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5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마스터스 대회 18번 홀. ‘돌아온 황제’ 타이거 우즈(43)가 마지막 퍼팅을 성공시키자 갤러리에서는 일제히 ‘타이거’를 연호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합계 13언더파의 짜릿한 역전승이었다. 우승을 확신한 순간 양손을 번쩍 들어올린 우즈는 지난 10년의 한을 풀기라도 하는 듯 큰소리로 포효했고, 이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팬들과 가족들은 뜨거운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이로써 우즈는 마스터스 대회 통산 다섯 번째, 그리고 2005년 이후 14년 만에 다시 그린재킷을 입는 데 성공했다. 메이저 대회 우승은 2008년 US오픈 우승 이후 11년 만이었다.
우즈의 컴백은 골프팬들뿐만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0년 동안 잦은 부상과 수술, 음주운전과 성추문으로 끝없이 추락했던 우즈가 다시 재기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보란듯이 재기에 성공했고, 마침내 미국인 최고의 영예인 자유의 메달까지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모두가 끝났다고 말했을 때 희망을 쏘아올린 우즈의 파란만장했던 골프인생을 돌아봤다.
타이거 우즈가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권위의 훈장인 ‘자유 메달’을 수여받았다. EPA/연합뉴스
우즈가 마스터스 대회에서 처음 우승한 것은 1997년이었다. 당시 22세였던 우즈는 흑인 및 아시아계로서는 최초로 마스터스 우승컵을 들어 올리면서 전설의 시작을 알렸다. 이 우승은 메이저 대회 첫 우승이기도 했다. 그후 2001년, 2002년, 2005년 세 차례 그린재킷을 더 입었고, 올해 한 번 더 우승하면서 메이저 대회 우승 15승, PGA 투어 81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우즈가 재기에 성공하면서 골프팬들의 관심은 과연 그가 잭 니클라우스의 메이저 최다승(18승)과 샘 스니드의 PGA 투어 최다승(82승)의 기록을 경신할 수 있을지에 쏠리고 있다. PGA 투어 최다승은 가뿐히 경신할 수 있을지 몰라도 고질적인 허리와 왼쪽 무릎 부상으로 과연 메이저 대회 3승을 이룰 수 있을까에 대한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우즈의 마스터스 우승으로 흥이 난 것은 골프 업계도 마찬가지다. 특히 우즈의 스폰서들은 이번 우승으로 엄청난 광고 효과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우승 효과는 곳곳에서 즉각 나타났다. 가령 우즈가 경기에서 사용했던 골프공 회사인 ‘브릿지스톤 골프’사의 웹사이트 트래픽이 순간 급증했는가 하면, 온라인 골프용품 판매 사이트인 ‘PGA 투어 슈퍼스토어’의 주말 매출은 1년 전보다 50% 증가했다. 이 가운데 우즈가 입었던 것과 비슷한 터틀넥 스타일의 빨간색 나이키 셔츠는 주말 판매량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대회 다음 날 ‘나이키’의 주가는 1%가량 상승했고, 우즈의 골프백에 새긴 로고 덕분에 에너지 음료 제조업체인 ‘몬스터 베버리지’의 주가는 약 2% 상승했다. 우즈와 관련없는 다른 골프 장비 제조업체들의 주가도 동반 상승했다. 가령 클럽 제조업체인 ‘캘러웨이 골프’의 주가는 1.5% 올랐다.
이에 대해 시러큐스대학의 릭 버튼 교수는 “골프 업계는 우즈가 다시 우승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하면서 “앞으로 골프대회의 TV 시청률과 골프용품 판매도 증가할 것”이라고 점쳤다. 그러면서 버튼 교수는 “스타 플레이어들은 더 많은 사람들을 경기장으로 끌어모은다. 이것은 일종의 쓰나미 효과다”라고 말했다.
실제 골프 업계는 우즈가 부상과 성추문으로 싸우던 지난 10년 동안 다소 활력을 잃었었다. 지난 2016년, ‘나이키’는 의류 판매에 집중하기 위해 골프용품 판매를 중단했으며, 경쟁사인 ‘아디다스’는 아예 골프 사업을 접었다. 미국에서 가장 큰 골프용품 체인점인 ‘골프스미스’는 파산 보호 신청을 하고 다른 업체에 인수되기도 했었다.
사정이 이러니 황제의 부활을 반기는 사람이 많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하지만 부활의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지독한 부상과 세간의 조롱과 비아냥을 견디고 이뤄낸 한편의 드라마였다. 프로 데뷔 후 지난 23년간 우즈의 골프 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으며, 스릴 넘치는 할리우드 영화로 제작해도 모자랄 만큼 비현실적이었다.
‘잭 니클라우스를 이기겠다’고 말한 당찬 꼬마 타이거 우즈.
우즈의 천재성은 이미 아마추어 시절부터 드러났다. 20세 때 미 아마추어 대회 3연패라는 기록을 달성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스탠퍼드대 재학 시절에는 NCAA 개인 골프선수권 대회에 출전해서 우승하기도 했다. 1996년 프로로 전향하면서 대학을 중퇴했던 우즈는 당시 골프 선수로서는 가장 좋은 조건으로 ‘나이키’, ‘타이틀리스트’와 계약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프로 데뷔 직후 라스베이거스 인비테이셔널에서 첫 번째 PGA 투어 우승을 했으며, 그해 PGA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세계랭킹도 33위로 뛰어올랐다.
그렇게 시작된 황제의 시대는 이듬해 마스터스 대회에서 온갖 기록을 쏟아내면서 본격적으로 막이 올랐다. 270점이라는 높은 점수와 12타 차라는 어마어마한 점수 차이로 우승했던 우즈는 마스터스 역대 최연소 챔피언이자 최초로 그린재킷을 입은 흑인 선수라는 기록까지 세웠다. 또한 같은 해 PGA 4개 대회에서 추가로 우승하면서 최연소(21세) 및 가장 빠른 기간(42주) 안에 세계 랭킹 1위에 오르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PGA 투어 역대 최다 금액인 266만 6833달러(약 31억 원)를 벌어들인 해이기도 했다.
그리고 찾아온 2000년은 우즈의 최고 전성기였다. 4개 메이저 대회 가운데 마스터스를 제외한 PGA 챔피언십, US오픈, 디오픈 챔피언십에서 우승했고, 총 아홉 번의 PGA 투어에서 승리의 기쁨을 맛봤다. 특히 US오픈에서는 메이저대회 사상 최대인 15타 차로 우승하면서 다시 한 번 기록을 세웠다. 당시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이 대회를 가리켜 ‘골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기’라고 칭하기도 했다.
2001년에는 두 번째 마스터스 우승을 했고, 이로써 우즈는 4개 메이저 대회를 동시에 석권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또한 24세의 나이로 최연소 그랜드 슬램 달성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97주 연속 세계랭킹 1위라는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02년에도 우즈의 거침없는 행보는 계속됐다. 마스터스와 US오픈에서 우승했고, 176주 연속으로 세계 랭킹 1위 자리를 지켜나갔다. 하지만 2002년 말부터는 왼쪽 무릎의 양성 낭종을 제거하면서 한동안 침체기를 겪기도 했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PGA 투어 우승은 최소 다섯 번 이상씩 했으나 메이저대회 우승은 한 차례도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무너질 우즈가 아니었다. 2005년 7월, 다시 랭킹 1위에 복귀한 우즈는 마스터스에서 네 번째 우승을 했고, 브리티시 오픈에서도 우승하면서 세계 최초의 10억 달러(약 1조 원) 운동선수가 됐다.
2006년에는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잠시 필드를 떠나 있었지만, 2007년 컴백하면서 US오픈에서 준우승했다. 또한 십자인대 파열로 고전했지만 그럼에도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는 불굴의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2008년 마스터스 준우승 후 무릎 연골 수술을 받았던 우즈는 US오픈 직전에는 왼쪽 정강이뼈 피로골절 진단을 받았다. 그럼에도 아픈 무릎을 이끌고 절뚝거리며 대회에 출전했던 우즈는 보란듯이 우승했고, 일주일 뒤 무릎 수술을 받은 후 8개월 동안 휴식기에 들어갔다.
2009년 11월 타이거 우즈는 불륜 스캔들로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았다. 당시 사건을 보도한 ‘뉴욕포스트’ 표지.
에스코트걸, 포르노 배우, 나이트클럽 호스티스 등 우즈와 잤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이 추가로 속속 등장했으며, 그 수만 최소 열다섯 명에 달했다. 한편에서는 총 120명가량이었다고 추측하기도 했다. 그들 중 몇몇은 당시 불면증에 시달렸던 우즈가 밤새 섹스를 했다는 자극적인 폭로를 했는가 하면, 뉴욕의 한 마담은 우즈가 자신의 단골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난잡한 사생활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우즈는 그렇게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았다. 아내와는 이혼했고, AT&T, 게토레이, 제너럴 모터스, 질레트 등 메이저 스폰서들은 거의 대부분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결국 45일 동안 재활원에서 섹스 중독 치료를 받았던 우즈는 2010년 마스터스로 복귀할 때까지 필드에 오르지 않았다. 마스터스 복귀 성적은 4위였다.
하지만 다시 그를 붙잡은 것은 고질적인 무릎 부상이었다. 여기에 아킬레스건 부상까지 겹치면서 대회 성적은 끝을 모르고 추락했다. 2011년에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 출전했다가 기권했으며, 세계 랭킹은 58위로 추락했다. 2012년 내내 부상에 시달렸던 우즈는 하지만 아놀드파마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하면서 2009년 9월 이후 처음으로 PGA 투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13년에는 PGA 투어 우승 5회를 추가하면서 624주 만에 세계 랭킹 1위에 복귀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4년 마스터스를 일주일 앞두고 다시 허리 수술을 받으면서 슬럼프가 시작됐다. 이듬해 애리조나에서 열린 웨이스트 매니지먼트 피닉스 오픈에서는 13오버파를 기록하며 생애 최악의 경기를 치렀다. 성적은 132명 가운데 꼴찌였다. 같은 해 4개 메이저 대회 가운데 3개 대회에서 컷오프를 통과하지 못했는가 하면, 다시 한 차례 허리 수술을 받으면서 랭킹은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한동안 재활에만 힘썼던 우즈는 당시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제대로 걷지를 못하기 때문에 하루종일 집에만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변에서 10분 동안 걷는 게 전부다. 걷고 나면 집에 돌아와서 소파나 침대에 다시 눕는다”고 말했다.
결국 2016년에는 세계 랭킹 500위권 밖까지 밀려났다. 당시 마스터스 챔피언십 만찬장에서 우즈를 만난 닉 팔도는 우즈가 상당히 괴로워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팔도는 우즈가 “나는 끝났어. 내 허리도 끝장났지”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2017년 음주운전 혐의로 체포된 타이거 우즈의 초췌한 머그샷.
2017년까지 허리 부상은 우즈를 놓아주지 않았다. 네 번째 허리 수술을 받았던 우즈는 그해 음주운전 혐의로 체포되면서 다시 한 번 세간의 비난을 받았다. 자신의 벤츠 승용차 안에서 잠든 채 발견됐던 우즈는 7시간 반 동안 교도소에 수감됐으며, 당시 찍힌 초췌한 머그샷은 한동안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당시 우즈는 자신의 음주운전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다. 술 때문이 아니라 약물에 취해 정신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우즈는 “처방약에 의한 ‘예상치 못한 반응’ 때문이지 술에 취해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실제 혈중 알코올 농도 측정 결과 우즈는 술을 마시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진통제 성분의 다섯 가지 약물이 검출됐는데 이 가운데 두 가지는 PGA 투어의 금지 약물이었다. 결국 우즈는 난폭운전 혐의를 인정하고 1년간의 보호관찰 및 50시간의 사회봉사 활동 명령을 받았다. 당시 세계 랭킹은 이미 1199위로 곤두박질 친 상태였다.
하지만 곧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2018년에 접어들면서 우즈의 허리 통증이 마법처럼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스윙 연습을 시작했던 우즈는 서서히 재기의 불꽃을 지피기 시작했다. 발스파 챔피언십 공동 2위, 브리티시 오픈 공동 6위에 이어 마침내 PGA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하면서 건재함을 알렸다. 그리고 이어서 투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PGA 통산 80승 고지에 올랐고, 마침내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면서 완벽한 부활을 알렸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의리 지킨 나이키 ‘2초 만에 260억 벌었다’ 타이거 우즈가 4월 15일 마스터스에서 우승하고 포효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우즈가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면서 나이키와 우즈의 특별한 관계가 다시 조명받고 있다. 해외 언론들은 지난 10년간 우즈의 곁을 지켜온 나이키의 의리에 대해 보도하면서 이번 우승으로 가장 수혜를 입은 브랜드는 다름아닌 나이키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우즈의 마지막 퍼트로 나이키가 2초 만에 260억 원을 벌어들였다고도 말했다. 실제 대회 당일 우즈는 1997년 메이저 대회 첫우승이었던 마스터스 우승 때 입었던 것과 같은 붉은 색의 나이키 셔츠를 입고 있었으며, 이밖에도 모자, 바지, 신발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나이키 로고로 장식하고 있었다. 이에 브랜드 컨설팅 회사인 ‘에이팩스 마케팅 그룹’은 우승 순간 전세계에 나이키 로고가 노출됐고, 그 광고 효과는 26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나이키는 우승 직후 스포츠 영웅인 우즈와 그의 인내심에 경의를 표하는 감동적인 광고를 내보냈으며, 나이키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우즈 관련 상품들이 전부 완판됐다. 지난 10년 동안 성추문과 부상으로 모두가 그를 손가락질하고 떠났을 때 나이키는 묵묵히 우즈의 곁을 지켰었다. 섹스 스캔들이 터졌을 때도, 난폭운전으로 체포됐을 때도 스폰서 계약을 유지했으며, 성적이 부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1996년 우즈가 프로 선수로 데뷔할 당시 파격적인 대우(4000만 달러(약 470억 원)에 5년 계약)로 계약을 맺었던 나이키는 그후 계속해서 계약을 갱신해나갔다. 그리고 가장 최근인 지난 2013년에는 2억 달러(약 2300억 원) 규모의 계약을 다시 체결한 바 있다. 우즈의 부활로 앞으로 나이키가 어떤 마케팅을 펼칠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