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으로 얼룩진 국회가 고발전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5일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 제출을 저지하기 위해 회의실 입구를 막아선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박은숙 기자
지난달 말,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는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 처리를 두고 정당 간 거친 몸싸움이 벌어졌다. 당시 한국당 의원들은 여야 4당이 합의한 개혁 법안 접수를 막기 위해 의안과 앞을 온몸으로 봉쇄했고, 이 과정에서 육탄전이 벌어졌다. 밀고 밀치고 바닥에 드러누우며 몸싸움이 이어졌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같은 달 26일 국회 내 몸싸움 및 회의 방해 행위 등을 처벌하는 내용의 국회법과 공직선거법, 형법 규정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직후, 각 정당은 조 수석의 메시지에 응답하듯 너나할 것 없이 고발전에 나섰다. 여야 의원들은 “폭력 국회를 만든 책임을 져라”며 상대 정당을 고발하고, 이에 반격하기 위해 맞고발, 추가고발까지 이어졌다.
민주당은 즉각 법률단을 꾸렸다. ‘한국당 불법행위처벌을 위한 고발추진단장’에는 법률위원장인 송기헌 의원과 이춘석 의원, 강병원 원내대변인, 현근택 변호사, 장현주 변호사로 구성됐다. 이들은 지난달 26일, 한국당 의원 18명을 포함한 총 20명을 국회법 제165조 및 166조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게다가 의안의 팩스 접수 등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점에서 형법 136조 ‘공무방해 혐의’를 내세웠고, 팩스로 접수된 법안을 빼앗아 파손한 것을 문제삼아 형법 141조 ‘공용서류 무효죄’도 주장했다.
이때 피고발인은 나경원 원내대표와 강효상·곽상도·김명연·김선동·김성태·김순례·김용태·김정재·김진태·김태흠·김학용·김현아·민경욱·박덕흠·박성중·백승주·성일종·송언석·신보라·안상수·엄용수·여상규·원유철·윤상직·윤상현·윤재옥·이만희·이양수·이은재·이장우·이종구·이종배·이주영·이진복·이채익·이철규·장제원·전희경·정갑윤·정양석·정용기·정유섭·정진석·정태옥·조경태·주광덕·최연혜·홍철호 등이다. 이 외에도 또 보좌관 1명과 비서관 1명도 포함했다.
실제 몇몇 의원들은 당시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동료 의원을 감금하거나 팩스 등 기물을 파손했다. 이들의 행위를 비춰볼 때 고발이 타당해 보이지만, 일부 의원실은 의아하다는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장우 의원실은 “글쎄, 당시 어떤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면 모를까…. 잘 모르겠다. (고발에 대한 대응도) 가시화되면 그때 가서 하겠지만, 지금으로선 들은 게 없다”고 밝혔다.
한국당도 대응에 나섰다. 한국당은 이번 고발전을 위한 법률단을 따로 꾸리진 않았지만, 기존의 당 법률자문위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현재 법률자문위 규모는 37명으로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낸 최교일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한국당 법률자문위의 지원으로 한국당은 고발을 진행하고 있으며, 고발인 이름은 ‘자유한국당’이다. 한국당 또한 고발장을 공식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상황이다.
한국당은 4일, 이정미 정의당 대표, 김두관 민주당 의원 등 16명에 대해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공동폭행) 등의 혐의로 고발장을 접수했다. 한국당은 4월 27일,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와 박범계·백혜련·송기헌·이종걸·강병원·표창원·김병기·이철희·홍익표·박주민·박찬대·박홍근·우원식·이재정 의원과 정의당 여영국 의원, 성명불상자 등 총 17명을 서울중앙지검에 1차로 고발했다. 동시에 문희상 국회의장과 김관영 전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이후 30일 김병관 민주당 의원 등 13명을 2차 고발했고 이달 4일이 3차 고발이다.
정의당도 고발전에 가세했다. 정의당은 당초 한국당 의원 40명과 보좌진 2명을 고발하겠다고 밝혔으나, 의원 한 명은 잘못 취합된 것으로 판단, 의원 39명과 보좌진 2명 총 41명을 고발했다. 정의당은 고발장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밝히지 않았지만 대략적인 고발명 등은 공개했다.
정의당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고발 내용을 구분했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을 감금한 사건이 있었던 4월 25일 국회의원회관 633호, 이곳에 있었던 엄용수‧김정재‧민경욱‧박성주‧백승주‧송인석‧이양수‧정갑윤‧여상규‧이만희 의원을 ‘특수주거침입’과 ‘특수감금’으로 규정짓고 이들을 고발했다. 이 외에도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실(본청 445호실)에서 25일과 26일, 각각 시간별로 나누고 이곳에서 주로 회의실을 점거한 한국당 의원들을 ‘국회회의 방해’로 고발했다.
7일 기준, 국회 패스트트랙 관련 충돌로 접수된 고소‧고발건이 총 14건, 164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총 164명 중 현역 국회의원은 97명이며 자유한국당 62명, 더불어민주당 25명, 바른미래당 7명, 정의당 2명, 무소속 1명으로 구성됐다.
양측은 현재 고발장을 접수했지만, 피고발인에 대한 당시 구체적인 행위나 혐의에 대해 추가적인 정보를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재판에 앞서 이에 대한 내용이 누설될 경우 상대 측에서 이를 방어하기 위한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때문에 송기헌 의원실 역시 “아직은 알려드릴 수 없다”라고 답할 뿐, 추가적인 정보를 들을 수 없었다.
여야 고발전으로 향후 정국의 경색이 예상된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7일 ‘무관용 원칙’을 거듭 강조했다. 홍 원내대표는 “국회가 법을 가장 준수하고 법을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치적인 거래로 협상용으로 이번 문제(선진화법 고발 사건)가 유야무야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철희 원내수석부대표도 “(선진화법은) 친고죄도 아니어서 우리가 고발을 취하한다고 해도 풀리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여야가 이를 협상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 아니냐는 가능성도 제기했다. 하지만 전문가의 의견은 달랐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어차피 이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니기 때문에) 수사가 중단되진 않는다. 설령 이들이 취하한다 할지라도 검찰은 수사할 것이고, 벌금형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며 “법은 이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500만 원 이상의 벌금만 받아도 국회의원은 재출마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 평론가는 이어 “민주당도 고발을 취하해봤자 좋을 것 없다. ‘새로운 대한민국’ ‘적폐청산’을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에서 국회 폭력에 대한 고발을 취하하면 여론의 역풍을 받을 것이다. 민주당도 적폐가 될 것”이라며 “오히려 이를 끝까지 밀어 붙이면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일부 당직자들에 대한 취하는 괜찮지만, 폭력을 행한 의원들에 대해서는 취하하지 말아야 한다”며 “아무리 한국당 지지자라 할지라도 폭력 국회를 용서하자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당 관계자들은 고발전에 냉담한 모습이다. 민주당 소속 비서관은 “민주당은 일방적인 피해자인데 처벌될 거리도 없다”고 밝힌 반면, 한국당 소속 비서관은 “뭐 얼마나 가겠냐 저러다가 시들해지겠지”라고 말했다.
서울남부지검은 국회 패스트트랙 대치와 관련해 국회법 위반, 공무집행방해, 재물손괴 등 고소 및 고발 사건을 영등포경찰서에 수사하도록 지휘할 예정이라고 8일 밝혔다. 영등포서 관계자는 “(일부 사건은) 서울남부지검 지능팀으로 넘겨서 경찰의 손을 떠났지만, (경찰도 추가 수사를 위해) TF팀을 새로 꾸린 걸로 알고 있다”며 “(이 사건이 접수되고 난 뒤) 영등포서는 많이 힘들어했다. 정치적인 문제이지 않나. 잘해도 본전이다. 하지만 어느 쪽 눈치도 안 보고 공정하게 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당은 민주당의 한 보좌관도 고발장에 추가했다. 이 보좌관은 “제가 고발당한 건 몰랐지만,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대응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