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무형문화재 김영기(왼쪽), 김호성 씨의 가곡 공연. 가곡은 관현악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우리나라 전통 성악이다.연합뉴스
원래 가곡은 조선시대 상류계층 사람들이 인격수양, 풍류 등을 위해 즐기던 노래다. 우리 조상이 가곡을 언제부터 즐겨 불렀는지는 불분명하다. 고려 말 나라의 멸망을 한탄하던 귀족들이 시조시에 곡을 붙여 노래를 불렀다고 전해지는데, 적어도 이때부터 가곡이 상류계층이 즐기는 성악곡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후기의 학자 이곡의 시문집인 ‘가정집’ 잡록에는 가곡의 명인 ‘한아’가 거론되기도 하는데, 한번 노래를 부르면 그녀가 떠난 뒤에도 3일 동안이나 여음(餘音)이 건물 안에 감돌았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 태종 12년(1412) 6월 3일자에는 영의정 하윤이 가곡을 지어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적어도 조선 초기에는 지식인층 사이에서 가곡이 성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선조 때 기악 연주가이자 음악문필가인 안상이 편찬한 ‘금합자보’에는 가곡의 악보와 노랫말, 선율, 악기 정보 등이 실려 있기도 하다.
가곡에 관한 문헌은 악보와 사설집(歌集, 가집)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악보의 경우 대체로 거문고 악보가 많고 비파보, 가야금보 등이 전해진다. 또한 사설(노랫말)을 모아 놓은 가집 중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1728년에 시조시인 김천택이 엮은 ‘청구영언’을 꼽을 수 있다.
시조가 초장, 중장, 종장의 3장으로 구분되는 것과 달리, 가곡의 형식은 모두 5장으로 구성된다. 시조시의 초장 앞부분이 1장, 초장 뒷부분이 2장에 해당되고, 중장은 3장, 종장 앞부분이 4장, 뒷부분이 5장에 해당된다. 가곡 공연에선 3장과 4장 사이에 관현악 연주를 하는데, 이를 ‘중여음’이라 하고, 이때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잠시 휴식을 취한다. 또한 4~5장의 노래가 끝난 뒤에는 다시 악기 연주로 마무리를 하며, 이를 ‘대여음’이라고 한다.
가곡은 곡의 빠르기에 따라 만대엽, 중대엽, 삭대엽으로 구분된다. 가장 느린 곡인 만대엽은 영조 시대(1724-1776) 이전에 없어졌고, 중간 빠르기의 중대엽도 조선말에는 부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의 가곡은 조선 후기부터 나타난 빠른 곡인 삭대엽에서 파생한 것이다.
가곡은 장엄하면서도 평화로운 음계인 우조(羽調)와 구슬픈 음계인 계면조(界面調)를 사용한다. 그런 까닭에 우조의 가곡은 웅대하게 다가오고, 계면조의 가곡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조선의 실학자 이익은 자신의 저서 ‘성호사설’ 속악조에서 “계면이라는 것은 듣는 자가 눈물을 흘려 그 눈물이 얼굴에 금을 긋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가곡은 남성의 노래인 남창 26곡과 여성의 노래인 여창 15곡이 현재 전해져 내려온다. 남창이 몸속에서 울려 나오는 힘찬 소리인 ‘겉소리’로 부른다면, 여창은 겉소리와 고음의 가냘픈 소리인 ‘속소리’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남창가곡.문화재청
양반들이 즐기는 성악곡에서 출발해 점차 대중 속으로 파고들던 가곡은 일제강점기 때 큰 위기를 겪게 된다. 일제의 한민족문화 말살 정책으로 인해 민중과 소통할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왕직 아악부(조선 왕실의 왕립음악기관) 출신인 이주환, 홍원기 명인 등의 예능보유자들을 통해 겨우 명맥을 이어오던 가곡은 광복 이후에도 대중의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서양의 가곡, 대중음악의 물결에 밀려 ‘박물관의 골동품 같은 음악’으로 치부되었던 탓이다. 그나마 1969년 가곡이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되면서 보존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현재는 남창의 김경배(월하문화재단), 여창의 김영기(김영기가곡보존회), 조순자(가곡전수관) 명인이 예능보유자로서 가곡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현대 성악이나 대중음악과 가곡의 커다란 차이점 중 하나는 바로 박자다. 가곡은 16박 또는 10박 장단의 긴 호흡으로 연주된다. 현대인에게 가곡의 한 소절, 한 소절이 무척 길고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단 귀에 익으면, 가곡은 한국인의 마음과 공명하는 듯한 감흥을 전해주기도 한다. 우리 문화와 정서가 깊이 녹아 있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개봉한 영화 ‘해어화’는 ‘가곡의 현대화’라는 측면에서 크게 주목할 만하다. 여성 3인조 가객으로 구성된 정가앙상블인 ‘소울지기’가 전통 가곡 ‘사랑 거즛말이’를 모티브로 작곡한 노래가 OST로 쓰이고, 배우 한효주가 영화에서 직접 이 가곡을 불러 화제가 되었다. ‘사랑 거즛말이’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김상용이 지은 평시조에 곡을 붙인 우리 가곡이기도 하다. 아직 조선시대의 음악으로만 머물고 있는 가곡을 우리 시대에 소환하는 이러한 노력이 이어진다면, 말 그대로 가곡이 우리의 노래가 되는 시기도 앞당겨질 듯하다.
자료협조=유네스코한국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