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간 지속됐던 대구의 집창촌 자갈마당 일대에는 그만큼이나 긴 역사를 가진 유착 의혹이 남아 있었다. 성매매 업소가 즐비한 자갈마당은 사실상 무법지대였다. 폭행, 추행이 일어나도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자갈마당을 지키는 사람은 이 구역의 조폭이었다. 동네의 규칙이나 업소별 영업 방향, 심지어 개인건물 증축까지 조폭의 허락 없이는 이뤄질 수 없었다.
시키는 대로, 빼앗는 대로 당해오던 자갈마당 주민 70여 명은 참다못해 폭발했다. 주민들은 ‘자갈마당 이주대책 위원회’라는 단체명으로 5월 14일 대구지방경찰청에 경찰 비리내역을 작성한 진정서를 제출했다. 진정서에는 경찰 10명에 대한 개별 비리 내용이 구체적으로 적혀있다. 위원회 관계자들은 “경찰의 비리를 낱낱이 밝혀 철저하게 수사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비리고발 내용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자 대구지방경찰청은 특별조사팀을 꾸려 경찰 유착 비리 수사에 돌입했다.
자갈마당 이주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대구지방경찰청에 ‘경찰 유착 의혹’ 명단이 담긴 진정서를 제출했다. 연합뉴스
진정서에서 제기된 의혹 가운데에는 A 씨의 기막힌 사연이 눈길을 끌었다. A 씨는 경찰들이 여럿 있는 경찰서에서 폭행을 당했지만 도리어 성추행범으로 무고당한 억울함을 토로했다. A 씨는 한동네에 살며 지내던 조폭 두목 B 씨로부터 성매매 신고를 강요 받았다고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성매매 업소 관계자 서 아무개 씨를 혼내주기 위해 A 씨에게 ‘네가 성매매 신고를 해 괴롭혀주라’는 내용이었다. A 씨는 2016년 3월 자신이 성매매를 했다며 자진신고했다. 경찰이 임의동행을 요구해 A 씨는 지구대로 갔다.
A 씨가 성매매 자수서를 쓰고 있는데, B 씨가 지구대로 들어왔다. 지구대 경찰들은 일제히 “회장님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를 올렸다. 돌연 B 씨는 A 씨를 끌고 나와 그 자리에서 폭행했다. B 씨의 강요로 경찰서에 와서 자수서를 쓰고 있는 와중에 돌연 B 씨에게 폭행을 당한 것. A 씨는 아직도 당시 B 씨가 자신을 왜 때렸는지를 모르겠다고 한다.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폭행을 당했지만, 지구대 경찰들은 이를 저지하기는커녕 못 본 체했다. 2016년 3월 지구대에서 이뤄진 이 폭행은 사건의 서막이었다.
대구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구대 내의 폭행사건을 인지해 수사에 돌입했다. 억울했던 A 씨는 조사를 받으면 자신의 억울함이 풀릴 것으로 믿었다. 수사에도 적극 협조했다. 그런데 자신이 경찰 조사를 받은 내용은 금세 B 씨에게 흘러들어갔다. 가해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A 씨는 2016년 4월 다시 폭력사건을 신고했다.
하지만 2016년 4월 중순 A 씨는 도리어 피의자가 돼 경찰의 부름을 받았다. 죄목은 강제추행, 공갈 등 8개 혐의였다. A 씨에 따르면 그가 동네의 할머니를 도운 게 화근이 됐다. A 씨는 비오던 날 밤 귀갓길에 할머니가 빗속에 쓰러져 있는 걸 발견했다. 어렵게 지내는 할머니의 사정을 알던 A 씨는 입고 있던 옷을 벗어주고, 집에 가시라고 돈 1만 원을 쥐어 드렸다. 혹시 몰라 119에 신고도 했다. 선의에서 도움을 베푼 것이 A 씨를 옭아맸다. 순식간에 할머니를 강제추행하고 주변 업소에 공갈을 친 범죄자가 됐다.
억울함에 A 씨는 관내 경찰서에 항의 차 방문을 했다. 담당 경찰은 도리어 “B 씨에게 사과하라”고 종용했다. 황당했지만 두려운 마음에 A 씨는 모처의 카페에서 B 씨를 만나 꿇어앉아 빌었다. B 씨는 폭력신고를 철회하면 추행과 공갈 사건을 없애주겠다고 제안했다. A 씨는 어쩔 수 없이 폭력 신고를 철회했다. 대구중부경찰서 담당 팀장과 수사관은 이미 작성해 출력한 합의서와 사건철회서를 내밀며 A 씨에게 서명하라고 종용했다.
A 씨는 “조카들까지 거둬야 하는 가정사 때문에 어쩔 수없이 맞고도 빌 수밖에 없었다”며 “조폭과 선후배 사이로 지내던 경찰이 내가 맞는 걸 보고도 모른 체하고, 함정을 파서 압박하는 데 동조했다. 사건 합의서를 피해자인 나를 배제하고 가해자와 경찰이 쓰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강제추행 피해자로 나섰던 80대 할머니 측도 당시 B 씨의 강요 때문에 사건을 꾸며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또 경찰의 조사과정도 조금 이상했다고 한다. 할머니 가족 측은 “당시 B 씨 건물에서 일하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경찰에게 꾸며 말했다”며 “억지로 피해를 진술하는데 담당 형사가 과장되게 B 씨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술서를 작성했다. 당시 팀장은 옆에 서서 그걸 지켜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경찰과 그 직속 팀장은 승승장구했다. 담당 경찰은 제기된 의혹에 대해 “피해자 A 씨와 조폭 B 씨를 잘 알지 못한다. 둘 사이의 사건에 대해서도 난 모르는 사건”이라며 대화를 회피했다. 재차 연락을 취했으나 더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A 씨의 주장에 대해 대구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일부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 지구대 당시 근무자 중에는 B 씨에게 인사를 한 사람이 없고, B 씨가 동네 유명한 조폭인지도 몰랐다”며 “폭행은 A 씨가 자수서 작성을 마무리하고 지구대 문 밖을 나선 다음 이뤄진 일이라 이를 본 사람이 없고, 경찰이 이를 챙겨 볼 관리의무가 없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성매매 집결지 대구 중구 도원동 ‘자갈마당’에서 경찰의 묵인 아래 성매매 영업이 이뤄지던 2013년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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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수십 년 동안 조폭 앞잡이 행세를 하고, 나아가 조폭 두목을 회장님으로 모셨다. 이 때문에 대구 경찰사회에서는 자갈마당 업주들이 제출한 진정서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갔는지 관심이 컸다.
자갈마당 업주들은 체계적이고 주기적으로 경찰에 상납을 해왔다. 상인들은 자갈마당 조합에 가입해 매달 정기부금을 납부했다. 1인 당 조합 가입비는 500만~1000만 원, 월 회비는 수십만~100만 원 선이었다. 조합원들에 따르면 조합비 중 매달 수백만 원이 경찰 상납금으로 사용됐다. 경찰의 날 등 특별한 날에는 수백만 원 등 목돈을 갹출하기도 했다. 대부분 조합위원장이나 조합 임원들이 경찰에 돈을 전달했다.
수법도 다양했다. 먼저 차량을 이용한 방법이다. 뇌물공여자가 늦은 시각 으슥한 골목에 차를 대고 있으면 경찰이 차량 뒷좌석에 탄다. 운전석에 앉은 사람이 봉투를 뒷좌석 쪽으로 떨어뜨리면 경찰이 봉투를 갖고 내린다. 보다 신뢰가 쌓인 관계에서는 가게를 이용하기도 한다. 자갈마당 인근 한 상점에 봉투를 맡겨놓으면 형사가 추후 봉투를 회수해 가는 방법이다.
전직 형사 중에는 직접 자갈마당에서 성매매 업소를 운영한 사람도 있다. 게다가 집창촌 노름판에서 이른바 ‘꽁지’라 불리는 사채놀이를 하기도 했다. 자갈마당 지역 주민들은 입을 모아 “경찰과 조폭이 한 패”라고 말했다.
대구지방경찰청은 현재 경찰유착과 조폭 사건을 수사 중이다. 10인으로 구성된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조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좁은 지역사회에서 경찰이 조직 내부 수사를 제대로 하기는 쉽지 않다는 비판이 거세다. 지금도 밖에서는 전방위로 증거인멸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더 큰 비난이 나온다. 조폭과 그 잔당들은 피해자들에게 연락해 과거 저질렀던 폭행과 비리 사건을 뒷수습하고, 경찰수사 내용을 파악하려고 하는 정황이 포착됐다.
심지어 수사에 협조하기 위해 조사를 받으러 갔던 시민들은 경찰청에서 과거 조폭과 유착관계에 있던 경찰을 마주치고 담당수사관을 바꿔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조폭 유착 의혹을 받는 경찰들은 대부분 현직에서 그대로 일하고 있다. 주민들은 “빨리 통신기록을 확보하거나 구속수사를 하면 좋겠는데 자꾸 증거 인멸하고 사람들 입단속시키는 걸 들으니 불안하다”고 말했다.
대구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입장만 짧게 밝혔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