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은 최근 롯데카드를 한앤컴퍼니에, 롯데손보를 JKL파트너스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매가가격은 각각 1조 5000억 원과 4000억 원선으로 알려졌다. 세금을 제외하고도 1조 5000억 원가량의 현금을 손에 쥔다. 하지만 돈을 쓸 곳이 많다.
롯데그룹이 롯데카드와 롯데손해보험을 매각해 거액을 손에 쥐게 됐지만 지배구조개편 작업 등 돈 들어갈 곳이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사진은 서울 소공동 롯데카드 본사 전경. 일요신문DB
지난해 롯데지주는 롯데케미칼을 지주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2조 원이 넘는 돈을 단기로 차입했다. 1년 미만의 만기이니만큼 연장 또는 상환을 해야 한다. 연간 금융비용이 1000억 원에 육박한다. 롯데지주가 카드 지분을 매각한 돈을 모두 차입금 상환에 써도 이 빚을 다 갚지는 못한다.
롯데지주 밖 계열사들의 지주 편입도 시급하다. 현재 롯데그룹 유통 관련 계열사들은 모두 롯데지주의 지배를 받지만 비유통 쪽은 여전히 일본 롯데의 지배력이 더 강하다. 일본 롯데의 한국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은 호텔롯데가 핵심이다. 일본 롯데 지분율이 100%에 가깝고 추정 기업가치만 10조 원에 달한다. 당장 어찌하기엔 너무 크다. 롯데지주 지분도 11.4%나 보유하고 있다. 기업공개(IPO)로 일본 측 지분율을 낮춘 후 인적분할로 투자부문을 떼어내 롯데지주와 합병시키는 방법이 시장에서 예상했던 시나리오다. 일본 롯데홀딩스에 상장차익을 안겨주는 방법 외에는 일본인 주주들의 지분율을 떨어뜨릴 방법이 마땅치 않다.
하지만 최순실 사태 등을 겪으며 상장이 연기됐다. 게다가 ‘사드 사태’ 여파로 중국 관광객이 줄면서 호텔롯데 현금창출원인 면세점 사업이 치명상을 입었다. 2017년과 2018년 연속 적자다. 3년 평균 흑자 등 확실한 실적개선을 이뤄내야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고, 일본인 주주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 적자 탈출이 어려운 지금의 경영 상태면 상장은 사실상 어렵다.
호텔롯데와 롯데물산 실적이 부진하면서 신동빈 회장의 ‘뉴롯데’ 구상이 제대로 실현될지 관심을 모은다. 사진=롯데지주 제공.
롯데물산은 그룹 내 시가총액 1위 롯데케미칼 지분 20%를 가진 2대주주다. 롯데월드와 롯데월드타워도 롯데물산의 영역이다. 이외 다수 계열사 지분을 보유 중이다. 2018년 말 순자산은 4조 4000억 원에 달하지만 최근 수년째 적자로 순자산이 계속 감소하고 있다. 롯데월드타워 내 최고급 레지던스인 시그니엘의 분양 저조가 원인이다. 호텔롯데와 마찬가지로 현 상태로는 상장이 어렵다.
롯데지주가 호텔롯데의 롯데물산 지분을 매입하는 방법이 가능하다. 호텔롯데의 현금흐름을 개선시키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적자가 이어지는 롯데물산을 단기차입금을 갚지 않은 채 인수한다면 롯데지주의 재무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한동안 실적이 좋던 롯데케미칼도 최근 업황부진으로 이익이 반 토막이 났다. 롯데케미칼의 배당 등으로 롯데지주가 현금을 만들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롯데그룹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뛰어들 가능성도 제기한다. 최소 1조 5000억 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롯데카드 인수대금(세후)을 모두 투입한다고 해도 부족할 수 있다. 그렇다고 지배구조상 외국인투자기업인 호텔롯데나 롯데물산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지분 참여하기도 쉽지 않다. 현행 항공사업법은 외국인에 대한 인가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 같은 사정 때문에 예상을 웃도는 가격에 롯데카드와 롯데손보 지분을 매각했음에도 롯데그룹 계열사 주가는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물론 아직 금융계열사 가운데 롯데캐피탈이 남았다.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이 50.84%의 지분을 갖고 있지만, 롯데지주와 롯데건설도 각각 25.64%, 11.81%를 보유 중이다. 순자산이 1조 원이 넘고 연간 1000억 원 이상 순익을 내는 만큼 경영권 매각시 그 가치가 롯데카드에 버금갈 것으로 보인다. 롯데지주가 또 상당한 현찰을 손에 쥘 수 있다는 뜻이다. 이미 관심을 표방한 KB금융과 신한지주에 이어 롯데카드에서 고배를 마신 하나금융과 우리금융이 인수전에 뛰어들지 관전 포인트다. 하지만 흥행에 성공해도 호텔롯데와 롯데물산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