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보이’ 스틸컷. 사진=소니픽처스 제공
영화 ‘더 보이’는 ‘슈퍼맨’의 안티테제다. 우주에서 온 갓난아기가 지구를 위해 온몸을 바치는 슈퍼 히어로로 성장한다면, 반대로 지구인을 전멸시키고 행성을 지배하기 위한 악당으로도 성장할 수 있다는 가정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붉은 망토와 마스크, 히어로(?) 심볼, 강철 신체와 강력한 파워, 초고속 비행 능력 등 히어로들에게 주어졌던 모든 능력과 상징성은 그대로 악당에게 주어진다.
이제까지의 슈퍼 히어로 무비는 너무 친지구적이었으니 한 번쯤은 지구도 그 반대를 상정하며 위기감을 가져볼 만도 하다. 그런 점에 있어서 이 영화는 평화에 절어있던 지구인 관객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올 수 있다.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 등 마블 히어로 무비를 만들어 온 제임스 건과 데이비드 야로베스키 감독 등 베테랑 제작진의 의기투합으로 만들어진 ‘슈퍼 히어로 호러’라는 새로운 장르 역시 관객들의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데 한몫 했다.
신선한 소재와 쟁쟁한 제작진, 연기파 배우들이 합쳐졌으니 기대가 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판이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소재의 신선함에 과하게 매몰돼서 관객들이 캐릭터와 스토리를 따라잡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는 부분이다.
‘더 보이’ 스틸컷. 사진=소니픽처스 제공
영화 속 주인공의 행보에 공감이 가지 않는 것은 비단 우리가 지구인이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다른 세계에서 온 주인공 브랜든(잭슨 A. 던 분)은 12세를 기점으로 자신의 능력과 임무를 깨닫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갑작스럽게 변화하는 브랜든의 심경을 관객들은 전혀 유추할 수 없다.
직전까지 너무나 평범한 가정에서 양부모인 브라이어 부부(엘리자베스 뱅크스, 데이비드 덴맨 분)의 사랑을 받던 외동아들이 갑자기 돌아버리는 것이다. 관객의 입장으로서는 극중 이유도 모르고 그에게 살해당하는 사람들만큼이나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 하필이면 변화의 기점이 되는 시기가 사춘기이기도 하고, 극중에서 브랜든이 계속해서 강조하는 대사 탓에 보고 있자면 끔찍한 악당보다는 중증의 중2병 환자처럼 느껴질 정도다.
관객들이 혼란스러운 것은 영화에서 브랜든의 각성의 원인은 존재하지만 그 이유와 목적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슈퍼 히어로의 힘’을 지닌 악당이라는 캐릭터성을 부각시키고자 했다면 그의 이후 행보 역시 히어로의 안티테제로서의 모습이 설명됐어야 했다. 그러나 극 중반부부터 보여주는 브랜든의 모습은 앞선 호러 무비 선배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신들린 연쇄 살인마에 불과하다.
영화 ‘더 보이’ 스틸컷. 사진=소니픽처스 제공
타고난 막장 악당도 아니고, 선과 악의 갈림길에서 깊이 고뇌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서 살육과 파괴만을 반복한다. ‘슈퍼 히어로 호러 장르’라는 이름을 붙여 “완전히 새로운 방향 전환을 시도한 슈퍼 히어로 영화”라고 설명하긴 했지만, 결국 호러 장르 메인에 슈퍼 히어로 소재를 살짝 양념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한계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극중 등장하는 브라이어 부부 역시 특히 부모 자식 간의 가족애를 주로 다루는 호러 장르의 클리셰를 답습한다. 내 아들 옆에서 사람이 줄줄이 죽어나가도 아들을 믿는 엄마(토리 브라이어)와, 아직 안 죽였는데 ‘저거 사람 잡을 것 같은데’라고 의심부터 해서 일을 키우는 아빠(카일 브라이어). 호러 장르에 잔뼈가 좀 굵다 자부하는 관객들이라면 예고편만 봐도 이들의 결말을 대충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들의 두 가지 결말 중에서 하나는 관객들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다. 클리셰대로 흘러갈 것이라고 마음을 놓고 있다가는 떨어지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영원할 것 같은 가족애가 공포 앞에서 어떻게 일그러질 수 있는지 영화에서 직접 확인하자. 예상 이상으로 강한 고어와 공포씬에 주의. 90분, 15세 이상 관람가. 23일 개봉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