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3일 대전대학교 한의예학과 재학생들의 성희롱을 고발하는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를 쓴 학생은 “한의예학과 남자 동기 8명으로 구성된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언어성폭력이 발생한 것을 알게 되어 고발하고자 한다”고 했다.
남학생들의 집단적 성희롱의 대상은 광범위했다. 동기와 선후배, 심지어 교수까지 가릴 것이 없었다. 대자보를 쓴 학생은 “수많은 증거들 속에서 동기, 후배, 선배, 교수님을 가릴 것 없이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모욕 및 성적 발언의 대상이 되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차마 기재하기 힘든 내용들이 많다. 공개하는 내용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험담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상습적으로 이뤄졌다. 가해자 A 씨가 “방금 ㅇㅇㅇ 가슴 손으로 5번 두드리던데 화병 있나”고 묻자 B 씨는 곧장 “애무, 셀프애무”라고 답변했다. 성폭력예방교육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문제를 일으킨 학생을 언급하며 “개XX들 때문에 이딴 것 들어야 하나”, “그 XX 지 잘못한 거 모름. 정준영 승리마냥 재수없게 걸렸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
대전대 한의학과에 붙은 대자보. 사진=제보자 제공
전공 지식을 이용한 성폭력 발언도 이어졌다. 가해자 C 씨가 피해자를 지칭하며 “ㅇㅇ아 검사해야 하니까 다리 벌려봐”라는 말로 성희롱을 시작하자 가해자 A 씨가 “회음(생식기와 항문 사이)에 침 놓으라고 하셨어”라고 받아쳤다. 이에 또 다른 학생이 “유침시간 45분”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이후에도 “A야, ㅇㅇ이 침 좀 놔줘”, “놓는 게 아니라 꽂으라고 하셨어. 초당 15회 염진에 5㎝ ‘재삽’하라고 하셨어” 등의 발언이 이어졌다. 재삽은 침을 꽂은 채로 두지 않고 살짝 뺐다가 다시 방향을 조금 바꿔서 찔러 넣는 침술의 일종이다.
한의원을 방문한 연예인도 희롱의 대상이 됐다. 가해자 C 씨가 “D 병원 한의사는 연예인 발목 만져봤다”고 하자 B 씨는 “난 감방 갈 각오하고 다른 곳도 만진다”며 해당 연예인의 회음에 부항을 놓겠다고 했다.
이 외에도 자신이 ‘학생대표가 되면 매일 아침 여학생들에게 바지를 벗은 채로 체조를 하도록 시키겠다’, ‘룸살롱을 가지 않으면 대표를 하지 않겠다’는 등의 발언도 이어졌다.
문제는 가해자들이 자신의 행동이 부적절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앞서 가해자 B 씨가 “연예인의 회음에 부항을 놓겠다”면서 “캠코더로 그 장면을 찍으면 몇 년 형이지?”하고 묻자 C 씨는 “그러면 제2의 정준영이 된다. 이 채팅방은 몰살”이라고 답했다.
채팅방에 없는 또 다른 남학생을 두고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우리 없으면 여자문제나 언행으로 난리 날 수도 있으니 (관계를) 잘라라”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언행의 부적절함을 알고 있는 발언이었다.
대자보를 작성한 학생은 “의료인은 고귀한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다른 집단보다 더 철저한 윤리의식이 필요하다. 이런 사람들이 졸업해서 한의사가 돼도 되냐?”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언어성폭력에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더 이상 동조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질 것을 촉구했다. 또 다른 한의학과 학생은 “아무리 사적인 대화 공간이라 하더라도 예비 의료인이 이 정도의 비윤리적인 언행을 한 것에 놀라운 뿐이다. 그런데 학과 내에서는 이 사건이 밖으로 퍼지면 안 된다며 조용히 마무리하려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대전대학교 학교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23일 대자보가 올라온 뒤에야 사건에 대해 파악하고 진상조사위를 열었다. 채팅방에 언급된 피해 학생들은 본 사건으로 학생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센터와 이야기도 없이 대자보를 붙인 것에 대해서 학교도 당황스럽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해자의 2차 피해 방지 및 신원 보호 원칙을 유지하면서 가해 학생과의 면담을 통해 문제 상황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학교 측에서 사건을 무마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조사 결과에 따라 가해자들을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학교 내 성희롱은 이번에 처음이 아니다. 앞서 3월 서울교대 국어교육과와 초등교육과에서 남학생들이 여러 해 동안 여학생들의 얼굴 사진을 책으로 만들어 성희롱을 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5월 14일 교육부는 전국 교대를 대상으로 특별 실태조사를 착수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예비 선생님’에 이어 ‘예비 한의사’들의 그릇된 성의식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일각에서는 교육부 실태조사가 교대뿐만 아니라 의대와 한의대 등 국민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학과에까지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