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수사의 핵심 키맨이었던 건설업자 윤중천 씨가 구속됐다. 지난 4월 구속 영장이 기각된 지 한 달여 만이다. 앞서 김학의 수사단이 6년 만에 김 전 차관을 구속한 데 이어 윤 씨마저 구속시키자 김학의 사건은 새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당장에 별장 성접대 수사가 단순 뇌물과 성접대가 아닌 성폭행 수사로 전환됐고, 핵심 공범인 두 사람 외에도 추가적인 공범이나 관련자들이 더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수사개입 등 권력 유착 비리수사로 확대될 것이란 관측마저 제기된다. 심지어 김 전 차관 윗선의 개입 여부에 대한 수사까지도 조심스레 언급되고 있다. 소위 ‘윤중천의 사람들’로 불리는 주변인들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김학의 사건’의 핵심 인물인 건설업자 윤중천씨(58)가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임준선 기자
앞서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 수사 권고 관련 수사단(단장 여환섭 검사장)은 지난달 윤 씨를 체포한 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및 알선수재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영장을 기각했다. 이에 수사단은 윤 씨를 아홉 차례 이상 불러 보강수사를 진행했다. 수사단은 마침내 윤 씨와 김 전 차관에 의해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이 씨에게서 피해 사실과 관련 진술, 진료기록 등을 확보했다. 또한 윤 씨와 내연관계였던 권 아무개 씨의 지난 2012년 맞고소 사건을 적용해 강간치상 및 무고 혐의로 구속영장을 받아냈다.
# 서울 특급호텔·역삼동 오피스텔서도 금품 향응 제공
과거 수사에서도 ‘별장 성접대 리스트’ 등 관련자들에 대한 의혹은 심심찮게 제기됐었다. 이번 윤 씨의 영장에도 이 씨를 포함한 여성들과 성관계를 맺은 의사와 사업가 등이 여럿 등장한다. 이들은 윤 씨의 강원도 별장에도 자주 출입하던 인물들로 알려졌다.
권 씨 수사 과정에서도 등장했던 전 병원장 A 씨는 2006~2008년 김 전 차관과 함께 윤 씨의 원주 별장 멤버다. A 씨는 김 전 차관을 2007년 2월 검사장급인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으로 승진시키기 위해 참여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해 도와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수사과정에서 윤 씨는 김 전 차관에게 승진을 위해 A 씨에게 황금열쇠 등을 전달하라며 현금을 건넸다고 진술했다.
A 씨는 정재계 VIP의 수술 등을 집도하면서 사회 고위인사들과의 인맥을 넓혔으며 윤 씨에게도 이를 제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권 씨의 진술에서도 윤 씨가 2011년 12월 중순과 말경 두 차례에 걸쳐 권 씨에게 A 씨에 대한 성접대를 강요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2013년 경찰 수사 당시엔 A 씨의 개별 성접대 의혹은 수사대상이 아니라고 결론지은 바 있다.
과거 수사자료 등에 따르면 윤 씨는 별장 외에도 서울의 특급호텔과 역삼동 오피스텔 등지에서도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각종 이권 등에 개입한 정황이 제기되는데 이 가운데에는 윤 씨가 A 씨의 병원사업에 개입해 수수료를 받은 정황도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임준선 기자.
또 윤 씨의 법조 인맥으로 알려진 변호사 B 씨도 주목을 받고 있다. B 씨는 앞서 언급된 권 씨와 윤 씨 간의 맞고소 사건에서 윤 씨 부부의 간통죄 고소 법률대리를 맡았다. 수사단은 윤 씨가 권 씨에게 빌린 21억 원가량을 갚지 않기 위해 부인과 공모해 권 씨를 간통 혐의로 무고한 것으로 판단했다. 윤 씨 부부가 B 씨가 몸담은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함께 고소장을 작성한 정황이 주효했다.
특히, B 씨는 부장 검사 시절 윤 씨 사건 수사를 맡아 무혐의 처분한 적도 있으며, 2012년 윤 씨가 성폭행 혐의로 체포될 당시, 윤 씨가 가장 먼저 전화를 한 인물로 알려졌다.
B 씨는 2011년 윤 씨의 횡령 혐의로 피소된 한방천하 사기 분양 사건에서도 법률 조력자로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윤 씨가 검찰 수사과정에서 한상대 당시 중앙지검장에게 진정서를 내고 수사관이 검사로 교체된 뒤 무혐의 처분을 받았을 때에도 B 씨가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권 씨는 경찰조사에서 윤 씨가 B 씨에게 사건을 소개해 주고 수수료를 받았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B 씨가 윤 씨 측근 최 아무개 씨의 민사 사건을 맡은 사실도 눈길을 끈다. 최 씨는 수사 당시 윤 씨가 B 씨를 ‘형제 같은 변호사’라고 소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윤 씨는 자신의 지인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동영상이 공개되면 정관계 인사 여럿이 다친다는 말을 자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 전 차관은 그 중 일부일 뿐이라는 의미다. 별장을 드나들었던 유력인사만도 고위 공무원부터 법조계 인사, 정치인, 사업가, 병원장, 장성, 대학교수 등 워낙 많아 정확한 파악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2013년 경찰이 윤 씨의 별장을 압수수색할 당시 별장에서 고위 법조계 인사들의 명함을 발견하기도 했다. 또한 경찰조사에서 윤 씨의 운전기사 박 아무개 씨가 전 고검장인 C 씨를 지목하기도 했다. 반면 C 씨는 사실무근이라며 전면부인했다. 또 경찰조사를 통해 드러난 별장 성접대 리스트에는 대형건설업체 임원 D 씨, 충주의 건설업자 E 씨, 대학교수 F 씨, 피부과의원 원장 G 씨 그리고 기업인 H 씨 등이 김 전 차관과 함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 씨는 이 사건 이전부터 화려한 인맥을 자랑했다. 자신이 시행한 복합상가 착공식에 유명 연예인은 물론 지역 국회의원과 정치인들이 참석했다. 또한 자신이 매매한 땅 값보다 비싸게 저축은행으로부터 수백억대 대출을 받아 화제가 된 바 있다. 경찰청 교육원 골프장 등 윤 씨가 연관된 건설회사가 수백억 원의 공사를 수주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윤 씨의 로비와 함께 윤중천의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이다.
2013년 검찰 수사 당시 성접대 의혹 관련자만 64명으로 무려 140회 조사를 했지만 김 전 차관의 성접대 의혹과 마찬가지로 관련자에 대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대부분의 뇌물죄 적용 사안도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다뤄지지 않았다. 현재 여론은 거세다. 피해여성을 비롯한 여성단체 등 시민단체는 철저한 진실규명과 함께 유력인사에 대한 수사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선 ‘윤중천 게이트’와 ‘김학의 수사’는 지금부터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
‘별장 성폭행’ 세상에 알린 여성들 “영상속 여성이 나” 피해여성들은 김학의 사건을 있게 한 장본인이다. 별장 성접대 동영상 사건이 처음 세간에 알려진 것도, 과거사위 재수사를 이끌어낸 것도, 이번 윤 씨의 구속은 말할 나위도 없다. 먼저 이 씨는 윤 씨가 2006~2008년께 자신을 지속적으로 폭행·협박하고, 김 전 차관 등 지인들과의 성관계를 강요했다고 주장한다. 2007년 11월 윤 씨와 김 전 차관이 함께 이 씨를 성폭행했다는 혐의 등에서 이 씨는 윤 씨와 김 전 차관의 직접적인 피해자로 인정되고 있다. 이 씨는 2013년 성접대 사건이 무혐의로 결론나자 이듬해인 2014년 7월 “영상에 등장하는 여성이 나”라고 주장하며 재수사를 요구하는 고소장을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하기도 했다. 당시 1차 수사 때 무혐의 처분을 내렸던 검사가 재수사팀에 포함되자 이 씨가 검사교체를 요구하고 나서는 등 논란이 있었다. 그럼에도 2015년 1월 김 전 차관은 무혐의 처분됐다. 두 번의 재수사를 이끌어낸 이 씨야말로 윤 씨와 김 전 차관에겐 야속한 사람일 듯하다. 권 씨는 김 전 차관과는 무관하다. 다만 2013년 윤 씨에게 21억 원가량을 뜯겼다며 권 씨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윤 씨의 별장 성접대와 이른바 ‘김학의 동영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권 씨가 리스해 윤 씨가 몰고 다니던 벤츠차량에서 발견된 이 동영상으로 인해 2013년 김 전 차관이 낙마하고 수사를 받게 됐다. 사실상 현재 김학의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수사단 역시 권 씨와 윤 씨의 과거 맞고소 사건 등을 통해 수사대상을 확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 씨와 권 씨 등 윤 씨에게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여성들 모두 윤 씨가 뇌물과 성접대를 통해 사회 유력인사와 관계를 유지, 관리해왔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서동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