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일 검찰총장. 박정훈 기자
폭풍전야다. 청와대와 검찰 관계자들은 신중한 모습이지만 ‘전쟁이 시작됐다’는 것엔 고개를 끄덕인다. 정부 출범 이후 ‘적폐’로 내몰리며 개혁대상 영순위로 꼽혔던 검찰과 문재인 대통령 핵심 공약인 공수처 설치·수사권 조정을 추진하려는 청와대의 싸움이다. 패스트트랙 정국의 또 다른 후폭풍인 셈이다. 문무일 검찰총장 발언은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일선 지검 한 부장검사는 이렇게 말했다.
“검찰이 변해야 한다는 지적엔 공감한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검찰은 ‘패싱’됐다. 과거사건 재수사로 검사들 망신을 주고, 인사로 조직을 흔들고…. 내부 불만은 극에 달했다. 검사들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문 총장은 조직 수장으로서 이를 대변한 것이다. 윗선은 자제하는 분위기지만 밑으로 갈수록 실력 행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여권에서 이를 무시한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지 장담할 수 없다.”
항명이나 다름없는 검찰의 반격에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여권에선 불쾌감이 역력하다. 검찰과의 기 싸움에서 밀려선 안 된다는 강경 반응이 주를 이룬다. 한 친문 의원은 “검찰의 못된 버릇이 또 도졌다. 수사를 가지고 정권을 협박하겠다는 것 아니냐”면서 “문 총장 발언은 검찰 이외에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국민들 대부분 검찰 개혁을 원하고 있다. 수사권이나 공수처는 검찰이 반대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정치권에선 참여정부 3년차를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떨어지기 시작한 대통령 지지율, 정권 실세들을 겨누기 시작한 검찰, 입법을 둘러싼 청와대와 검찰의 힘겨루기 등이 ‘오버랩’된다. 참여정부 3년차이던 2005년 부동산 폭등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율은 급락했다. 동시에 행담도 개발 의혹, 오일 게이트, 김재록 게이트 등이 불거졌다. 검찰이 형사소송법 개정 추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던 때였다.
지금 상황도 비슷하다. 문 대통령 지지율은 완만한 하향 추세로 접어들었다. 대북 관계에도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여권으로선 마땅한 반전 카드가 없다는 얘기다. 검찰의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는 청와대를 향해 있다. 여권 인사가 연루됐다는 사실이 드러날 경우 문재인 정부 도덕성은 치명타를 입게 된다. 공교롭게도 문재인 정부와 검찰은 검경 수사권, 공수처 등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는 중이다. 한 친문 전직 의원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권력기관을 손에 쥐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특권을 포기했다. 스스로 자정할 수 있는 능력을 믿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상론에 불과했다. 통제를 벗어난 권력기관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개혁은 수포로 돌아갔고, 이는 노 전 대통령에게 부담이 됐다. 가장 후회스러웠던 것은 검찰을 내버려 둔 것이다. 검찰을 바꿨더라면, 노 전 대통령이 과연 스스로 목숨을 끊었겠는가. 현 정권 사람들은 이러한 기억을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
여권 안팎에서 검찰에 대한 장악력을 되짚어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연이은 인사 참사에도 불구하고 조국 민정수석을 바꿀 수 없는 속사정과도 맞물린다. 자칫 검찰개혁 후퇴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려도 새어 나온다. 검찰과의 일전에서 내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은 까닭에서다. 사정당국 관계자들은 검찰이 본격적인 실세 수사에 나서면 그 결과를 떠나 문 대통령 권력 누수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 검찰에선 현 정권 인사들과 관련된 범죄 첩보 여러 건을 확보해 보관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에서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내용이다. 사정기관 고위 관계자는 “정권 실세들과 관련된 첩보는 조심스럽게 다뤄진다. 자칫 그런 보고서를 쓴 쪽도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청와대와 검찰 간 핫라인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전달되곤 했다. 그런데 이번 정부에선 그런 사례가 거의 없었다. 청와대로 아예 보고가 올라가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일선 지검들의 움직임이 관심을 모은다. 수도권 소재 지검은 한 친문 현직 의원 비리 수사에 나섰다. 그가 한 단체로부터 부적절한 돈을 받았다는 혐의다. 이 소식에 친문 진영은 충격에 빠졌다. 이 친문 의원의 정치적 무게감과는 별개로 검찰의 본격적인 ‘역습’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판단에서다. 또 다른 친문 의원은 “그 의원을 수사하는 지방청은 문무일 총장 측근이 지휘하는 곳이다. 현 정권 성향 검사들로 채워진 서울중앙지검이 아니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 총장 발언이 마치 ‘스타트’를 알리는 총성 역할을 한 것 같다. 검찰 내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덧붙였다.
검찰 내부에선 임종석 전 비서실장 얘기도 파다하다. 검찰이 임 전 실장을 노리고 있다는 게 골자다. 아직 구체적인 의혹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른바 ‘임종석 보고서’가 만들어졌다는 말까지 들린다. 여기엔 임 전 실장 본인은 물론 사생활과 주변 지인들과 관련된 파일들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임 전 실장은 현 정권 출범 후 실세 중 실세로 불렸던 인물이다. 또한 내년 총선 출마는 물론 차기 대선 후보로까지 거론된다. 검찰이 임 전 실장을 ‘타깃’으로 설정했다면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추론케 하는 대목이다.
친문 인사들은 이러한 검찰 행태를 꼬집었다. 앞서의 친문 전직 의원은 “임 전 실장이 죄가 있으면 수사를 해서 처벌을 하면 된다. 그런데 마치 뭐가 있는 것처럼 뒤에서 이름을 흘리고 있다. 왜 검찰 개혁이 필요한지를 알게 해준다”고 말했다. 친문 의원 역시 “검찰 고위 간부들이 임 전 실장 이름을 거론했다고 들었다. 지금 정권을 협박하겠다는 것이냐”라고 물으면서 “청와대가 그런 내용을 몰랐다는 것은 그만큼 이번 정부가 권력 기관을 투명하게 운영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