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조사 과정에서 구속 영장 청구를 피할 수 없다면, 전략을 신중하게 짜야 한다. 구속 여부 판단은 검찰이 아닌, 법원의 몫이기 때문. 그런 측면에서 지난주 잇달아 영장이 발부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강신명 전 경찰청장의 사례는 눈여겨볼 만하다. ‘죄의 중함’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구속의 필요성은 다른 측면에서 다툴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경찰과 검찰, 사정 당국을 대표했던 두 거물은 잘못된 전략으로 영어의 몸이 돼 버렸다. 법조계에서는 ‘혐의 인정과 일관된 진술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한다. 잘못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과 동시에, 처음부터 일관된 사실 관계로 맞서야 법원을 설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각 조직에 ‘누’를 끼치게 된 꼴인데, 각 수사팀은 구속에 성공한 만큼, 수사에 더 속도를 내고 있다.
# ‘윤중천 모른다’더니, 진술 바꾼 김학의 전 차관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산 것과 같다’며 영장 실질 전담 재판부에 호소한 김학의 전 차관. 하지만 김 전 차관은 다음 전략을 잘못 선택했다. 앞선 검찰 수사에서 “(건설업자) 윤중천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잘 모른다”는 맥락으로 혐의를 일체 부인하던 것을 번복했다. “윤중천을 알고 있다”고 법정에서 털어놨다.
16일 오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임준선 기자
사실 김 전 차관의 전략은, 김학의 수사단(단장 여환섭 청주지검장) 입장에서 ‘구속이 필요한 사유’인 셈이었다. 이미 언론 등을 통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안다”는 맥락으로 윤중천 씨가 얘기를 해왔기 때문. 윤 씨는 검찰 조사에서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2007년 전후로 수백만 원씩 명절마다 김 전 차관에게 건넸다. 검사장 승진하는 데 도움을 준 의사에게 성의를 표시하라고 500만 원을 줬다”는 등의 진술을 털어놨다.
2008년 초에는 “김 전 차관이 내 사무실(중천산업개발 사무실)에 걸려있던 박영률 화백의 그림이 맘에 든다며 가지고 갔다”는 진술도 내놨다. 실제 윤 씨는 박 화백의 그림을 여러 점 구매했는데, 이 가운데 김 전 차관이 가져간 그림은 윤 씨가 2007년 무렵 박 화백에게 1000만 원을 주고 구매한 것으로 파악됐다.
성 접대 혐의 역시 진술을 받아냈다. 윤 씨는 검찰에서 “성 접대 여성 6명을 김 전 차관에게 소개했다. 골프 접대 10차례 모두 성 접대로 이어졌다”며 2007년부터 16개월간 200차례 가까이 성 접대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데도 수사 초반부터 “윤중천 씨를 잘 모른다”고 ‘모르쇠’ 전략을 선택한 김학의 전 차관. “잘못된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법원 출신의 변호사는 “김 전 차관도 법조인이라지만, 중도 자기 머리는 못 깎는다더니 검찰 수사 대응 전략을 잘못 선택한 것 같다”며 “앞선 검찰 수사가 무마됐던 흐름대로 ‘김학의 씨를 잘 알고 함께 별장에서 성관계를 한 것도 맞지만, 성 접대는 아니’라고 진술하며 뇌물 성격을 부인하고, 성관계 역시 합의 하에 이뤄졌다고 강조했다면 그냥 지인들끼리 난잡하게 논 파티로 끝나지 않나. 법원이 영장 발부를 결정할 때 더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속 영장을 피할 수 없는 수사라는 것을 알면서도, 진술의 일관성을 스스로 포기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가수 박유천 씨도 기자회견까지 하며 “마약을 한 적이 없다”고 하다가, 영장 실질 심사 때 번복하고 구속된 바 있는데 김 전 차관이 똑같은 전략을 취한 것이다.
특히 김 전 차관의 경우 심야에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을 하려다가 적발된 것도 불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다른 판사 출신의 법조인 역시 “영장 실질 심사는 검찰 수사 결과와 피의자의 해명 등만 듣고 하루 만에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죄의 중함’ 정도만큼이나, 피의자의 죄 인정과 일관된 설명이 중요하다”며 “김 전 차관은 여행이라고 해명하지만 누가 봐도 문제가 될 수 있는 시기에 해외를 나가려고 했다는 부분이 진술 번복과 함께 나올 경우 피의자(김학의 전 차관)에게 백 번 불리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법원은 구구절절한 설명 대신 “주요 범죄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이나 도망 염려 등과 같은 구속 사유도 인정된다”는 짤막한 문장으로 발부 이유를 밝혔다.
청문회 참석 당시의 강신명 전 경찰청장. 박은숙 기자
강신명 전 청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정보 경찰들을 통해 불법으로 정치에 관여한 혐의.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김성훈 부장검사)는 2016년 4월 제20대 총선 당시 경찰 정보라인을 이용해 ‘친박계’ 후보를 위한 맞춤형 선거 정보를 수집하고 선거 대책을 수립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로 지난 10일 강 전 청장 등 전·현직 경찰 수뇌부 4명의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의 판단은 경찰청 정보국이 ‘지역 정보 경찰 라인’을 활용해 친박 후보들에게 유리한 정보를 건넸다는 것. 실제 당시 정보 경찰들을 어느 지역구에 출마해야 당선 가능성이 높은지, 선거 공약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역 현안들을 파악해 보고했다.
경찰은 이미 지난해 10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이명박 정부 시절 댓글 공작을 지휘한 혐의로 구속되는 불명예를 겪었다. 강 전 청장은 “청와대 지시대로 정보를 수집해 넘겼을 뿐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청와대가 판단했다”는 취지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당시 경찰청 차장이었던 이철성 전 경찰청장도 함께 구속 영장이 청구됐지만, 이 전 청장은 강 전 청장과 전략을 달리 선택했다. 영장 실질 심사에서 “잘못했다”는 취지로 혐의를 인정한 것. 당초 “나는 잘 모르는 일이다. 부하들이 알아서 한 일”이라고 다투던 이철성 전 청장이 정작 영장 실질 심사에선 “부하 직원들이 지역 여론 동향 문건 등을 보고했다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경찰청 차장으로서 정보 경찰의 정치 개입 관행을 적극적으로 막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을 바꿨다.
죄를 인정하고, 당시 상관이었던 강신명 전 청장만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든 셈이다. 실제 영장전담 재판부는 혐의를 부인하는 강신명 전 청장에 대해서는 “영장 청구서 기재 혐의 관련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증거를 인멸할 염려 등과 같은 구속 사유도 인정된다”며 영장을 발부하고, 이 전 청장에 대해서는 “피의자의 지위 및 관여 정도, 수사 진행 경과, 관련자 진술 및 문건 등 증거자료의 확보 정도 등에 비춰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영장을 기각했다.
당시 직책에 따른 책임의 정도와 혐의 인정 여부, 뉘우치는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영장전담 재판부의 빈틈을 잘 분석했다는 평이 나오는 대목이다.
국정감사 참석 당시의 이철성 전 경찰청장. 박은숙 기자
영장전담 재판부 경험이 있는 한 판사는 “영장이 필요한 것은 ‘나가서 입을 맞추고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서인데, 영장 실질 심사 때 죄를 인정하고 뉘우친다는 것은 ‘증거 인멸을 하지 않겠다’는 또 다른 방증”이라며 “검찰 수사 때부터 일관되게 죄를 인정하고, 다투는 부분에 대해서도 일관되게 증거를 가지고 해명한다면 ‘검찰이 다소 과하게 혐의를 보고 있지 않는가’라고 의심하는 게 판사”라고 털어놨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