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사건을 겨냥하고 있는 검찰 수사의 핵심 키워드는 ‘삼성그룹 개입’과 ‘고의성 입증’ 두 가지다. 검찰은 삼성바이오가 분식회계로 회사 가치를 부풀렸고, 결과적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삼성이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을 위해 ‘그룹 차원에서’ ‘고의적으로’ 삼성바이오 회계 장부 조작 등에 개입했다는 걸 입증하는 게 관건인 셈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최근 삼성 그룹의 조직적인 증거인멸 정황을 포착했다. 사진=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2부(송경호 부장검사)는 최근 핵심 키워드 가운데 한 가지인 ‘그룹 차원의 개입’ 정황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삼성바이오,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 등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자료와 이들 회사가 과거 금감원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 등에 제출한 회계자료가 서로 다른 사실을 확인하면서부터다. 검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수사팀은 같은 회사에서 나온 같은 자료들이 서로 다른 점을 토대로 증거인멸을 의심했고, 이에 대해 삼성바이오와 에피스 관계자들을 차례로 불러 조사했다.
# 증거인멸 정황 속 ‘옛 미전실’ 그림자 포착
이 과정에서 검찰은 삼성전자 사업지원TF가 증거인멸에 개입한 정황을 포착했다. 사업지원TF 소속 임원 백 아무개 상무와 보안선진화TF 소속 서 아무개 상무가 직접 6~7차례 에피스에 방문해 증거 지우기를 지휘했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지난 4월 28일 백 상무와 서 상무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여기에 보안 업체인 삼성SDS 소속 직원 5명이 현장을 찾았던 정황도 포착됐다.
이들은 양 아무개 에피스 상무 등과 함께 에피스 직원 수십 명의 노트북과 스마트폰 등을 일일이 뒤졌으며, 여기엔 고한승 에피스 사장의 스마트폰도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 부회장을 뜻하는 그룹 내 이니셜인 ‘JY’와 ‘미전실’ ‘합병’ 등의 키워드를 넣어 직원들의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검색했고, 이 단어가 들어간 문건과 보고서를 모두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 3일엔 그동안 숨겨져 있던 회사 공용서버를 떼어내 자신의 집에 숨겨놨던 에피스 직원을 증거인멸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이 직원은 검찰 조사에서 “지난해 5~6월 사이 회사 서버를 떼어내 보관해 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나흘 뒤인 7일엔 인천 송도에 위치한 삼성바이오 공장 바닥에 통째로 묻혀 있던 공용서버와 노트북 등을 발견했다. 이 서버와 노트북 등은 회사설립부터 검찰 수사가 점차 가시화되던 시점인 지난해 중순까지 사용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같은 광범위한 증거인멸 정황을 토대로 삼성이 조직적으로 개입했고, 특히 그룹 수뇌부가 참여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특히 에피스 임직원들의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점검한 앞서의 백 상무 소속 부서가 주목 받고 있다. 그가 속한 삼성전자 사업지원TF는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로 통했던 옛 미래전략실 핵심 인원을 주축으로 구성된 조직이기 때문이다.
앞서 삼성은 2017년 초 미전실을 해체한 뒤 삼성전자(전자 계열사)·삼성생명(금융 계열사)·삼성물산(비금융 계열사)에 각 분야를 조율하는 TF조직을 꾸렸다. 이 가운데 특히 이재용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정현호 전 미전실 인사지원팀장이 이끄는 삼성전자 사업지원TF는 그룹 내 전자 계열사 간 업무조정과 더불어 그룹 차원의 현안을 챙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검찰 수사팀은 삼성그룹 미전실 핵심들이 소속된 부서 임원이 삼성바이오-에피스 증거인멸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 등을 토대로 ‘증거인멸을 지시하고 주도한 인물들이 결과적으로 분식회계를 주도한 인물’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삼성전자 TF 임원 등 그룹의 ‘윗선’으로 수사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 ‘본류’ 분식회계 의혹 핵심 키워드는 ‘콜옵션’
증거인멸과 별개로 검찰이 이번 압수수색 등을 통해 확보한 공용서버와 노트북 등으로 ‘본류’인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수사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수사 과정에서 확보되지 않았던 자료들인 만큼, 핵심증거로 지목되고 있다. 검찰은 포렌식 작업을 진행 중이며 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구체적인 확인 작업에 나설 방침이다.
분식회계 의혹 수사에선 ‘콜옵션’이 핵심 키워드다. 2012년 삼성바이오는 미국 회사인 바이오젠과 함께 에피스를 설립하는데, 이 과정에서 바이오젠에게 에피스 지분을 ‘50% -1주’까지 살 수 있는 권리인 ‘콜옵션’을 내줬다. 삼성바이오는 2012년~2013년 콜옵션을 공시하지 않고 부채로도 기록하지 않았다.
삼성바이오는 2015년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커졌다는 이유로 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했다. 부채로 계산되는 콜옵션이 장부에 반영되면 자본잠식에 빠질 수 있었지만 이 회계 처리로 반대로 4조 5000억 원이 넘는 장부상 이익을 거뒀다. 이 때문에 삼성바이오의 모회사이자, 이재용 부회장이 지분을 다수 보유한 제일모직의 가치가 부채로 처리했을 때보다 높게 평가됐다. 이후 제일모직은 삼성물산과 유리한 위치에서 합병했고, 이를 토대로 이 부회장은 그룹 장악력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검찰은 앞서의 서버와 노트북 등 확보된 증거와 증거인멸에 참여한 관계자들의 추가 진술들을 토대로 삼성바이오가 콜옵션을 고의로 숨겼는지 여부에 대해 파악할 계획이다. 특히 검찰은 지난 4월 삼정KPMG와 딜로이트안진 소속 회계사들로부터 “삼성을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하기도 했다. 이들은 검찰 조사에서 “지난해 금융감독원 조사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 조사 등에서 삼성바이오의 요구로 ‘사전에 합작 계약서를 입수해 콜옵션 조항을 온전히 파악하고 있었다’고 말(거짓말)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삼성바이오는 “회계 변경은 회계법인의 공인 아래 합법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해 왔다.
한편, 삼성바이오와 에피스, 각 회계법인 측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검찰 수사 중인 내용에 대해 답변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