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은 고교시절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은 바 있다. 연합뉴스
[일요신문] 인간의 팔꿈치 인대가 버틸 수 있는 장력은 보통 260N(1N은 약 0.1㎏) 정도로 알려져 있다. 투수가 시속 150㎞짜리 공을 던지게 되면 이보다 높은 290N으로 가중된 힘이 실린다. 계속해서 강속구를 던질 경우 인대가 너덜너덜해지고 탄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인대는 팔꿈치를 구부리거나 펼 때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장치이자 투수가 공을 던질 때 반드시 사용되는 구조물이다.
팔꿈치 인대가 손상되면, 공을 던질 때마다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일명 ‘데드암’ 증상이 나타난다. 과거 수많은 투수들이 이 데드암 증상으로 은퇴를 해야 했다. 전설적인 투수 샌디 쿠팩스도 이 증상 때문에 유니폼을 벗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하지만 1974년 등장한 획기적인 수술이 수많은 투수들의 팔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팔꿈치 인대접합수술, 일명 ‘토미존 서저리’다.
#왜 ‘토미존 서저리’가 됐나
LA 다저스 왼손투수 토미 존은 1974년 9월 왼쪽 팔꿈치 안쪽 측부인대가 파열됐다는 진단을 받고 수술대에 올랐다. 손상된 인대를 튼튼하게 복구시키지 못하면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11년째 다저스 주치의를 맡고 있던 프랭크 조브 박사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획기적인 방법을 실험해보기로 했다. 공을 던지지 않는 오른쪽 팔꿈치에서 힘줄을 떼어내 왼쪽 팔꿈치에 붙이는 기술이다. 손상된 인대에 건강한 인대를 이어 붙여 새로운 팔로 탄생시키겠다는 원리였다.
처음 수술을 시도할 때는 성공률이 5%밖에 안 될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만큼 큰 모험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 연거푸 강속구를 던지다 상할 대로 상했던 존의 인대는 다시 처음 못지않게 튼튼해졌다. 존은 1년간의 재활 후 1976년부터 마운드에 복귀해 13년간 선수 생활을 더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올린 통산 288승 가운데 164승이 수술 이후 따낸 승리다.
그때부터 이 수술은 ‘토미 존 서저리’로 불리게 됐다. 이후 수많은 투수가 이 수술의 수혜자가 됐다. 2013년에는 메이저리그 전체 투수의 30%에 달하는 124명이 토미존 서저리를 받았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투수 가운데서도 LA 다저스 류현진과 콜로라도 오승환이 각각 고교 시절과 대학 시절 이 수술을 받고 프로에 와 기량을 꽃피웠다. SK 에이스 김광현도 2016시즌이 끝난 뒤 수술대에 올라 새 팔꿈치를 얻었다.
사실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은 채 1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간단한 수술에 속한다. 팔꿈치 위쪽과 아래쪽 뼈에 각각 두 개씩 구멍을 뚫은 뒤 미리 채취해둔 다른 부위의 힘줄을 8자 모양으로 끼우면 끝이다. 이식된 힘줄은 시간이 지나면서 인대처럼 변해 다시 팔꿈치를 지지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처음 수술을 받았던 존은 반대쪽 팔꿈치 힘줄을 떼어냈지만, 요즘 선수들은 반대쪽 손목을 구부리는 근육을 주로 이용한다. 이 근육이 충분하지 않은 선수는 허벅지 안쪽이나 발바닥 힘줄을 이용하기도 한다.
어쨌든 조브 박사가 고안한 이 수술은 팔꿈치 통증으로 고생하던 수많은 투수들의 수명을 연장시켰다. 명투수 출신인 해설가 오렐허샤이저가 “조브 박사는 야구 역사상 그 누구보다 많은 승리와 세이브를 거뒀다”고 표현했을 정도다. 조브 박사는 팔꿈치뿐만 아니라 어깨 수술의 권위자이기도 했다. 허샤이저가 바로 1990년 조브 박사에게 어깨 수술을 받은 뒤 선수 생활을 10년 더 연장한 인물이다. 2015년 3월 조브 박사가 향년 89세로 사망하자 50년간 함께 했던 다저스 선수단 전원은 시범경기 전 추모의 묵념을 했다.
#재활에 필요한 1년이 진짜 전쟁
앞서 언급했듯 팔꿈치 인대접합수술 과정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투수들에게 수술 그 자체보다 더 괴로운 것은 그 후의 재활이다. 최소한 1년은 지나야 마운드에 복귀할 수 있는 수술이라 재활 과정이 길고 지루하고 힘들다.
토미존 서저리를 받은 뒤 첫 3주는 주변 조직을 보호하고 근육 위축을 지연시키는 기본적인 재활에 돌입한다. 열흘간은 팔에 부목을 댄 채 최대한 움직이지 않아야 하고, 부목을 뺀 뒤에도 보조기를 착용해야 한다. 4주차에서 8주차 정도까지는 근력 증가를 위해 팔꿈치를 30도 가량 구부리고 100도 가량 펴는 운동을 반복한다. 8주 후부터 본격적인 근력보강 프로그램을 소화하고, 14주차 정도부터 5m, 10m씩 서서히 투구 거리를 늘려 나가는 ITP(Interval Throwing Program•단계별 투구 프로그램)를 시작할 수 있다. 스케줄 틈틈이 가벼운 물체를 들고 하체 밸런스를 강화하거나 팔꿈치 근력을 강화하는 과학적인 재활 프로그램을 꾸준히 더한다. 대개 약 7개월 정도 지나면 시뮬레이션 피칭까지 소화할 수 있다.
회복과 재활 기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팔꿈치의 상태와 수술 경과, 재활 과정, 개인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수술 결과도 판이하게 달라진다. 한 트레이닝 코치는 “수술 전처럼 100%에 가까운 컨디션을 되찾으려면 대개 1년 6개월 정도는 재활해야 한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라며 “최근에는 재활 프로그램이 갈수록 좋아져서 1년까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선수들도 있지만, 그래도 장기적으로 더 완벽한 결과를 얻으려면 복귀를 너무 서두르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SK는 에이스 김광현이 1년 재활 후 복귀한 지난 시즌에도 매 경기 투구수와 전체 투구 이닝에 제한을 두고 등판 간격을 조절했다. 완벽하게 회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풀타임 전력 피칭을 하게 되면 장기적으로 무리가 따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김광현은 복귀 두 번째 해인 올 시즌부터 이닝 제한과 등판 조절 없는 정상 로테이션을 소화하고 있다.
수술을 받은 또 한 명의 강속구 투수 키움 히어로즈 조상우. 연합뉴스
팔꿈치 인대 접합수술을 받으면, 새 인대의 장력이 357N까지 늘어난다고 한다. 인대에 싱싱한 콜라겐이 생기면서 팔 근육에 더 탄력 있게 힘을 실어준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투수들 사이에선 ‘구속이 빨라지는 수술’로도 유명세를 탔다.
실제로 많은 투수들은 토미 존 서저리를 받은 뒤 3년 정도 지나면 대체로 직구 구속이 시속 5㎞에서 10㎞까지 빨라지는 효과를 봤다. KIA에서 은퇴한 임창용이 대표적인 예다. 임창용은 원래 시속 140㎞ 중반 정도의 직구를 던지던 투수였지만, 2005년 10월 인대접합수술을 받고 재활을 마친 뒤 구속이 더 빨라졌다. 사이드암인 그가 일본 야쿠르트 시절 연일 시속 150㎞를 훌쩍 넘는 강속구를 뿌렸고, 한때는 시속 160㎞에 육박하는 구속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렇다고 구속 증가의 희망을 앞세워 쉽게 수술대에 올라서는 안 된다. 전문가들은 “수술은 무조건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동안 성공사례가 많이 조명됐을 뿐, “수술은 투수의 인생을 걸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모든 투수가 토미존서저리 이후 구속이 빨라지는 것도 아니다.
두산 배영수는 삼성 시절이던 2007년 1월 토미존서저리를 받은 뒤 한동안 구속이 올라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몇 년 뒤 시속 140㎞대 중반까지 구속을 회복하긴 했지만, 이전처럼 시속 150㎞를 넘나드는 강속구는 더 이상 던지지 못했다. KIA에서 은퇴한 서재응도 뉴욕 메츠 입단 이후인 1999년 5월 수술을 받은 뒤 오히려 구속이 시속 10㎞ 가까이 떨어졌다. 명품 슬라이더로 이름을 날렸던 현대 조용준은 2005년 수술을 받은 뒤 단 한 차례도 1군 마운드에 오르지 못한 채 은퇴하기도 했다.
따라서 수술 그 자체가 아닌 이후의 재활 프로그램이 구속 증가 여부를 결정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인대를 갈아 끼워서 공이 빨라지는 게 아니라, 재활 기간 동안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이 근력 운동을 하고 근육량을 늘린 덕분에 구속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임창용 역시 한창 강속구로 화제를 모으던 시절 “토미존서저리 덕분에 구속이 늘어난 것은 아닐 것”이라며 “팔꿈치만 집중적으로 재활한 게 아니라 어깨까지 전체적으로 근육 강화를 할 수 있는 재활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전체적으로 몸이 좋아진 것이 더 큰 이유”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한 트레이닝 코치도 “인대접합수술 후 구속이 늘어나는 것은 투수들이 (이전에 안고 있던) 팔꿈치 통증에서 벗어나 최상의 투구 매커니즘으로 공을 던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인고의 시간이 열매의 크기를 결정한다. 한 전직 프로야구 감독은 “토미존 수술 후 80% 정도의 상태까지는 누구나 회복할 수 있다. 나머지 20%를 끌어 올리느냐 못 끌어 올리느냐에 따라 수술의 성패가 결정된다”고 했다. 완벽한 팔꿈치를 되돌려 받기란 이렇게나 어렵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외계인’ 오타니도 피해가지 못한 팔꿈치 수술 오타니 쇼헤이(25·LA 에인절스)는 만화에서나 가능해 보였던 ‘투타 겸업’을 실제로 해내고 있는 ‘외계인’이다. 그것도 세계 최고의 야구 선수들이 모여 있는 메이저리그에서 불가능할 것 같던 가설을 현실로 보여줬다. 최고 시속 165km짜리 강속구와 142km짜리 스플리터를 던지면서 시속 181km의 속도로 140m를 날아가는 초대형 홈런까지 때려내는 선수. 오타니의 투타 겸업 시도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던 메이저리그는 그가 빅리그에 데뷔한 지난 시즌 연일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투수로는 재활이 필요한 상황서 타자로만 경기에 나서고 있는 오타니 쇼헤이. 수술 부위에 감긴 두터운 보호대가 눈길을 끈다. 연합뉴스 그런 오타니의 엄청난 도전은 올 시즌 잠시 멈췄다. 바로 토미존서저리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투수로 10경기에 나서 4승 2패 평균자책점 3.31을 올렸고, 타자로는 104경기에서 타율 0.285(326타수 93안타)에 22홈런 61타점 59득점 10도루의 성적을 냈다. 다만 6월 초부터 팔꿈치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고, 병원 검진 결과 “인대가 손상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후 오타니는 투수가 아닌 타자로만 경기에 출전하면서 팔꿈치 상태가 호전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런 가운데서도 9월 한 달 간 타율 0.310에 7홈런 18타점으로 맹활약해 ‘9월의 신인’으로 뽑히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수술을 피할 수 없다”는 소견을 받았고, 정규시즌을 마친 10월 수술대에 올라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았다.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은 투수는 일반적으로 1년 정도 재활 기간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오타니는 2020시즌이 돼야 투수로 마운드에 복귀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에인절스 구단과 오타니 모두 “2019시즌에도 지명타자로는 충분히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동시에 올 시즌 오타니의 타격 성적에 전 세계 야구계의 시선이 쏠리는 상황이 됐다. 오타니는 일본에서도 꾸준히 투타를 겸업하면서 투수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시즌을 치렀다. 오로지 ‘타자’에만 전념할 때 어느 정도 실력이 나올지 보여준 적이 없다. 이 때문이 일본의 한 스포츠전문매체는 올 시즌 개막 전 미국 현지에 있는 에인절스 담당 기자들에게 2019시즌 오타니의 예상 성적을 묻기도 했다. 뉴욕 포스트 기자는 “오타니가 지난해 4월 28일 뉴욕 양키스와의 경기에서 루이스세베리노의 시속 156㎞짜리 빠른 공으로 우월 홈런을 친 장면을 보고 오타니를 신뢰하게 됐다”며 “경험을 쌓은 오타니가 내년에 홈런 35개는 칠 것 같다”고 높이 평가했다. 오렌지카운티 레지스터 소속 기자도 130경기 출전에 타율 0.275, 31홈런, 80타점을 전망하면서 “5월부터는 타자로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이후 매일 오타니를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다만 뉴스데이 기자는 “투타 겸업을 하는 선수니까 길게 보며 신중하게 재활해야 한다”며 “81경기 출전도 너무 많다. 홈런 15개 정도는 칠 것 같다”고 했다. 오타니는 일단 2019시즌 개막전에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오타니의 재활 과정을 전하고 복귀 시점을 예측하는 기사가 연일 미국과 일본 언론을 장식했다. 그리고 마침내 ‘디데이’가 왔다. 오타니는 5월 8일(한국시간) 디트로이트 원정을 떠난 에인절스 선수단에 합류해 곧바로 3번 지명타자로 시즌 첫 출전을 했다. 재활을 마치고 타격 훈련을 재개한 지 18일 만. 지난해 9월 30일 정규리그 최종전 이후 219일 만의 빅 리그 출전이었다. 부상을 당했던 여느 타자들과 달리 마이너리그 재활 경기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투입됐다. 복귀전 성적은 썩 좋지 않았다. 4타수 무안타 1볼넷 2삼진. 유격수 땅볼로 3루 주자를 불러 들이면서 타점 하나를 올리는 데 그쳤다. 다음 날인 5월 9일 경기에도 다시 3번 지명타자로 나섰지만 3타수 무안타 2삼진으로 돌아섰다. 6회초에는 상대 투수 매슈보이드가 던진 공에 수술 부위인 오른쪽 팔꿈치를 맞는 장면도 나왔다. 다행히 오타니가 별다른 고통을 호소하지 않고 1루로 걸어 나갔지만, 에인절스 구단으로선 아찔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입단 2년 만에 구단의 ‘보물’이 된 오타니는 서서히 ‘괴물 모드’로 진입하기 위해 예열을 하고 있다. 에인절스 구단과 감독도 여전히 오타니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 오타니는 올 시즌 내내 주자로 나가서도 팔꿈치 보호대를 착용할 예정이다. 또 내년 시즌 투수로도 복귀하기 위해 주 3회 피칭 훈련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