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청와대, 국민 여론을 상대로 설득전을 펼쳐야 하는 검찰. 그런 검찰이 쉽지 않은 장애물을 만났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을 앞세운 정부의 ‘당근’과 ‘내부 발 악재’가 바로 변수다. 검찰의 반발에 부딪힌 경찰도, 내부 단속에 나섰지만 변수는 여전하다. 특히 승리, 클럽 버닝썬과 경찰 간 유착 의혹은 철저한 수사 흐름 속에서도 ‘믿을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박상기 법무부장관. 박은숙 기자
해외 출장 일정 도중 귀국하며,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국회 패스트트랙에 올라탄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던 문무일 검찰총장. “검찰의 의견도 듣겠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인 정부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을 통해 검찰 설득에 나섰다.
지난 13일 오후,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전국 검사장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수사권 조정에 대한 보완책 마련을 설명했다. 총장과 간부, 평검사를 잇는 검사장들 흔들기에 나선 것이다.
박 장관은 장문의 이메일에서 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보완책을 직접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확대하고 ▼경찰 수사 결과에 대한 검찰의 보완수사 권한을 강화하며 ▼경찰에 부여된 1차 수사 종결 사건에 대한 검찰 송치 검토 권한을 언급했다. 특히 검찰이 강하게 반발한 피의자신문조서 증거능력 부인에 관해서는 “여러 의견을 심층적으로 수렴하겠다”며 한 발 물러선 태도를 보였다.
7월 말까지 임기가 2달여 남은 문무일 총장을 놔두고, 승진 인사가 있을 검사장들에 대한 ‘편가르기 시도’라는 평이 나온다. 검찰 출신의 변호사는 “벌써부터 누가 검찰총장이 된다더라 같은 ‘카더라 통신’이 시작됐는데 저런 이메일을 받고 본인의 자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며 “결국 (자리에서) 물러날 문무일 총장이 아니라, 차기 검찰 수뇌부를 향한 설득전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실제 문무일 총장도 박상기 장관 이메일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14일 출근길 기자들과 만난 문무일 총장은 “유선상으로 보고받기로는 (검찰의 입장이) 받아들여진 정도까지 된 건 아닌 것 같다”며 “기자간담회 준비가 거의 다 끝나 있지만,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해서 기자단과 논의해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 장인 사건 수사하던 사위 검사장?
한때 선배였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별장 성접대 사건에 대해 특별수사단을 꾸려 강도 높게 수사 중인 검찰. 김학의 전 차관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봐주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밝혔지만 새로운 내부 발 변수에 당혹해 하고 있다. 바로 서울남부지검장의 ‘장인 채용 비리 연루’ 건이다.
KT의 채용비리를 수사 중인 곳은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김영일 부장검사). 그런데 수사 과정에서 권익환 남부지검장의 장인이 이석채 전 KT 회장에게 채용을 청탁한 사실이 드러났다. 권 검사장이 자발적으로 이 사실을 먼저 신고해, 대검찰청도 곧바로 조치를 취했지만 법조계에서는 “수사팀 보고서를 보고 장인 연루 사실을 알았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국회 패스트트랙에 올라탄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해 해외 출장 일정 도중 귀국한 문무일 검찰총장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박정훈 기자
서울남부지검이 구속 기소한 이석채 전 KT 회장 관련 채용 비리는 모두 11건. 이 중에는 지난 2012년 상반기 부정 취업자 3명의 선발 건도 있었는데 남부지검 형사6부는 이 3명 가운데 한 명이 손 아무개 변호사가 청탁해 이뤄진 취업인 것으로 파악했다.
이를 권 검사장이 보고 받은 것은 지난달 24일. 문제는 손 변호사가 권 검사장의 장인이었다는 점이다. 처사촌의 채용을 장인인 손 변호사가 KT그룹 임원에게 청탁한 사실이 압수수색 이메일 자료 등에 있었던 것. 장인이 연루된 사실을 뒤늦게 파악한 권 검사장은 대검찰청에 이를 즉시 자진 신고한 뒤, 연가를 내고 KT 수사에서 빠졌다. 권 검사장이 빠진 자리는 남부지검 1차장검사가 직무대리를 맡았다. 그리고 이틀 뒤인 지난달 26일 남부지검에서 조사받은 장인 손 변호사는 검찰 조사에서 “청탁을 한 적이 있다”는 취지로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권 검사장은 물론, 장인 손 변호사 역시 “수사 대상인 것을 몰랐다”고 하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소환 조율에 하루 이틀이 걸리는데, 이틀 전에 수사 대상에 장인이 포함됐다는 것을 안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심지어 장인이 청탁을 한 게 맞다고 인정했는데 참고인 신분으로 사건을 마무리한다는 것은 봐주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물론, 공수처 등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 ‘버닝썬 경찰 유착’ 수사 뒷말 무성
검찰만큼이나, 경찰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클럽 버닝썬, 가수 승리 등과 유착 의혹이 제기된 ‘윤 총경 사건’ 수사가 미흡하다는 비판이 나오기 때문. 경찰 내부에서는 “정말 어떻게든 혐의를 찾아내려 했다”는 말이 무성하지만, 의혹이 워낙 무성했던 탓에 국민 눈높이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모양새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5월 13일 서울 종로구 내자동 서울지방경찰청사에서 열린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직접 “경찰 유착 부분에 있어서 언론과 국민들이 수사가 미흡하다고 보는 시각을 청장으로서 무겁게 인식한다”고 말했다.
원경환 청장이 ‘유감’을 언급하게 한 윤 총경은 서울 강남의 유명 클럽 버닝썬 게이트로 불거진 경찰 유착 의혹에 핵심 인물로, 승리와 승리의 동업자 유인석 전 유리홀딩스 대표가 함께 차린 주점 몽키뮤지엄에 대해 불법 영업 의혹에 제기되자 관할 경찰서 경찰관을 통해 수사 진행 상황을 알아봐준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를 받고 있다. 논란을 우려, 윤 총경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실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청장. 연합뉴스
현재 경찰은 윤 총경이 유 전 대표 등과 4번 골프를 치고, 6번 식사를 한 사실도 파악해 대가성 여부도 들여다보고 있다. 식사비용 지불 여부에 따라 대가성이 인정되면 뇌물죄, 아닐 경우 청탁금지법 (김영란법) 위반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형사입건과 관계없이 윤 총경의 비위를 청문감사실에 통보하고 자체 징계 수준을 논의할 것”이라면서도 “수사가 일부 미흡해 추가 압수수색 등 수사를 더 진행 중이다. 이번 주 중 마무리할 것”이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경찰의 악재는 유착 혐의로 입건된 경찰이 더 있다는 것. 현재까지 유착 혐의로 입건된 경찰관은 모두 8명인데, 원 청장은 “일부 주요 사안의 유착 수사가 마무리되면 형사 입건과 감찰 대상자를 분리해 감찰대상자는 고강도 감찰을 통해 징계도 진행할 예정”이라며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한 번 더 낮은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경찰 내부에서 반발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확실하게 털자’는 취지로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는 평이 나올 정도. 경찰청 관계자는 “의혹이 없도록, 식사 대접 여부 등 카드 내역도 모두 살펴봤지만 대접을 받은 게 없고 수사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도 않았다는 게 여지껏 수사 결과 아니냐”며 “결국 우리가 우리 손으로 수사를 하다 보니 제대로 수사를 해도 ‘경찰이 그렇지 뭐’라는 시선으로 비판을 받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