서관은 “서류심사 통과자 전원을 면접심사에서 ‘적격자 없음’으로 탈락 처리하고, B 씨에게는 환경부 산하 다른 공공기관 직위를 제안하라”고 지시했다. 김은경 전 장관은 청와대 지시 사항을 보고받고 그대로 진행하라고 승인했다.
신 전 비서관은 환경부 차관에게 “환경부에서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하길래 청와대 추천 인사가 서류심사도 합격하지 못하는 이런 결과가 나왔느냐”면서 “서류심사 합격자 중에는 한국당 출신도 있다고 하던데, 청와대에서 추천한 인사가 한국당 출신보다 못해서 떨어진 것인가”라고 질책했다.
한 환경부 인사는 검찰 조사에서 “B 씨가 탈락하자 아무개 국장이 청와대까지 가서 잘못했다며 빌었다”고 증언했다.
신 전 비서관은 B 씨가 서류심사 탈락한 것을 질책하며 환경부 운영지원과장에게는 ‘탈락에 대한 반성, 처벌감수 및 재발방지’ 취지로 소명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운영지원과장은 ‘A 기관 감사 후보자 탈락 경위 소명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운영지원과장은 소명서에서 “우리 부가 임추위 등 선발과정 관리를 소홀히 해 후보자가 서류심사에서 탈락하게 되었기에 매우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향후 동일한 사례가 재발되지 않도록 엄중 조치하겠다”고 적었다.
검찰은 신 전 비서관의 행동이 환경부 공무원에 대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임추위 위원들에 대한 업무방해 행위라고 지적했다.
김은경 전 장관은 청와대의 부당한 지시로부터 부하 직원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적극 동조했다. 김 전 장관은 B 씨 탈락으로 청와대가 환경부에 대해 분노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 운영지원과장을 전보 조치시키기도 했다.
B 씨가 탈락한 것은 임추위를 통해 도출된 결과로 운영지원과장의 업무상 과오라고 할 수 없다. 또 당시 운영지원과장은 재임한 지 불과 8개월밖에 되지 않아 필수보직기간이 남아 있었음에도 김 전 장관은 전보 조치를 강행했다.
운영지원과장은 주거지가 있는 수도권에라도 근무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김 전 장관은 세종시에서 근무해야 하는 ‘4대강 조사평가단 기획총괄팀장’직으로 전보 명령을 내렸다.
55쪽에 달하는 공소장에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의 직권남용 등 범죄행위들이 범죄일람표와 함께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다.
한편 한국당은 산업통상자원부에서도 전 정부 인사를 찍어낸 블랙리스트 사건이 있었다며 백운규 전 장관 등 4명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상태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