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EV 트렌드 코리아 2019’에서 베이징자동차의 전기차가 전시돼 있다. 최준필 기자
베이징자동차그룹(BAIC)은 지난 2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친환경 자동차 전시회 ‘EV 트렌드 코리아 2019’에 참가해 중국 자동차 브랜드로는 최초로 전기 승용차 3종을 공개했다. 베이징자동차그룹은 중국 정부에서 운영하는 국영기업으로, 2010년 설립됐다. 대형 버스, 트럭 등 상용차부터 세단, SUV, 경차 등 승용차까지 모든 자동차를 생산하는 종합자동차 제조사다. 전기차 분야에서 지난해 세계 판매 4위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행사에서 베이징자동차가 선보인 전기차 라인업은 중형 세단 EU5, 중형 SUV EX5, 소형 SUV EX3, 총 3종이다. 이 모델들은 모두 베이징자동차의 독자 기술을 기반으로 제조됐으며 내년 국내 판매를 목표로 환경부 인증절차를 밟고 있다. BAIC 수입판매원인 북경모터스의 제임스 고 대표는 “베이징자동차그룹은 전기차 시장 리딩그룹으로서 글로벌 친환경 자동차 산업 성장을 위한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며 “전기차를 한국 시장에 선보여 중국 대표 전기차 브랜드의 가치와 기술력을 알리고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베이징자동차는 우선 가성비를 앞세울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자동차에 따르면 앞서 소개한 전기차들은 모두 60kWh 이상의 대용량 전기모터를 탑재해 출력이 우수하다. 또 1회 충전 시 최소 415㎞에서 최장 501㎞ 거리를 주행할 수 있다. 수치상으로는 국내 차종들보다 주요 성능이 앞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국내 인증이 완료되지 않아 실제 성능은 지켜봐야 한다. 가격 역시 3900만~4700만 원대로 책정해 국내 기업의 전기차와 비교해 가격경쟁력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비야디(BYD)도 한국 시장 진출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의 친환경 자동차업체가 우리나라에서 판매를 시작하면 국내 업체들로서는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 차량의 경우 현대차가 초창기부터 개발하고 상용화를 시도했는데, 글로벌시장에서 선점효과를 뺏기면서 지금은 오히려 밀리는 상황”이라며 “이런 와중에 중국의 전기차 브랜드가 가성비를 앞세워 우리나라 시장에 도전하면 국내 업체들은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일본차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올 초 15.2%에서 지난 4월 말 기준 21.5%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일본차가 시장점유율 20%를 넘어선 것은 9년 만이다. 업계에서는 BMW 차량 화재 논란과 폭스바겐 물량 부족 현상 등의 문제도 원인이지만, 일본 업체들의 하이브리드 차량 선전 때문인 것으로 분석한다. 실제 렉서스는 올해 1~4월 총 5639대를 판매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31% 상승한 것이다. 이 중 하이브리드차인 ES300h 모델은 3550대로 절반이 넘는 비중을 차지했다.
반면 현대차는 지난해 매출 96조 8126억 원으로,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2조 4222억 원을 기록, 전년 동기 4조 5747억 원 대비 47.05% 감소했다. 당기순이익 역시 1조 6450억 원으로 전년 4조 5464억 원에서 63.82%나 급락했다. 올해 들어서는 1분기 매출액 23조 9871억 원, 영업이익 8249억 원, 당기순이익 9538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6.9%와 21.1%, 30.4% 늘긴 했지만 미래 성장동력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해야 할 여지가 많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본사. 최준필 기자
베이징자동차가 우리나라 시장에 진출해 성공할지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도 적지 않다. 그 원인 중 하나로는 AS망을 꼽았다. 자동차업계 다른 관계자는 “자동차는 다른 제조품보다 많은 부품이 들어가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구매뿐 아니라 유지도 중요하다”며 “과거 중국 자동차 브랜드가 한국에 들어왔다가 사실상 철수한 이유는 전국적인 AS망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제품’이라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선입견을 극복하는 일도 관건으로 지적된다. 앞의 관계자는 “가성비는 말 그대로 가격 대비 품질이 좋다는 의미인데, 중국 제품의 질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깨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며 “안전성, 기술력, 내장재 등에 대한 국내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출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베이징자동차의 진출이 오히려 한국 자동차산업에 활력을 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베이징자동차는 자국에서 전기차 판매 성공 노하우가 있는 업체이며 가격경쟁력도 있는 만큼 초기에는 현대차에 위협이 될 것으로 본다”며 “현대차도 자극 받아 경쟁을 위한 투자와 개발을 강화하면, 한국 경제를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현대·기아차는 오는 2025년까지 전기차 23종을 포함해 친환경차 44종 출시를 목표로 세웠다. 이에 따라 2023년까지 전기차 전용플랫폼, 신차 개발 등에 총 3조 3000억 원을 투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대차는 베이징자동차가 우리나라 전기차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것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차의 하이브리드 차량이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다”며 “베이징자동차의 우리나라 시장 진출은 전기차 시장이 가장 큰 중국의 기업이기 때문에 의미 부여를 하는 것 같은데, 아직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