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4일 개봉한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보려 영화관에 운집한 관람객들. 사진=연합뉴스
[일요신문] “영화를 보기 며칠 전부터 인터넷 뉴스를 보지 않는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접속하지 않는다. 영화관에 들어갈 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크게 튼다. 영화를 본 사람들의 스포일러를 듣지 않기 위해서다.” 한국에 불어닥친 영화 관람 ‘신(新)풍속도’다.
2019년 4월 말부터 ‘스포일러’는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떠올랐다. 장안의 화제가 된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개봉한 시점부터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개봉 11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 흥행 비결은 전작으로부터 이어지는 스토리의 연속성에 있었다. 그만큼 ‘어벤져스: 엔드게임’ 결말에 대한 영화팬들의 궁금증은 컸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 주요 내용을 유출하는 스포일러가 극성을 부렸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개봉 이후 영화팬들은 스포일러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해당 영화 관련 스포일러가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퍼져 나간 까닭이었다. 많은 영화팬은 ‘깜박이를 켜지 않고’ 등장하는 스포일러를 마주하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일요신문’ 취재에 응한 영화팬 김선희(28) 씨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보려고 포털사이트에서 뉴스를 보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영화 한 편을 보려고 뉴스를 읽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김 씨는 “영화가 개봉한 뒤부터 포털사이트 정치·사회·경제 뉴스 댓글을 통해 영화 스포일러가 빈번하게 올라온다. 언제 어디서 스포일러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라 뉴스를 보는 것도 겁이 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씨는 “뉴스에 달린 댓글을 잘못 봤다가 의도치 않은 스포일러를 당한 친구가 많다”고 말했다. 김 씨는 “실수로라도 스포일러를 읽게 되면 허망할 것 같다. 예전에 스포일러를 당한 뒤 영화를 관람한 적이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스포일러를 통해 유출된 내용이 머릿속을 맴돌았다”고 전했다.
최근 들어 스포일러는 다양한 형태로 ‘잠재적 영화 관람객’들을 괴롭히고 있다. 앞서 언급한 뉴스 댓글을 활용한 스포일러는 빙산의 일각이다. 누리꾼들이 즐겨 찾는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스포일러가 끊임없이 게시된다. 대부분 스포일러는 흥미 있는 제목으로 누리꾼의 클릭을 유도한 뒤 영화 내용을 유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일명 ‘낚시성 게시물’이다.
스포일러를 마주할 가능성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오프라인에서 우연하게 스포일러를 접해 골머리를 앓는 영화팬들도 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관람한 강진우 씨(33)는 영화 관람 전 스포일러를 피하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영화관에 입장하면서 강 씨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강 씨는 “영화관에 들어가는 도중에 영화를 보고 나오는 인파를 마주했다. 영화를 관람한 사람들이 영화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여기엔 영화에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스포일러를 피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는데, 마지막 순간에 스포일러를 피하지 못한 셈”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주변인 중엔 아예 이어폰을 귀에 꽂고, 영화관에 입장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흥행하는 영화의 주요 내용을 유출하는 스포일러는 꾸준히 존재해 왔다. 하지만 ‘어벤져스: 엔드게임’ 개봉 이후 스포일러와 관련한 대중의 불만은 역대급으로 고조됐다. 하지만 스포일러를 제재할 만한 뚜렷한 해결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법조계 관계자 A 씨는 “법적인 관점에서 보면 ‘스포일러를 제재할 방안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지적했다. A 씨는 “오프라인에서 우연히 듣는 스포일러의 경우는 논외로 쳐야 한다”면서 “온라인에서 스포일러를 퍼뜨린 유포자를 법적으로 제재하는 것 역시 어렵다. 영화 관람 전 관람객들이 ‘스포일러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나 각서를 작성하지 않는 이상 스포일러 유포자에 대한 법적 제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21세기 인터넷의 발전과 함께 대중의 소통창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스포일러는 영화 산업의 새로운 불청객으로 등장했다. 앞으로도 영화 흥행작을 둘러싼 기상천외한 스포일러는 끊임없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