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와 올해 서울중앙지검의 사법행정권 남용 및 적폐 수사로 대기업 등의 대형로펌 방문이 줄어든 탓도 있지만, 대형 로펌들은 이제 돈이 될 만한 모든 곳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수사·재판에 대한 사후 대응은 물론, 사전 리스크 관리 개념의 기업 자문에 이제는 절세 및 M&A까지 활동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대형로펌들은 중소형 로펌들이 쉽게 진입할 수 없는 기술 관련 대정부 라이선스 취득 협조 분야에서도 경쟁을 벌이고 있다.
# ‘진짜’ 알짜배기는 정부 관련 기술 승인 시장
“진짜 알짜배기 시장은 기업 관련 라이선스를 받는 걸 법적으로 조언하는 겁니다. 어렵지 않게 외국계 기업들로부터 수임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죠.” (대형 로펌 파트너 변호사)
외국계 기업들이 국내에 상품을 출시하기까지 거쳐야 하는 승인 과정은 많게는 수십 번에 이른다. 특히 자동차나 의약품의 경우 국내법 기준에 맞춰 서류를 준비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이 시장을 선점한 곳이 바로 김앤장이라는 평이 나온다. 이는 김앤장 김영무 대표의 오래된 목표이기도 하다. 지난 2005년부터 ‘종합 자문사’를 목표로 김영무 대표 변호사가 해당 사업을 직접 챙겼는데 15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김앤장은 외국계 기업들의 대 정부 기술 및 판매 라이선스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다.
김&장 법률사무소 입구 전경. 고성준 기자
4대 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검찰 수사 대응하고 재판에서 변호하는 것으로 발생하는 수익은 김앤장 매출의 절반도 안 된다고 들었다”며 “정확한 시장 사이즈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지만 김앤장 전체 매출 1조 원 중 최소 3000억 원 이상은 정부 상대 기술 승인 시장이고 이를 사실상 김앤장이 독점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중소형 로펌 대표 변호사도 “4000억 원 이상이 대정부 기술 승인에서 발생한다는 얘기도 있다. 더 커지고 있다”고 귀띔할 정도다.
김앤장이 이 시장을 쉽게 선점한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분야별로 전관 모시기를 통해 개척한 시장이다. 앞선 파트너 변호사는 “외국계 기업들은 국내법을 모르는 것은 물론, 정부와 소통하는 방식도 잘 알지 못하는데 김앤장은 자문이라는 타이틀로 감리, 대관, 송무, 노사문제를 조언했고 이를 바탕으로 라이선스를 따는 부분까지 진출한 것”이라며 “이를 위해 환경부, 국토부 등 각부처 출신 고위 공무원들을 대거 영입하고 있다, 최근에는 네트워크가 아니라, 실무진과 직접 부딪히며 정부 측과 대화할 수 있는 사무관 급도 대거 충원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변호사가 아닌, 자문사로 거듭나기 위한 시도라는 설명이다.
실제 박근혜 정권 당시 국토해양부를 이끌었던 권도엽 전 장관은 2010년 8월 국토부 제1차관에서 물러난 뒤 같은 해 12월부터는 김앤장 고문으로 일하다가 다시 장관으로 임명돼 논란이 된 바 있다. 김앤장이 어떻게 정부 관련 네트워크를 확보해 대정부 기술 승인 시장을 독점할 수 있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김앤장 소속의 한 변호사 역시 “김앤장은 워낙 거대해서 자신이 맡은 일 외에는 전혀 돌아가는 소식을 알기도 어렵고 알 수도 없게 해놓은 면이 있다”면서도 “최근에는 확실히 정부 승인 등 기업들의 자문 부분으로 더 많은 얘기가 들리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 다른 로펌들도 ‘발등에 불’ 진출 쉬운 곳부터
기업들에 대한 법률 자문은 로펌들에게는 이득이 되는 부분이 많다. ‘돈’이 되기도 하지만 향후 검찰 수사 등 이슈가 발생했을 때 ‘함께 해오던 파트너 로펌’과 변호 계약을 체결하는 일이 많다는 장점도 있다. 실제 폭스바겐 등 외국계 기업 대다수가 검찰 수사 때 김앤장을 선임한 것도 이 같은 이유로 알려졌다. 향후 고객 선점 효과가 크다는 얘기인데, 그러다보니 로펌들의 시장 진출 경쟁도 뜨겁다.
로펌들이 쉽게 시작하는 시장 중 하나는 바로 상속 비즈니스 영역이다. 상속세가 50%에 육박하다보니 조금이라도 절세를 하려는 VIP들 수요가 적지 않고, 국세청이 갈수록 엄격한 기준으로 세금 등을 추징하다보니 매출 1000억 원 미만의 중소기업 오너들이 자문을 원하는 경우도 늘었다는 후문이다. 실제 법무법인 태평양은 이 시장을 타깃으로 한 가업승계팀을 운영하고, 법무법인 율촌 역시 가사 전문법관을 영입하는 등 승계 관련 0.1%의 VVIP 고객 공략에 나섰다.
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상속과 같은 절세도 그렇지만, 기업 M&A 관련 자문도 시간과 부담에 비해 수억 원, 많게는 수십억 원을 받아낼 수 있는 규모가 큰 시장이다 보니 로펌들 간 경쟁이 본격화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 ‘세금 덜 내는 법? 잘 돌려받는 게 더 중요’ 조세 시장도 HOT
기업들의 가장 큰 관심인 ‘세금을 덜 내고, 잘 돌려받는’ 조세 시장도 로펌들이 최근 관심이 많은 자문 영역 중 하나다. 김앤장과 법무법인 율촌이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세무 영역인데, 태평양과 광장도 공격적인 영업을 통해 시장 확대에 나섰다.
80여 명 안팎의 대법원 재판연구관 중 10여 명이 담당하는 조세조(組), 그리고 이를 이끄는 조세조장(長) 출신 판사들은 항상 대형로펌의 영입 대상이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올해 초 심규찬 전 대구지법 김천지원 부장판사(사법연수원 30기)를 영입했다. 이는 2013년 조일영 전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21기)와 지난해 강석규 전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25기)에 이어 세 번째다. 심 전 부장판사는 과세의 절차적 적법성에 정통하다는 평을 받는다.
법무법인 광장도 비슷한 시기 심 전 부장판사 전임인 김성환 전 춘천지법 부장판사(29기)를 영입하며 조세 시장에서의 공격적 영업 확대에 나섰다. 광장은 지방에 위치한 중소기업들을 상대로 한 지방세 전문팀을 지난해부터 운영하는 등 수익 다양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들의 목적은 단순히 절세를 넘어,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까지도 적극 시도하는 것이다. 10대 로펌 수준의 파트너 변호사는 “동료 변호사가 중소기업이 수백억 원 세금에 부당성을 문제 제기하는 소송 계약을 하면서 성공 보수로 50% 정도를 제시했는데, 실제 200억 원가량의 세금을 돌려받는 판결을 이끌어내면서 성공보수로 100억 원 정도를 받기도 했다”며 “나도 조세 부분을 팔 걸 그랬다. 최근 변호사들이 가장 관심이 많은 영역 중 하나가 기업 상대 조세 자문과 소송”이라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