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설치된 대형 현수막
5월 1일 오후 8시 강남 대치동의 A 교회에서 신도들 간의 집단 싸움이 벌어졌다. 교회 주요 의사결정기구인 ‘당회’ 개최 문제를 두고 담임목사 지지파 50여 명과 반대파 30여 명이 충돌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1주일 만인 8일 또 한 차례 당회가 열렸다. 1일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안건을 처리하기 위한 정기 당회였다.
예정된 개회 시간은 8일 오후 8시 10분이었다. 그러나 교회 주변에서는 예정 시간 1시간 전부터 전운이 감돌았다. 정문에는 수십 대의 차들이 바리케이드처럼 빽빽하게 주차돼 견고한 방어막 역할을 했다. 교회의 1층과 2층을 잇는 외부 계단에는 대형 현수막이 쳐져 각 층으로 이동을 하려면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야만 했다. 1층과 2층 정문 입구에는 문지기들이 서 있었다. 신원이 확인된 자만 예배실로 입장할 수 있었다. 취재차 방문한 기자의 신원을 묻는 교인도 여럿이었다. 현재 A 교회의 1층은 담임목사 반대파가, 2층은 지지파가 사용하고 있다.
오후 7시 30분쯤 되자 담임목사 측 교인 한 명이 “벌써 대치 상황이란다. 내려가자”며 짐을 챙겼다. 2층 복도에 모인 교인 20여 명의 손에는 셀카봉을 연결한 카메라가 들려있었다. 한 교인은 “손이 스치기만 해도 폭력이라고 고소를 하니 이렇게 증거를 남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황은 1층의 담임목사 반대파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역시 CCTV를 가리키며 “CCTV와 휴대폰으로 모든 장면을 찍어서 증거를 모아둬야 한다”고 말했다.
양측의 갈등은 벌써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갈등이 본격적으로 심화된 것은 담임목사 박 아무개 씨가 교회 내 안식년 규정을 거부하면서부터다. 박 목사 반대 측에 따르면 A 교회는 1998년 8월 15일 안식년제 규정을 마련해 2000년 10월 8일부터 안식년제를 해오고 있다고 했다. 담임목사와 장로가 각 6년의 시무를 마치면 1년 동안 안식년을 갖는 것이다.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온 목사는 당회원 3분의 2 이상의 재신임 동의를 받아야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담임목사의 무조건적인 권력 행사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교회 규정이었다. 반대 측의 한 집사는 “박 목사가 재신임을 받지 못할 것을 염려해 안식년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박 목사 측은 박 목사가 6년간 시무를 하면서 교회 내에 20년간 쌓인 재정비리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원로목사와 재정을 담당한 장로가 수십억 원대의 횡령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박 목사 측은 “2008년 공시지가 37억 원의 땅을 교회가 132억 원에 샀다. 400여 개의 차명 계좌도 발견됐다”며 횡령 의혹을 제기했다. 그렇지만 해당 사건을 맡은 수서경찰서와 의정지방검찰청은 이에 대해 혐의없음(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후에도 서로를 향한 양쪽의 소송은 계속됐다.
신도 간 갈등을 겪고 있는 대치동 A 교회
소송전은 육탄전으로 번졌다. 지난 1월 고등법원이 박 목사에게 직무정지 처분을 내린 까닭이다. 법원은 “A 교회의 안식년제가 대한예수장로회 통합교단 총회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재신임을 받지 않은 박 목사는 2018년 1월 1일부터 목사의 자격을 상실하며 이를 대신할 직무대행자로 법률전문가를 보낸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런 가운데 직무대리인이 5월 1일 임시 당회를 열려고 하자 당회를 지키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간의 물리적 충돌이 생긴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박 목사 지지 측이 외부 용역 업체를 동원해 당회를 막았다는 주장까지 제기돼 논란이 일었다. A 교회의 용역 동원을 둘러싼 논란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오기도 했다.
이를 두고 박 목사 지지 측의 한 집사는 8일 기자에게 “당회장은 목회자만이 할 수 있다고 교회법에 명시되어 있다. 목사가 아닌 자가 연 당회는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용역 업체 논란에 대해서는 ”2018년 3월 2층 예배실을 되찾으면서 허가 받은 경호팀이 들어온 적은 있으나 그 이후엔 우리 청년부 친구들이 교회를 지켜준 것”이라고 말했다. 2층 입구를 막고 있는 남성 두 명도 “자신은 청년부”라고 말했다.
한편 박 목사 반대 측은 “대표자가 부재한 상황이 지속되면 교회 관리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법원에서 내린 판단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용역 업체 논란에 대해서는 “여지 없이 외부 용역을 쓴 것이다. 얼굴도 모르는 청년 교인들이 갑자기 늘어난 것이 수상하다”고 답했다.
양측의 치열한 대립을 두고 일각에서는 현재 결국 재산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A 교회의 다툼을 오랜 시간 봐왔다는 주변 상인은 “5년 전까지만 해도 교인이 2만여 명이었는데 지금은 기껏해야 2000~3000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교회와 깊게 관련되지 않은 평신도들은 제법 나갔을 것”이라며 “교회 헌금으로만 매년 70억 원이 들어온다고 들었는데 결국 다 이권 다툼 아니겠냐”고 되물었다. 관계자에 따르면 A 교회의 총 재산은 수백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8일 열린 정기 당회는 양측의 팽팽한 대립 끝에 1시간 늦춰진 오후 9시쯤 시작해 10시 30분쯤 마무리됐다. 애초 1일에 버금가는 2차 충돌이 예상됐으나 격렬한 몸싸움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날 당회에서는 임시당회장 청원, 교회 시설 사용권 등을 비롯해 교회 운영 대외비 처리를 위한 세무서 대표자 정정 절차 등이 결의됐다고 알려졌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