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몬스터 LA 다저스 류현진. 사진=연합뉴스
[일요신문] 말 그대로 ‘눈부신 4월’이었다. 메이저리그 개막 후 한 달이 지나는 동안 한국인 메이저리거들 중 추신수(37·텍사스 레인저스)와 류현진(32·LA 다저스)은 각종 개인 기록을 상위권에 올려 놓았다. 그중 류현진은 2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원정 경기를 포함해 35⅓이닝을 소화하면서 규정 기록을 돌파했다. 2일 현재 류현진은 평균자책점 2.55로 내셔널리그 8위, 메이저리그 전체 공동 14위를, 다승도 내셔널리그 공동 4위, 메이저리그 전체 공동 15위에 올랐다. 가장 경이적인 건 WHIP(이닝당출루허용률)이 0.91로 내셔널리그 4위, 전체 7위다.
그동안 매 시즌마다 부침을 겪었던 류현진이 올 시즌 초반 상승세를 달리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의 의견을 토대로 그 비결을 살펴봤다.
#전문가들도 감탄하게 만드는 류현진의 수 싸움
LA 다저스 선발투수 류현진. 사진=연합뉴스
“요즘 류현진 경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타자와의 수 싸움에 능한 선수라는 건 익히 알고 있는데 매 이닝마다 다른 볼 배합으로 타자를 ‘요리’하는 모습에 존경심이 들 정도다.”
메이저리거 출신인 김선우 해설위원(MBC스포츠플러스)은 류현진의 투구에 ‘존경한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김 위원이 류현진을 더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어떠한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도 도망가는 투구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만약 이전 타석에서 안타나 홈런을 맞은 타자를 다시 상대하면 대부분의 투수는 다른 볼배합을 구사하기 마련이다. 나도 선수시절 그런 패턴을 이어 갔었다. 그런데 류현진은 똑같이 던진다. 가끔은 아슬아슬한 심정이 되지만 류현진의 그런 배짱 투구가 지금의 류현진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해보지 못한 투구 패턴을 류현진은 실행에 옮기고 있다.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한화 이글스에서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은 김인식 전 감독은 류현진의 투구폼이 굉장히 경쾌해 보인다고 말했다.
“현진이가 왼쪽 내전근에 경미한 통증을 느끼고 부상자명단에 오른 후 너무 빨리 복귀한다고 생각했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무리하는 듯 해 보였다. 그러나 복귀 후 현진이의 투구폼을 유심히 살펴보면 지난해보다 훨씬 경쾌하게 느껴진다. 공을 채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2일 샌프란시스코전에스는 투구수 100개가 넘어섰는데도 92마일의 빠른공을 던지더라. 그렇게 많이 던지고도 구속을 높일 수 있다는 건 몸 상태에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의미 아니겠나. 메이저리그 데뷔 7년차인데 그 시간만큼 현진이의 야구도 노련미가 더해진 것 같다.”
메이저리그 전문가인 송재우 해설위원(MBC스포츠플러스)은 류현진이 자신만의 생존법을 제대로 터득했다고 해석했다. 경기 흐름에 따라 빠르게 볼 배합을 바꾸면서 타자들을 상대하는 부분이 제대로 들어맞고 있다는 것.
“모든 투수은 자신만의 생존법이 있다. 그러나 그 생존법이 모든 타자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류현진은 경기 흐름에 따라 빠르게 변화를 추구한다. 샌프란시스코와의 경기에서도 1, 2회 바깥쪽 공이 제구가 안 되면서 어려움을 겪었는데 3회부터는 전혀 다른 투구 패턴으로 타자들을 상대했다. 스트라이크존 안쪽과 바깥쪽을 오가는 공을 던지며 타자들의 혼을 쏙 빼다 5회부터는 빠른공 위주로 투구 전략을 또 수정하더라. 이 부분이 류현진의 가장 큰 강점인 것 같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생존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몸 상태에 자신감 넘쳐 보여
4월 9일 세인트루이스전 내전근 통증으로 벤치에 사인을 보냈던 류현진. 사진=연합뉴스
류현진은 4월 9일 세인트루이스전에서 내전근 통증으로 1.2이닝 만에 마운드를 내려왔다. 부상 이후 첫 경기가 21일 밀워키 원정 경기였다. 밀워키전에서 류현진은 5.2이닝을 소화했고, 이후 피츠버그와의 홈경기에서는 7이닝 105개의 투구수를, 이후 샌프란시스코전에서는 8이닝 107개의 투구수를 선보이며 선발 역할을 마무리했다. 류현진은 피츠버그전 이후 4일 휴식 시간을 갖고 샌프란시스코전에 등판했다. 일부에선 류현진의 몸 상태와 관련해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지만 류현진은 성적으로 모든 우려를 불식시켰다. 김선우 해설위원은 류현진의 부상 이후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부상 복귀 후 첫 경기였던 밀워키전에 이어 피츠버그 경기에서도 류현진이 1, 2회 조심스럽게 투구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아마 다리 상태를 염두에 둔 조심스러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이 없다는 걸 느낀 이후부터는 구속을 높이며 이닝을 거듭했다. 류현진은 하체를 잘 이용하는 투수다. 다리를 밀고 나가는 동작이 좋은 편인데 그 동작에 문제가 생기면 팔로만 던지려는 현상을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이전의 투구폼과 거의 차이가 없다. 초반에만 다리 치고 나오는 부분에서 조심스러운 모습을 나타냈지만 지금은 신경쓰지 않고 투구하는데 집중하는 것 같다. 다소 시동 걸리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경기 후반부까지 이어갈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더 이상 부상 부위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김인식 전 감독은 류현진의 게임 플랜과 몸 상태를 연결지었다.
“샌프란시스코전을 비교해 보면 상대 선발인 매디슨 범가너는 1회부터 전력투구했다. 그러나 현진이는 힘 조절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결과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겠지만 샌프란시스코전에서의 진정한 승자는 범가너가 아닌 류현진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전력 투구하지 않았어도 뛰어난 제구와 현란한 볼배합으로 8이닝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건 게임 플랜과 관계가 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이러한 게임 플랜을 세울 수가 없다. 샌프란시스코전을 통해 비로소 류현진이 완벽하게 건강을 되찾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류현진이 MLB에 보내는 ‘시그널’
2019시즌 MLB의 주목을 받고 있는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 사진=연합뉴스
류현진은 인터뷰 때마다 홈런보다 볼넷 허용하는 걸 더 싫어한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한테 그런 가르침을 받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송재우 해설위원은 류현진이 홈런을 맞더라도 볼넷을 주지 않겠다고 강조하는 배경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내가 보기에는 자신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 같다. 볼넷 허용을 꺼리는 투수라고 알려지면 상대 타자들은 불리한 볼 카운트에서 빠르게 승부 보려고 달려든다. 추신수처럼 선구안이 좋은 선수라면 류현진의 이런 심리를 이용하겠지만 대부분의 타자는 제구 잘되고, 바깥쪽 공에 강점을 갖고 있는 투수를 상대로 급하게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 류현진은 이 부분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또한 류현진이 이닝과 투구수를 늘리는 것도 이미지와 관계있다고 본다. 그동안 부상이 잦고 내구성에 문제가 있는 선수로 알려진 터라 류현진으로서는 내년 FA를 앞두고 자신의 건강함, 꾸준함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많은 이닝을 소화하고, 100개 이상의 투구수를 소화해도 전혀 문제없다는 것, 그래서 ‘부상’ 이미지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고, 피홈런이 있어도 볼넷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보이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류현진의 그 의도와 결과가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
송재우 위원은 이런 류현진을 향해 메이저리그에서 제구의 마술사로 불린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을 닮았다고 표현했다.
“류현진 경기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선수는 타자의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게 아닐까’하는. 그만큼 타자가 어떤 공을 노리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점에서 류현진은 그렉 매덕스나 톰 글래빈의 경지에 올랐다고 생각한다. 거의 그들과 같은 수준의 공을 던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인식 전 감독은 애제자 류현진에게 “크게 욕심내지 말고 한 달에 3승씩만 챙겼으면 좋겠다”면서 “3승씩 6개월하면 18승이다. 올시즌에는 18승만 한다고 생각하고 조바심내지 않기를 바란다”는 당부를 건넸다. 그런 점에서 타선의 침묵으로 승을 챙기지 못한 샌프란시스코전은 굉장히 아쉬운 경기로 남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