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연 9단의 페이스북 팔로어는 8000명이다. ‘보급기사’를 자처하는 그는 어떤 수단을 통해서든 대중에게 나아가는 걸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7년을 활동한 그녀의 페이스북엔 팔로어가 8000명에 달한다. “지금은 어떤 수단을 통해서든, 대중에게 나아가는 걸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어요. 20대에는 스스로를 얽매며 살았습니다. 이젠 저도 행복하고, 주변 사람들도 행복한 길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그러다보니 얼굴도 굉장히 밝아졌어요. 해외보급을 시작하면서 배운 면도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면서 내가 미력하다고 생각했던 바둑실력에 감동하고 고마워하는 이들도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죠. 후배에게 밀리는 승부사로서 자괴감이나 우울함은 이들과 함께하면서 모두 극복했습니다. 사실 20대엔 보급기사가 되면 승부사는 끝이라는 생각에 이 길로 들어오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어요. 지금은 보급기사라고 자칭하는데 대국 성적은 더 잘 나옵니다”라고 말했다.
이제 해외 보급 활동은 그만뒀는지 묻자 고개를 저었다. “바둑은 전 세계적 문화가 될 수 있는 종목입니다. 한국 바둑계도 부족한 면이 많지만, 해외에 나가보면 한국은 바둑을 즐기기에 비교할 곳 없이 좋은 환경입니다. 한국이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녔어요. 지금까지 바둑 보급을 위해 중동과 아프리카 빼고 전 세계 25개국을 방문했습니다. 주력으로 활동한 지역은 동남아시아입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와 정서가 잘 통하고, 가족적인 분위기가 있어 깊은 정을 느낄 수 있어요. 바둑 인구는 태국 200만 명, 싱가포르 5만 명, 호주 3만 명, 베트남 4000만 명 정도로 추산합니다. 싱가포르는 전체 인구 500만 명에 바둑 인구가 5만 명이니 비율로 따져보면 대단한 나라죠. 태국은 바둑에 애정이 넘치는 코삭 회장(CP그룹, 태국 최고의 기업으로 가장 큰 계열사가 세븐일레븐이다)이 어마어마한 투자를 한 결과입니다. 작년에도 일본을 포함해 16개국을 다녀왔어요. 네 군데는 한국기원에서 지원받았고, 나머지는 제 개인 경비와 인맥으로 다녀왔습니다. 올해는 제가 못 나가는 대신 각국 바둑협회에 있는 외국 친구들을 한국에 부르고 있어요. 여자리그에서 열심히 벌어서 이들을 대접해야죠”라면서 웃었다.
조혜연 9단은 ‘프로기사가 지도하는 바둑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솔직한 여자다. 다른 곳보다 더 보수적인 바둑계에선 약간 ‘나대는’ 듯한 그녀의 성향을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있었다. 특히 종교에 대한 신념과 정치 성향을 감추지 않아 예전부터 조혜연 관련 뉴스엔 악플이 많이 따라다녔다. 반면 그녀를 직접 대면한 이들은 솔직담백한 성정에 반해 진지한 팬이 되기도 한다. 조혜연은 자신의 기준을 넘어선 불의에 대단히 분노하며 직접 팔을 걷고 나서는 거센 기풍이다. 소속기사로 한국기원에 대한 걱정도 남달랐다. “한국기원 집행부에 적극적으로 반대한 적도 있어요. 지금은 한 발짝 물러서서 지켜보고 있어요. 올해 여자리그는 시작했지만, 무엇보다 KB바둑리그는 꼭 열려야 합니다. 한국기원에서 7월 초 개막을 위해 많이 노력한다고 들었어요. 잘 되리라 믿습니다. 장기적으론 한국기원의 체질 개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팬들과 소통이 부족했다는 처절한 반성이 먼저 있어야겠죠.”
바둑계에서 그녀는 ‘스포츠토토’ 반대론자로 유명하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여러 여건이 바뀐 터라 혹시 토토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는지 물었다. “여전히 부정적입니다. 물론 토토 때문에 생긴 부작용으로 바둑에 신뢰도가 떨어질지, 아니면 토토 덕분에 궁극적 목적인 바둑 홍보에 성공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어요. 만약 기사회에서 민주적 절차에 따라 투표를 하고 추진을 결정하면 저도 당연히 따르겠습니다. 제가 반대하는 소신은 기사마다 존재하는 다양한 목소리 중 하나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저와 함께 동업한 박창명 2단은 무조건 토토 도입을 주장하는 적극 찬성론자입니다. 조한승 9단처럼 ‘제한적 찬성’을 하는 기사들도 꽤 있습니다. 즉 스포츠토토 자체엔 거부감이 없기에 혹여 발생할 부작용에 대한 관리가 잘된다면 도입을 찬성한다는 의견이죠.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이렇게 여러 층위가 있지만, 전체 기사 의견은 6 대 4 내지 7 대 3 정도로 찬성 쪽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근본적으로 토토를 반대하는 이유는 따로 있어요. 바둑이라는 좋은 문화상품으로 사회적 권위와 가치를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은 바둑이 지닌 내재적 가치를 제대로 어필하지 못하면서 최후의 수단으로 토토라도 해보자는 느낌입니다. 왜 바둑을 보며 팬들이 환호할까요? 우리는 바둑을 통해 지적 힐링을 하고, 영감을 받습니다. 즉 인생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문화적 도구입니다. 현재 기전이 풍성하고, 바둑 보급이 원활하게 잘 되는 상황이라면 토토를 가미해 재미를 더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토토에 앞서 한국기원이 가진 최대 자산인 소속기사들을 마케팅에 활용할 방안 연구가 필요합니다. 또한 한국 사회와 문화를 위해 바둑이 앞으로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 근원적인 고민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박주성 객원기자
[승부처 돋보기] ‘절대 선수 생략’ 왜 그랬을까? 제6기 대주배 시니어최강전 4강(2019년 5월 13일) ●서봉수 9단 ○조혜연 9단 234수 백 1.5집 승 실전진행 참고도 [일요신문] 초반은 전형적인 서봉수 스타일로 판이 짜였다. 흑은 단단한 실리를 앞세워 중앙에서도 주도권을 잡아 중반까지 필승지세를 구축했다. 그런데 마무리가 느슨했다. 조혜연은 꾹꾹 참으며 후반을 노렸고, 결국 끝내기에서 대역전극을 연출했다. 실전에서 서봉수는 흑1, 백2 교환 후에 바로 A를 둬서 좌변에 백 한 점(세모 표시)을 따냈다. 조혜연은 “참고도처럼 좌하귀 흑3, 우변 흑5, 우상귀 흑11이 모두 아낄 이유가 없는 ‘절대 선수’였다. 이렇게 진행하고 마지막에 A를 뒀다면 반면 10집 이상 흑이 앞선 형세다. 실전 진행에선 세 곳을 거꾸로 백이 끝내기하면서 한 집 반을 남겼다”라고 말했다. 조혜연은 작년 대주배 결승에선 조치훈 9단에게 져 준우승에 머물렀다. 올해 결승 대국자는 최규병 9단이다. 결승전은 오는 6월 4일 K바둑 스튜디오에서 열릴 예정이다. 대주배 우승 상금은 1500만 원, 준우승 상금은 500만 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