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장은 손을 모으는 것이다.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것이다. 사실 마음을 다 담아 손을 모으는 일이 어찌 쉬울 수 있을까. 불안과 두려움을 넘어, 희망과 절망을 넘어, 선과 악을 넘어, 진보와 보수를 넘어, 부귀와 빈천을 넘어, 종교의 차이를 넘어 하나가 되는 교감의 순간이.
제대로 합장하는 일은 쉽지 않다. 손을 모으고 가만히 내 생각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몸속을 떠다니는 생각들의 흐름들이 보인다. 생각들이 끊임없이 일어나 그 생각들에 내가 사로잡혀 있으면 손도 잘 모아지지 않고, 이리저리 흔들린다. 마음이 모아져서 생각이 고요해져야 고요한 합장이 가능해진다. 합장하고 있는 손만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보인다.
북유럽에 르네상스를 연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라는 화가가 있다. 나는 합장하고 있는 손만을 그린, 뒤러의 ‘기도하는 손’이란 드로잉 작품을 좋아한다. 뒤러의 집은 가난했다. 그림에 열정도 있고 재능도 있었지만 너무나 가난해서 공부할 수 없었다. 그의 동생도 역시 재능이 있었다. 가난 때문에 미래를 포기해야 사람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동생은 재능을 포기하고 석탄광산에서 일하며 형을 뒷바라지했다.
형은 육체노동에 지친, 거칠 대로 거칠어진 동생의 손이 자기 인생길을 열어줬음을 잊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형은 동생을 기도하는 사람으로, 기도하는 손으로 기억했다.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 동생이 하느님을 향해, 형만은 화가로서 성공하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를 들었던 것이다.
뒤러가 말한다. “기도하는 손은 가장 깨끗하고 가장 위대한 손이다. 기도하는 자리야말로 가장 위대한 자리고 가장 높은 자리다.”
망가질 대로 망가져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었던 동생의 손이 위대한 손인 것은 단순히 형의 인생의 ‘성공’을 기원하는 착한 마음 혹은 이타심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가 누군가의 인생을 보살피고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자리가 가장 위대한 자리인 것은 거기 부귀영화가 깃들기 때문이 아니라 욕심이 정화되고 분노가 가라앉으며 번뇌로 모았던 손이 생을 긍정하고 생의 신비에 눈을 뜨는 에너지로 바뀌기 때문이다.
손을 모으는 사람은 안다. 삶은 혼자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거대한 흐름이라는 것을. 그 흐름에 다쳐 힘들어서, 괴로워서 손을 모아본 적이 있는지. 처음에 이리저리 흔들리던 손이 마음이 고요해짐에 따라 하늘을 향해 중심을 잡으며 고요해지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지.
불안도 잠재우고 두려움도 날려 보내는 기도하는 손, 합장하는 손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손이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