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미얀마에는 유난히 나이 든 분들이 여행을 많이 옵니다. 불교 유적지가 많기도 하고 다른 동남아 국가들을 다 돌고서 마지막으로 이나라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만나면 노후의 삶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눕니다. 노후에는 시간나면 여행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국 여행객을 지켜보면 신기한 게 많습니다. 양곤에 도착해 비행기로 바간, 버스로 만달레이, 다시 비행기로 인레호수, 또 비행기로 양곤. 5박6일, 수천 킬로를 사진만 찍고 다니다 노인들은 지쳐서 양곤에 옵니다. 우리 국민은 빠른 속도로 일하기 때문에 여행도 속도가 빠릅니다. 일행이 아파도 다음 행선지로 강행합니다. 미리 계획해 둔 스케줄을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죠.
미얀마 시골 재래시장 풍경.
하지만 ‘한달살기’를 하며 느린 여행을 하는 분들도 있긴 합니다. 제가 여기에 살며 느끼는 점은 미얀마 여행의 진짜 즐거움은 순박한 사람들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황폐하고 오랜 유적지는 어딜 가도 있습니다. 요즘은 저처럼 이곳에 살기 위해 혼자 여행을 오는 분들이 눈에 띕니다. 상당수가 60, 70대 은퇴자들입니다.
축제기간에는 도로에 코끼리가 다니며 춤을 춘다.
은퇴자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로는 베트남 호찌민 부근, 태국 치앙마이 부근, 최근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부근 등이 많이 오르내립니다. 주거와 물가가 싼 미얀마 시골을 찾는 이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소도시의 싼 콘도들을 안내하기도 합니다. 가끔 이들과 대화를 합니다. 한국서는 직장에서 은퇴를 하면 사는 게 재미가 없답니다. 평생 일하느라 노는 게 익숙하지 않고 그래서 느린 장기여행도 쉽지가 않다고 합니다. 지위가 없으면 남에게 건네주는 명함도 없고, 웅크려집니다. 사실 명함이 없어지는 날, 그때가 가장 자유로운 시작일 텐데요. 저도 이 나라에 와 4년간은 명함이 없었습니다. 평생 들고 다닌 것이기에 아예 만들질 않았습니다. 가까운 해외로 나가 살고 싶은 은퇴자들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가족, 친구들이 주변에 사는데도 여유가 없고 외롭다는 점입니다. 좀 즐겁고 여유롭게, 새로운 일을 하며 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국민은 어디서든 일하는 걸 좋아합니다.
승려들은 새벽과 오전 2번의 식사만 한다.
미얀마 교민들도 한국에서 했던 일을 접고 새로운 일을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여긴 제조, 유통, 서비스 분야가 취약합니다. 전통방식이 유지됩니다. 싱가포르, 일본 등 나라가 교육산업, 농업기술 등 전망 있는 산업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은퇴 후에도 자신의 경험이 쌓인, 잘하는 일을 하는 건 즐거운 일일 것입니다. 농사짓던 분은 농업 분야에 정말 할 게 많습니다. 영어교육 분야도 큰 시장이 될 것입니다.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식품가공 분야, 디자인 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퇴 여행자와의 대화에는 건강, 음식, 외로움 등의 주제가 빠질 수 없습니다. 언어만큼 힘든 게 음식이라고 합니다. 한국 사람은 고칼로리를 너무 많이 먹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긴 사원에서 스님들이 하루 오전에 두 끼만 먹습니다. 저는 반대로 합니다. 배부름처럼 공복도 훈련하면 편안함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한국에서 가진 질병들이 언젠가 다 사라졌습니다. 동남아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음식 재료가 거의 있습니다. 양곤에도 3000명 이상의 교민이 살기 때문입니다. 시골에도 음식재료를 택배로 공급합니다.
세월이 지나며 갈라지는 밍군대탑.
마지막으로 이웃입니다. 해외에 살면 새로운 가족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일하는 식구들과 같이 살 수도 있습니다. 이들과 소통하며 언어와 음식을 극복하게 되고, 관습도 존중하게 됩니다. 여기 젊은이들은 노인들과 함께 지내는 데 익숙합니다. 참 잘 어울립니다. 은퇴 후의 삶을 다시 꾸리는 분들에게. 살고 싶은 도시로 여행을 권합니다. 느릿한 ‘한달살기’로.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