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역사상 5번째 외국인 포수로 이름을 남기게 된 NC 다이노스 크리스티안 베탄코트. 사진=연합뉴스
[일요신문] 2019년. KBO 리그 출범 이후 5번째 외국인 포수가 등장했다. 주인공은 NC 다이노스 외국인 타자 크리스티안 베탄코트다.
베탄코트는 5월 15일 창원 NC파크에서 열린 NC와 SK 와이번스전에서 KBO 리그에 데뷔한 뒤 처음으로 포수 마스크를 썼다. 베탄코트는 안정적인 캐칭 능력과 풋워크를 자랑했다. 투수에게 사인을 내는 베탄코트의 손가락 움직임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보였다.
NC 이동욱 감독은 “베탄코트의 포수 출전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현실이 됐다. 베탄코트는 5월 18일 잠실야구장에서 펼쳐진 LG 트윈스전에서도 NC의 안방을 책임졌다.
포수 베탄코트, NC 타선에 깊이 더할 비장의 카드
주축 선수들의 연이은 부상으로 NC의 ‘양의지 의존도’가 높아진 상황. 포수 베탄코트의 등장은 NC에 천군만마와 같다. 사진=연합뉴스
시즌 전부터 ‘포수 베탄코트’를 향한 팬들의 기대감은 높았다. 베탄코트가 아마추어 시절부터 포수로 활약했던 까닭이다. 베탄코트의 포수 경력은 프로에서도 이어졌다. 미국 마이너리그 시절 대부분을 포수 미트와 함께한 베탄코트는 메이저리그 무대에서도 안방마님 자리를 꿰찬 경력이 있다.
NC는 베탄코트를 영입할 때부터 “베탄코트를 포수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하지만 포수 마스크를 쓴 베탄코트를 보기까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여기엔 여러 이유가 있었다.
먼저 시즌 개막 이후 베탄코트의 몸상태가 좋지 않았다. 베탄코트는 시즌 초반 햄스트링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한 뒤 복귀한 경험이 있다. 그를 포수로 무리하게 기용할 경우 ‘햄스트링 부상 재발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있었다.
여기에 시즌 초반 NC에겐 ‘베탄코트를 포수로 기용해야 할 만한 필연적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주전 포수 양의지와 백업 포수 정범모의 활약이 조화로웠던 까닭이다.
지난 겨울 NC가 4년 총액 125억 원을 들여 영입한 양의지는 올 시즌 ‘자신이 왜 리그 최고 포수’로 불리는지 다시 한번 증명하고 있다. 5월 21일 기준 양의지는 44경기에 출전해 타율 0.385/ OPS(출루율+장타율) 1.125/ 9홈런/ 33타점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양의지는 공·수에서 만점 활약을 이어가며 NC파크 안방에 연착륙했다.
NC 백업포수 정범모는 양의지에게 휴식이 필요할 때마다 포수로 출전해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였다. 21일 기준 정범모는 17경기에 출전해 타율 0.241/ OPS 0.692/ 1홈런/ 3타점을 기록했다. 백업포수로서 나쁘지 않은 활약이다.
하지만 시즌이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NC 선수단 상황에 변화가 생겼다. 박석민, 모창민 등 주축 선수들이 연이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팀 간판 스타인 나성범은 5월 3일 KIA전에서 주루 도중 왼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당하며 시즌아웃됐다.
준수한 타격 능력과 멀티포지션 수비 능력을 겸비한 베탄코트의 활용도는 높다. 사진=연합뉴스
주축 선수들이 부상에 신음하자 양의지 의존도가 높아졌다. 포수는 경기 중 가장 많은 체력을 필요로 하는 야수다. ‘핵심 전력’인 양의지를 지속해서 포수로 기용할 경우 NC는 딜레마에 빠진다. 양의지가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거나 지명타자로 출전할 경우, 공격력의 편차가 커지는 까닭이다.
이때 베탄코트가 포수 마스크를 쓸 수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NC 입장에서 베탄코트는 양의지 부재시 포수 포지션 및 공격력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카드였다. 유일한 불안요소는 수비 능력이었다. KBO 리그에서 베탄코트가 얼마나 탄탄한 포수 수비를 선보일지 불확실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베탄코트는 2경기 포수 선발 출전을 통해 자신의 준수한 수비력을 증명했다. 첫 단추를 훌륭하게 뀄다. 포수 베탄코트의 등장으로 NC는 야수진 운영에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됐다. 1루수, 외야수, 지명타자, 포수 등 멀티플레이어로 거듭난 베탄코트는 팀 밸런스에 큰 힘을 보태는 옵션이 될 전망이다.
5월 21일 기준 베탄코트는 32경기에 출전해 타율 0.279/ OPS(출루율+장타율) 0.844/ 8홈런/ 25타점 준수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 그가 멀티포지션을 소화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팀 공헌도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 볼 수 있다.
KBO리그 외국인 포수의 역사, ‘임시방편’으로 기용된 선수가 대다수
2016, 2017시즌 한화 이글스에서 활약했던 윌린 로사리오. 로사리오는 메이저리그 포수 출신으로 ‘풀타임 외국인 포수’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2시즌 동안 로사리오가 포수 마스크를 쓴 건 4차례에 불과했다. 사진=연합뉴스
1982년 KBO 리그 출범 이후 포수 마스크를 쓴 외국인 선수는 총 5명이다.
2004년 한화 이글스 소속 엔젤 페냐가 사상 첫 외국인 포수로 이름을 남긴 뒤 비니 로티노(2014, 넥센 히어로즈), 제이크 폭스(2015, 한화), 윌린 로사리오(2016-2017, 한화) 등이 포수 마스크를 썼다. 그리고 2019년 크리스티안 베탄코트가 KBO 리그 외국인 포수의 명맥을 이어가게 됐다.
베탄코트 등장 이전까지 KBO 리그 외국인 포수들은 사실상 ‘임시방편’ 취급을 받았다. 앞서 언급한 외국인 포수 4명 가운데 KBO 통산 포수로 10경기 이상을 소화한 선수는 비니 로티노가 유일하다. 로티노는 포수로 12경기에 출전했는데, 이중 선발로 출전한 경기는 8차례에 불과했다.
하지만 베탄코트는 다르다. 그는 ‘풀타임 포수’로 뛸 만한 능력을 갖췄다. NC 역시 베탄코트 포수 기용에 소극적이지 않다. NC는 영입 단계부터 베탄코트를 포수로 기용하는 데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해 왔다.
베탄코트는 포수로서 안정적인 기량을 뽐내며 NC 안방에 성공적으로 연착륙했다. 그의 포수 출전 기회는 꾸준히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NC는 베탄코트 포수 출전을 통해 ‘양의지 체력 안배’와 ‘포수 포지션 공격력 손실 최소화’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게 됐다.
“KBO 리그에서 외국인 선수가 포수로 풀타임을 소화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먼저 투수와의 소통 문제가 있다. 투수가 갑자기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 때 투수를 다독이는 건 포수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런데 언어가 다르다면 이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여기에 포수는 투수를 리드해야 한다. 상대 타자들의 약점을 공략하는 볼 배합을 구사해야 한다. KBO 리그 타자들에 대한 정보가 생소한 외국인 포수에게 이런 디테일한 부분을 기대하긴 어렵다.”
한 야구 관계자는 그간 KBO 리그에 ‘풀타임 외국인 포수’가 존재하지 않았던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다른 야구 전문가들의 의견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많은 야구 전문가는 ‘외국인 포수’ 기용에 “한계가 있다”는 데 공감하는 추세다.
이 한계를 극복하는 건 앞으로 베탄코트가 풀어야 할 숙제다. 과연 베탄코트는 외국인 포수를 바라보는 국내 야구인들의 고정관념을 깰 수 있을까. 포수 마스크를 쓴 NC 베탄코트의 행보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