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박은숙 기자
“허니문은 없을 것이다.”
이인영 의원에게 표를 던졌다는 한 민주당 비문 의원의 말이었다. 자유한국당을 염두에 둔 말이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청와대’였다. 귀를 의심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친문 당권파가 밀었던 김태년 의원을 여유 있게 따돌렸다. 이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이 원내대표가 이런 당심을 외면한다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집권당 원내 수장에 오른 이 원내대표 앞날은 가시밭길이다. 민생입법 처리 등 풀어야 할 과제는 산더미다. 패스트트랙도 이제 겨우 첫걸음을 뗐을 뿐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이해찬 대표와 함께 강력한 친문 지도부를 꾸리겠다던 김태년 의원이 더 적임자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비주류 이 의원을 택했다. 청와대와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라는 메시지였다.
이번 원내대표는 내년 총선을 진두지휘하는 사령탑을 맡는다. 비주류는 물론 친문 초재선 의원들이 이 원내대표를 택한 이유는 여기서 비롯된다. 민주당에서 은밀히 나도는 물갈이 공포와 맞물려 있다는 얘기다. 정치권에선 ‘불쏘시개’ 역할을 자임한 이해찬 대표가 현역 의원 상당수를 바꿀 것이란 관측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비주류 진영에선 그 타깃이 될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다. 한 친문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의원들 머릿속은 온통 선거로 가득 차 있다. 선거제가 바뀌면 지역구가 줄어들 수 있어 눈치 싸움이 일찍 시작됐다. 원내대표 선택의 기준은 ‘내가 공천을 받는 데 누가 도움을 줄 수 있을까’였다. 계파와는 무관했다. 친문계 의원들 중 절반 이상이 이 원내대표를 골랐다. 그만큼 현역들이 공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결국 여권 내 지형을 바꾸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이 5월 3일 발표한 공천 룰은 현역들의 우려를 더욱 부채질했다. 민주당은 현역 의원 경선을 원칙으로 하고, 정치 신인에게 최대 20%의 가산점을 주기로 했다. 현역에겐 다소 불리할 수 있는 규정이다. 이를 두고 비문 의원들은 ‘총선에 출마하는 청와대 참모들에게 유리하다’고 입을 모았다. 인지도 면에선 웬만한 현역보다 높은 청와대 출신 참모들을 과연 정치 신인으로 볼 수 있느냐는 물음이 뒤따른다.
여기에 ‘양비’로 불리는 양정철 전 비서관이 민주연구원장을 맡게 된 점도 원내대표 경선 과정에서 자주 거론됐다. 문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양 원장이 총선 전략 수립을 세우면서 물갈이를 주도할 것이란 게 골자였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친문계에서조차 양 원장에 대한 거부감이 나올 정도”라면서 “현역들의 밥그릇 지키기라는 비난이 나올 수 있겠지만 공천은 생존권과 직결돼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인영 원내대표 승리는 이런 배경에서 이해된다. 특히 청와대를 향한 강경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핵심 친문들의 친정체제 구축 일환으로 받아들여지는 공천 싸움에서 이 원내대표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비문 의원은 “청와대 출신들의 낙하산 공천은 절대 안 된다. 또 이대로 청와대에 끌려가기만 하면 총선 승리는 힘들다”면서 “이 원내대표가 여론을 가감 없이 청와대에 전달해주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이 원내대표 측근들은 이러한 당 분위기를 잘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 관계자는 “이 원내대표가 청와대와 어떤 스탠스로 나아갈지 고민이 깊다. 확실한 점은 거수기 역할은 더이상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잘못한 부분은 정확히 짚어야 당이 살 수 있다”면서 “의원들이 현장에서 전하는 여론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이 원내대표 생각”라고 말했다.
당 내부에선 조국 민정수석의 PK 출마설에 불쾌감을 나타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정치권에선 조 수석의 부산 지역 출마 여부가 ‘뜨거운 감자’다. 본인은 부인하고 있지만 친문 진영이 ‘히든카드’로 조 수석을 출격시킬 가능성이 오르내린다. 총선에 도전하는 청와대 출신 참모들의 상징적인 인물로 조 수석이 꼽힌다. 이 원내대표 당선 후 조 수석 ‘비토 기류’가 빠르게 퍼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비문 의원은 “몇몇 친문 의원들은 조 수석을 ‘포스트 문재인’으로 부르더라. 그를 총선에 출마시킨 뒤 대권 주자로까지 키우려는 생각인 것 같다. 그런데 조 수석은 호불호가 극명한 인물이다. 최근 좋지 않은 PK 여론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될 것이다. 조 수석 공천은 득보단 실이 더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솔직히 말하면 조 수석은 총선 출마가 아니라 당장 직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본다. 인사 검증 실패 등에 대한 야당의 공격을 더이상 막아줄 순 없다”고 꼬집었다.
이 원내대표 주변에서도 조 수석에 대해 호의적이진 않은 모습이 역력하다. 조 수석뿐 아니라 다른 청와대 참모들의 총선 출마에 대해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원내대표 측으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 원내대표가 조 수석을 포함한 일부 청와대 참모진 교체를 제안할 필요가 있다. 지지층 중에서도 참모진 쇄신을 원하는 여론이 높기 때문이다. 당이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향후 공천 과정에서 당청 간, 그리고 친문과 비문 간 긴장감이 흐를 수 있음을 추측케 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한 핵심 친문 의원은 “청와대 출신이라고 특혜를 주는 게 아니지 않느냐. 공정한 경선을 거칠 텐데 벌써부터 조 수석 등을 깎아내리는 것은 과도한 경계심에 지나지 않다”고 일축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