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봉 아마8단.
서준우가 둔 최강부 결승대국을 놓아본 한 프로기사는 “결이 좋은 바둑이다. 초반 진행과 승부처에서 결단력이 돋보인다. 기재가 남다르다”라고 평가하며 서준우 어린이의 밝은 미래를 전망했다. 서준우는 하성봉 아마 8단이 손수 키워낸 인재다. 일요신문배 대국 현장에서 끝까지 서준우 선수 뒤를 지켰던 하성봉은 “준우에게 올해 세 번만 우승하자고 말했는데 이제 목표를 다섯 번으로 수정해야겠다”라고 말한다.
‘교육자’로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는 하성봉 아마 8단. 하성봉은 입단과 관련해선 ‘비운의 기사’로 불린다. 결정적인 대국에서 유리했던 바둑을 반집 역전패해 떨어진 에피소드가 한두 건이 아니다. 세계 아마대회 우승자에게 주던 특례입단제도가 폐지된 해 우승한 운수 나쁜 주인공이기도 하다. 하성봉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입단대회만 30번 이상 나갔습니다. 아마추어 선수가 대회에서 느끼는 아픔과 상처는 누구보다 제가 잘 압니다. 중요한 대회에서 져서 낙담하는 아이들에겐 제 경험을 주로 들려주면서 위로해줘요”라고 말한다.
하성봉이 키운 영재 서준우 어린이가 일요신문배 최강부 정상에 올랐다.
일본에서 4년 체류하던 중에는 이치리키 료, 후지사와 리나의 입단을 도왔지만, 스파링 사범에 불과했다. 그래서 온전히 자신의 손으로 만든 윤예성(17년 입단) 등이 프로가 되었을 때 기쁨이 남달랐다고 말한다. 애제가 서준우에게 힘을 쏟는 이유다. 최근 새로 새운 도장 이름은 전북바둑도장이다. 전주에서 하성봉 도장과 권병훈 바둑도장을 하나로 합쳐 만들었다. 전주가 아니라 ‘전북’이라고 이름 지은 건 전라북도에서 최고의 도장을 상징한다는 의미다. 도장에는 하성봉, 권병훈 원장 외에도 아마랭킹 1위 정찬호 선수가 상주하고, 현역 시니어 선수 최진복 씨도 도장 관리에 손을 거든다. 기숙사도 3층에 자리하고 있다.
하성봉은 “앞으로 프로기사는 바둑실력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기본 소양이 절실한 시대입니다. 최근 한국기원과 손잡고 연구생 출신 아마추어를 위해 아카데미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승부에서 정점으로 가려면 기초 내공이 튼실해야 합니다. 우리 도장에서도 얄팍한 승부기술보단 진정한 기본기와 힘을 길러주는 데 주력합니다”라고 말한다. 남은 인생의 목표가 아이들과 후배들이 더 좋은 바둑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 한다. 최근에는 아마바둑선수협회를 만들어 회장으로 아마선수들 권익보호를 위해서도 힘쓴다.
제8회 일요신문배 최강부 결승 복기장면이다. 오른쪽이 우승 서준우 군, 왼쪽이 준우승 손믿음 군.
하성봉은 “한국아마바둑선수협회는 아마추어 바둑선수 권익을 보호하고, 바둑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만든 단체다. 사회에 갓 나온 연구생 출신 선수들은 세상물정이 어둡다. 대국료 지급이나 처우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기도 하고, 전국체전이나 내셔널리그에서 팀과 협상할 때도 피해를 보는 사례가 있다. 올해부터 전국체전 확정배점이 부여되면서 시도협회에서 선수들을 끌어올 욕심으로 연구비 등을 부풀려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대처할 방안이 전무하다. 대한바둑협회도 중간에서 역할을 하지만 체육회 소속이라 얽매인 부분이 있다. 개인과 단체가 협상하면 언제나 개인이 약자가 된다. 선수 개인이 나서기 가려운 부분을 잘 대변하는 든든한 협회가 되겠다. 선수들 권익 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규정과 절차는 만들고 있다. 선수들도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혼자 고민하지 말고 선수협회나 대한바둑협회에 알려주길 바란다. 선수협회는 팀과 선수 사이에서 매개체 역할을 한다”라고 설명했다.
전성기가 지났냐고 묻자 “내 전성기는 2000년 초부터 2011년까지였다. 2004년에 아마랭킹 1위에 올랐고, 2008년에 세계아마바둑선수권에서 우승했다. 2011년에는 일본 아함동산배에서 일본 프로기사들과 대결해 8강까지 올랐다. 당시는 20초나 30초 안에 완벽한 형세판단과 수읽기를 했다. 최근 대회에 나가면 후반 초읽기에서 많이 무너진다. 인공지능으로 복기해보면 80~90% 이겨있는 바둑인데 그게 뒤집어진다. 10년 전 하성봉과 지금 하성봉이 바둑을 두면 누가 이길까? 바둑실력만 보면 지금이 훨씬 세다. 그러나 초읽기가 있는 승부라면 10년 전 하성봉이 이긴다. 대회 바둑이 그런 거다”라면서 웃었다.
지금은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가장 보람 있다는 ‘승부사’ 하성봉은 이제 37세 중년이 된 ‘교육자’ 하성봉이 되었다. 매번 아쉽게 프로의 길에서 좌절했지만, 지나고 보니 아마추어 바둑계를 위한 신의 한 수라는 생각도 든다.
박주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