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취임해 22년간 재직했던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은 지난해 퇴직금을 포함해 연봉으로 456억 원을 챙겼다. 코오롱인더스트리에서 퇴직금 178억 원을 포함해 197억 원의 연봉을 받았다. 또 코오롱글로벌(93억 원), 코오롱글로텍(90억 원), 코오롱생명과학(43억 원), 코오롱(32억 원) 등에서 연봉과 퇴직금을 받았다.
대한항공은 최근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400억 원대 퇴직금을 지급했다. 퇴직금의 최고 2배가 한도인 위로금은 지급하지 않았다, 1분기 경영실적이 적자인데, 자칫 주주들에게 배임소송을 당할 수 있어서다. 퇴직금은 명백한 규정이 존재하는 만큼 배임 논란에서 자유롭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발인식이 엄수된 지난 4월 16일 서울 마포구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비롯한 유가족이 영결식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진그룹이 고 조 회장에게 400억 원대 퇴직금을 지급하면서 어떻게 쓰일지 관심을 모은다. 일요신문DB.
고 조 회장이 지난해 대한항공에서 받은 보수는 급여 27억 원, 성과급 4억 3000만 원이다. 급여에는 연간 한 차례 지급될 수 있는 업적급이 포함됐다. 퇴직금 산정의 기준이 된 순수 급여는 이보다 적을 수 있다. 조 회장은 1974년부터 대한항공에 재직해왔다. 45년의 재직기간을 감안하면 1년에 약 10억 원가량의 퇴직금이 산정된 셈이다.
한진그룹에서 가장 큰 회사인 대한항공은 올 1분기 1406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당기손실은 618억 원을 기록했다. 금융비용만 1600억 원에 달해서다. 400억 원대의 퇴직금은 2분기에 반영되지만, 최근 유가상승과 맞물려 상당한 재무적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고 조양호 회장은 대한항공 외에도 7곳의 계열사의 등기임원이다. 칼호텔네트워크에서는 미등기임원이지만 회장직을 맡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 설립된 한진칼과 진에어의 재직 기간은 각각 5년, 1년이지만 한국공항과 한진의 재직 기간은 38년, 18년에 달한다. 1년에 10억 원씩이면 600억 원이 넘는다. 여기에 정석기업(재직 27년), 한진관광(6년), 한진정보통신(26년)을 합하면 조 회장이 받을 퇴직금만 최대 1600억 원에 달할 수 있다. 다만 대한항공보다 규모가 작은 만큼 퇴직금 액수는 이보다 적을 가능성이 높다.
조 회장 지분 상속에 따를 상속세는 1700억 원가량이다. 사망자의 퇴직금은 피상속인이 수령할 수 있다. 물론 이때도 상속세가 부과된다. 피상속인이 손에 쥘 현금은 퇴직금의 절반가량이 될 듯하다. 최대 1600억 원으로 가정하면 상속받은 퇴직금으로 상속받을 주식의 상속세 절반가량을 충당할 수 있다. 조 회장이 지난해 5곳의 상장사에서 받은 보수만 107억 원이다. 상속세 분납은 5년에 걸쳐 가능하다. 조원태 회장이 앞으로 주요 계열사에서 겸임을 늘린다면 5년간 보수만 열심히 모아도 대부분 상속세를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셈이다.
롯데그룹도 신동빈 회장이 주요 계열사에서 모두 급여를 받고 있다. 사업보고서로 보수를 밝힌 곳들을 보면 롯데지주(6억 원), 롯데쇼핑(14억 원), 호텔롯데(15억 원), 롯데케미칼(21억 원), 롯데건설(6억 원), 롯데칠성음료(7억 원), 롯데제과(9억 원), 모두 78억 원이다.
신 회장은 일본롯데홀딩스가 지배하는 호텔롯데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 자금이 절실하다. 대부분 계열사에서 재직 기간이 상당한 만큼 향후 주요 계열사 퇴직금을 재원으로 호텔롯데 지분을 확보할 가능성도 있다.
총수 일가가 아닌 임직원은 여러 계열사 일을 맡아도 보수는 한 곳에서만 받는 게 보통이다. 석태수 부회장도 지난해 한진칼에서 5억 4000여만 원을 급여로 받았지만, 대한항공에서는 기록이 없다. 황각규 대표 등 롯데그룹 전문경영인들도 계열사 임원을 겸임하는 경우는 있지만, 기타비상무이사 신분이어서 별도의 급여를 받지 않는다.
롯데나 한진과 달리 최근 재계 최상위 기업집단을 이끄는 총수들은 이 같은 연봉조공을 지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별도의 보수를 받지 않는다. SK와 LG 등 지주체제인 그룹에서 최태원 회장과 구광모 회장은 지주사에서만 보수를 받는다. 현대차그룹도 정몽구 회장이 등기임원 겸직을 줄이고 있고,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현대차에서만 급여를 받고 있다. 해외에서도 최고경영자(CEO) 급여에 대한 주주들의 견제가 강화되는 추세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