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이 오는 2030년까지 40조 원가량을 R&D 및 시설에 투자하고 11만 명의 고용을 창출한다는 투자계획을 내놨다. 서 회장은 지난 16일 이 같은 중장기 계획을 밝히며 “세계 1위 제약사인 화이자에 도전장을 낸다”고 밝혔다. 앞으로 10년 뒤 이익 면에서 다국적 제약사 1위인 화이자를 따라잡겠다는 것.
셀트리온의 대규모 투자계획 발표와 관련, 진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6일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인천시 남동구 인천시청에서 열린 ‘셀트리온그룹 비전 2030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자사의 비전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과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 사태 등으로 제약·바이오업계가 침체된 상황에서 서정진 회장의 대규모 투자계획 발표는 단숨에 주목을 끌었다. 셀트리온의 주가를 띄우기 위한 전략이라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서 회장의 발표 이후 증시 상황은 오히려 더 나빠졌다. 서 회장의 투자 발표 이튿날인 지난 17일 셀트리온 주가는 전날 대비 1000원 하락한 19만 5500원으로 장 마감했다. 20일에도 18만 8000원으로 전일 대비 3.84% 하락했다. 더구나 지난 20일에는 셀트리온헬스케어의 2대 주주인 원에쿼티파트너스가 보유 중인 지분 15.0% 가운데 4.5%에 대해 블록딜 매각에 나섰다.
대규모 투자 계획 발표가 오히려 주가를 하락시켰다는 분석도 나온다. 투자금 재원 확보 방안과 서 회장의 진정성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시장 불신을 낳았다는 것이다. 셀트리온, 셀트리온헬스케어, 셀트리온제약의 지난해 매출은 각각 9820억 7495만 원, 7134억 8740만 원, 1468억 8015만 원으로 3개 회사를 모두 합해도 연간 매출은 2조 원에 못 미친다. 서 회장이 ‘영업이익의 40%’를 투자하겠다고 했지만, 40조 원을 만들기에는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들의 중장기 투자 발표가 완벽히 실현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를 제기할 수는 없지만, 대규모 투자 발표를 할 때는 기업들도 내부에서 근거를 가지고 계획을 세운다”며 “연 매출 2조 원도 안 되는 기업이 재원 마련에 대한 근거 없이 4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것은 얼토당토 않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바이오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미래가치에 대해 언급하려면 과정에서 실적을 어느 정도 내줘야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셀트리온 측은 투자계획 발표는 앞으로 성장로드맵을 알리는 데 중점을 뒀다고 강조한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투자계획의 재원은 영업이익의 40%이고, 미래 성장성으로 판단하고 계산해 중장기 계획을 세운 것이므로 현재 매출이나 영업이익으로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셀트리온그룹의 매출이 앞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는 사람이 적다는 점도 서 회장의 투자계획에 의문을 품게 한다. 셀트리온의 대부분 매출은 셀트리온헬스케어를 상대로 발생한다. 셀트리온이 의약품을 생산·개발하면 글로벌 독점 판매권을 가진 셀트리온헬스케어가 셀트리온 제품을 구매해 판매하는 구조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기준 셀트리온헬스케어에만 7714억 원의 제품·용역 매출을 올렸다. 전체 매출액의 80% 규모다. 이 같은 사업구조 탓에 서정진 회장의 사익편취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기도 한다.
대규모 투자계획 발표 이후 주가가 하락세를 보이자 서 회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부 투자자들은 영화 ‘자전차왕엄복동’의 흥행 참패와 관련, 셀트리온이 최근 엔터사업과 IT사업 등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는 것에도 우려를 보낸다. 엔터사업과 IT사업의 지지부진도 대규모 투자계획의 실현 가능성에 의구심을 들게 한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셀트리온이 최근 매출 성장세를 보이자 서 회장이 과감하게 치고 나간 것 같은데 이것이 오히려 무리수가 되면서 주가에 악영향을 끼친 것 같다”며 “서 회장이 더 이상 ‘서정진의 셀트리온’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인보사 불똥에 바이오업계 ‘성장통’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사태에 이어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 사태까지 이어지며 제약·바이오업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업계에서는 자칫 인보사 사태의 ‘불똥’이 업계 전반으로 튀지 않을까, 염려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인보사 사태 탓에 당장 유전학적 계통검사인 STR검사가 의무화됐다. STR검사는 ‘인보사케이주’의 유전자가 뒤바뀐 것을 확인했던 검사다. 인보사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STR검사는 강제사항이 아니었다.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부처는 지난 22일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전략’을 발표하며 개발과 제조에 사용한 모든 세포에 대해 유전학적 계통 검사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업체들 입장에서는 기존 검사 이외의 비용이 들 뿐 아니라 아직 STR검사를 시행해보지 않은 곳도 많아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편으로는 최근 일련의 사태로 경각심을 갖게 됐으며 담당 부처 간 협업과 합의의 필요성이 강조된 점 등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이 예전부터 R&D 중심으로 흘러온 탓에 생산관리 부문에서 간과한 부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제는 엄연히 산업으로 인식되는 만큼 이 과정에서 인보사 사태가 혹독한 성장통이 됐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최근의 사태들로 기업들이 경각심을 갖게 됐고, 법적 가이드의 필요성도 확인돼 정부와 업계가 함께 규제개선과 지원 등을 해나갈 수 있게 됐다”며 긍정적인 면을 강조했다. 여다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