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붓딸을 살해하고 시신을 저수지에 유기한 혐의(살인 및 사체유기)로 긴급체포된 김 아무개 씨가 1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자 광주 동부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 28일 광주광역시 북구의 너릿재터널 인근 저수지에서 시신 한 구가 떠올랐다. 13세 여중생이었다. 시신이 발견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중생의 계부 김 아무개 씨는 인근 경찰 지구대를 찾아가 자수했다. 김 씨는 의붓딸을 살해해 저수지에 유기한 범행 현장을 세 차례 더 방문했다. 경찰이 시신을 수습하는 현장도 지켜봤다. 의붓딸 살해사건은 친모가 범행에 가담했다고 뒤늦게 자백하며 더 큰 충격을 줬다.
숨진 A 양의 어머니는 2010년 이혼 후 광주에서 점집을 운영하고, 친아버지는 목포에 살았다. 친아버지 집에서 동생과 살던 A 양은 수차례 폭행을 당했다. 결국 2016년 아동보호기관이 이 사실을 경찰에 알렸다. 당시 A 양은 어머니의 광주 집을 찾았다는 이유로 청소도구로 종아리를 맞고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경찰청은 112에 폭행 사건을 접수했고 A 양의 친부를 2016년 5월 형사입건했다. 당시 함께 아동학대 조사를 하던 아동보호기관에는 이 건 외에도 A 양이 친부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건 기록이 있었다. A 양의 친부는 접근금지가처분명령과 벌금형 유예 판결을 받았다. 사건이 있고 나서 A 양은 광주의 어머니 집에서 살게 됐다. 아버지의 폭행을 피해 어머니 집을 찾았지만 그곳에서도 폭행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의붓아버지가 A 양을 지속적으로 폭행했다. 계부 김 씨는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2017년 검찰에 송치됐다.
어머니와 계부는 A 양을 ‘도저히 못 키우겠다’며 아동보호소로 쫓아냈다. 폭행을 당하고 버림받은 A 양은 결국 다시 친아버지가 있는 목포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의붓아버지의 끈질긴 학대는 끝나지 않았다. 2018년 1월부터는 의붓아버지가 A 양에게 이상한 휴대폰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계부 김 씨는 음란사이트의 주소 링크를 보내는가 하면, 성기 사진을 찍어 보내는 등 성추행을 저질렀다. A 양이 대화를 거부하거나 답이 없으면 계속해서 말을 걸고 욕을 하는 등 괴롭힘이 이어졌다. 또 A 양에게도 신체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강요했다. 성적 학대는 점점 심해졌다. 지난 3월에는 계부가 A 양을 찾아와 집 밖으로 유인하고 인근 야산에서 성폭행을 시도했다.
친어머니는 A 양의 피해 상황을 알고도 도리어 딸을 탓하는 태도를 취했다. 친모 유 씨는 남편이 음란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알게 된 뒤 전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내 남편과 어떻게 이런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느냐, 딸 교육 잘 시켜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붓아버지의 성추행을 사실을 알게 된 친부는 A 양과 함께 지난달 8일 목포경찰서를 찾아 계부 김 씨를 신고했다. 신고를 하고 며칠 뒤 A 양은 의붓언니와 다시 경찰서를 찾아 성폭행 범죄도 추가로 신고했다.
장기간 폭행과 학대에 노출됐던 A 양은 도움을 요청했지만, 경찰이 골든타임을 놓치는 바람에 피해자가 보복범죄의 대상이 될 환경이 조성됐다. 지난달 14일 목포경찰서의 조사가 시작되고 당시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조사를 받던 A 양은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하지만 친부가 이를 반대해 하루 만에 신변보호 요청이 취소됐다.
경찰은 성범죄 신고를 받고도 사건을 이첩하며 제때 조사를 하지 못했다. 도리어 김 씨가 범행을 구상하는 시간을 벌어준 격이 됐다. 목포경찰서에 접수된 A 양 사건은 김 씨가 광주에 거주하고 사건발생 장소 역시 광주라는 이유로 광주경찰청으로 넘어갔다. 최초 신고 후 2주가 지난 뒤인 23일에서야 광주경찰청은 사건 기록을 처음 살펴봤다. 광주경찰서는 김 씨와 연락조차 하지 못했다. 이후 A 양은 주검으로 발견됐다.
김 씨는 A 양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지난 1일 구속됐다. 유 씨는 살인 공모 및 사체유기 방조혐의를 받고 있는데 지난 2일 증거불충분으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김 씨와 유 씨 부부는 사건 전후에 함께 있었고 범행에 대해 이미 말을 맞췄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경찰은 부부의 내밀한 대화를 조사해 유 씨의 살인 공모 혐의를 입증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유 씨가 “남편의 범행을 말리지 못한 것은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서였다”는 취지로 진술한 사실을 고려할 때 그 역시 가정폭력의 피해자일 가능성은 남아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