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5일 ‘2019년 대기업집단 현황’을 발표했다. 공정위는 매년 5월 자산 5조 원이 넘는 기업집단을 ‘준대기업집단’인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자산 10조 원이 넘는 기업은 ‘대기업집단’인 상호출자제한 집단으로 지정해 재무현황과 경영성과 등을 발표한다.
이 자료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건 기업들의 총자산 순위다. 이 순위가 곧 재계 순위로 통용되고 있어서다. 올해 공정위가 지정한 자산 5조 원 이상 공시대상 기업집단은 총 59곳.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은 34곳, 공시대상 기업집단은 25곳이다.
# 2위 자리 노리는 ‘SK’와 진격의 ‘한화’
올해 발표에서 가장 주목을 받건 상위권 중에서도 ‘2위’ 자리다. 10년 넘게 이어져 오던 ‘2위 현대차, 3위 SK’ 공식이 뒤바뀔 가능성이 지난해부터 꾸준히 점쳐져 왔기 때문이다. 공정위 집계를 보면 결과적으로 SK가 순위를 뒤집지는 못했다. 다만 두 그룹 간의 격차가 크게 좁혀졌다.
자산규모로 보면 현대자동차그룹은 2017년 222조 7000억 원에서 2018년 223조 5000억원으로 8000억 원 늘어났다. 반면 SK그룹은 189조 5000억 원에서 218조 원으로 28조 5000억 원 늘었다. SK그룹의 늘어난 자산 규모는 15조 원을 늘린 1위 삼성과 4위 6조 5000억 원을 불린 4위 LG 보다도 크다. SK그룹이 반도체 공장을 증설하고, SK인포섹과 ADT캡스 등을 계열사로 편입하면서 자산 규모가 크게 불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현대차와 SK그룹의 자산 격차는 2017년 33조 2000억 원에서 지난해 5조 5000억 원으로 좁혀졌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 정도 격차는 대규모 투자나 M&A 등으로 역전될 수 있다”며 “내년 발표에서 순위가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공정위가 15일 발표한 2019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현황.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10위권 내에서 희비가 엇갈린 건 한화와 GS다. 한화는 8위에서 7위로 한 계단 올랐고, GS는 반대로 한 계단 내려갔다. 기업집단 순위 7위 내에서 순위 변동이 생긴 건 지난 2015년 이후 처음이다.
한화는 소속회사 수가 1개 줄었지만 2017년보다 자산총액이 4조 3000억 원 늘어 65조 6000억 원을 기록했다. 한화의 이번 순위 역전은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의 결과물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10년부터 2년 사이 중국‧독일 태양광 업체 인수부터 2015년 삼성그룹 화학‧방산 계열사 인수 등의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한화 관계자는 “한화생명이 1조 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고 (주)한화, 한화케미칼, 한화큐셀 등 제조부문 영업이익 3조 원이 반영돼 자산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GS는 62조 9000억 원으로 2017년보다 2조 1000억 원 줄었다. 일부 계열사들이 차입금을 상환했고, GS에너지 자회사인 해양·서라벌 도시가스와 SI 계열사 GS ITM 매각 등으로 소속회사가 7개 줄어 2018년 자산총액이 감소했다. GS 측은 “신규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매각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15위권에서는 최근 ‘새내기 총수’ 박정원 회장을 맞이한 두산이 두 계단 내려가 15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보다 소속회사는 3개 줄었고 자산총액도 2조 원 감소했다. 두산이 내려간 자리에는 한진과 CJ가 올라 각각 13위, 14위를 차지했다. 다만 한진의 자산이 늘어난 배경에는 행동주의 펀드 KCGI와의 분쟁이 있다. KCGI는 한진칼의 지분을 10% 이상으로 늘리며 경영 참여가 가능해졌는데, 한진칼이 이에 대응해 단기차입금을 1650억 원 확대하면서 결과적으로 자산이 늘었다.
20위권에선 미래에셋과 S-OIL이 19위 자리를 두고 희비가 엇갈렸다. 양 쪽 모두 소속회사 수(각각 38개, 3개)의 변동이 없었고 자산 총액도 늘었지만 미래에셋이 15조 원에서 16조 9000억 원을 기록하는 사이 S-OIL은 15조 2000억 원에서 16조 3000억 원으로 증가하면서 순위가 갈렸다.
20위권 밖에서는 순위 변동이 컸다. 21위부터 59위까지 6곳을 제외하면 모두 순위가 뒤바뀌었다. 특히 OCI는 27위에서 31위를, KCC는 29위에서 34위를 기록하면서 순위가 많이 하락했다. OCI의 순위 하락은 유니온 계열회사 친족분리 및 OCI㈜ 부채감소가 원인으로 분석된다. KCC는 지주사 금융자산 감소 및 계열회사 독립경영 등으로 자산규모가 줄었다. 반면 하림그룹은 자산을 1조 4000억 원 늘리며 6계단 오른 26위를 기록했다.
# ‘재벌’ 반열 오른 카카오와 HDC
카카오와 HDC는 공식적으로 한국의 새 ‘재벌’이 됐다. 지난해 자산 10조 원을 넘겨 올해 공정위로부터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대기업집단)으로 지정돼서다. 특히 카카오는 벤처에서 출발한 ICT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대기업 명패를 달게 됐다. 카카오 자산 총액은 10조 603억 원이다. 지난해 이후 계열사에 대한 현물출자 및 주식 취득 등이 자산 총액에 반영됐다. 2016년 5조 원을 돌파한 이후 3년 만에 몸집이 두 배로 불었다. 계열사는 71개로, 재계에서 계열사가 6번째로 많다. 이번 자산 총액 기준 순위는 32위다.
HDC현대산업개발 등을 가진 HDC는 자산이 2017년 8조 원에서 2018년 10조 6000억 원으로 늘어나면서 대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렸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계열사로 편입하고 HDC㈜ 유상증자로 자산이 늘었다. 순위는 33위다.
애경그룹과 키움증권을 보유한 다우키움그룹은 자산 총액 5조 원을 넘기면서 새롭게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포함됐다. 애경은 자산총액 5조 2000억 원을 기록했는데, 지난해 초 애경산업 등 계열사 상장과 서울 마포구 신사옥 준공에 따라 자산이 늘었다. 다우키움그룹은 사모투자전문회사(PEF)와 투자목적회사(SPC)가 늘면서 자산총액 5조 원을 넘겼다. 애경과 다우키움은 각각 58위, 59위를 기록했다.
반대로 메리츠금융과 한솔(4조 8000억 원), 한진중공업(2조 6000억 원)은 이번 공시대상 기업집단에서 제외됐다. 메리츠금융은 올해 초 집단 내 유일한 비금융사였던 메리츠비즈니스서비스를 매각하면서 금융전업집단으로 분류하기로 했다. 한진중공업은 자산 2조 4000억 원의 인천북항운영(주) 지배력을 상실했다. 한솔 역시 계열사 매각으로 자산이 줄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