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도원동 성매매집결지 자갈마당의 모습. 금재은 기자
5월 22일 찾은 자갈마당은 철거작업이 한창이다. 거리에는 단층이나 2층으로 이뤄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건물에 매달린 간판만 봐도 과거 성매매 업소로 사용되었던 공간임을 짐작할 수 있다. ‘러브 스토리 나인틴’ ‘청풍정70호’ 등과 같은 간판이 남아 있다. 업소마다 호수를 달고 있는 것도 여느 성매매 집결지와 비슷한 모습이다.
대부분의 건물에서 내부의 짐을 밖에다 쌓아놓은 뒤 안을 다 부숴놨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라곤 밖에 쌓아놓은 누렇게 때 탄 침대 매트리스 여러 채와 가구로 짐작할 뿐이다. 업소가 늘어선 건물 사이에는 ‘재활대책 없는 행정당국은 반성하라’는 플래카드와 ‘자갈마당 자활지원 신청’ 등의 포스터가 붙어있다.
자갈마당에는 건물을 철거하는 인부, 정비업체에서 고용한 경비원 외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문을 연 곳은 매점뿐이다. 매점 주인은 “길 건너 상가에 ‘도원동 재개발추진위원회’ 사무실에 가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곤 황급히 매점 문을 닫았다.
대구 성매매집결지 자갈마당은 거의 모두 허물어졌다. 금재은 기자
재개발추진위원회 사무실에서 드디어 자갈마당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주민들은 건물주, 업소 운영자, 현관이모 등으로 다양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성매매업소를 운영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세입자다. 포주 역시 세입자가 대부분이고 성매매 여성들은 프리랜서 식으로 돈을 번다. ‘현관이모’는 중년 여성들로 성매매업소의 호객행위를 맡는다. 포주가 수익의 45%, 성매매여성이 45% 현관이모가 10%를 가지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하지만 자갈마당이 영업을 마친 지금 이들은 갈 곳도, 돈도 없다.
주민 김 아무개 씨는 “수십 년간 여기서 돈을 벌었지만 집도, 재산도 다 빼앗겼다. 결국 빈털터리라 갈 곳이 없어 일단 셔터 내린 업소 안에서 살고 있다. 60이 넘은 나이에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씨는 자갈마당 구역의 왕으로 군림하는 조폭에게 15억 원을 갈취당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억지로 도박을 강요당했다. 하루에 200만 원을 잃기도 했다. 글을 읽지 못하는 김 씨는 셈도 빠르지 않아 화투판에서 돈을 따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도 억지로 도박판에 앉아야 했다. 그러지 않는 날엔 차마 입에 담지 못하는 욕설을 듣고 장사를 하지 못하게 방해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사람들은 각종 명목으로 돈을 빼앗겼다. 김 씨는 한 달에 1150만 원을 내야 하는 의무 ‘계’도 들어야 했다. 주민들은 각자 액수만 다르지 조폭에게 돈을 빌려서라도 강제로 계에 들었다. 조폭은 계금을 붓지 않고도 곗돈을 타가는 방식이었다.
월 이자 1부를 줬다는 김 씨의 빚은 계속 쌓였다. 결국 부모님 집, 자녀 명의의 땅, 남편의 사망보험금까지 빼앗겼다. 하루는 김 씨의 노모가 소천해 상을 치르는 중에 조폭무리 세 명이 상가를 찾았다. 이들은 빈 봉투 세 장을 부의금으로 냈다. 조폭은 부의금을 빚에서 깐다고 했다. 김 씨는 모친상을 당했던 때를 떠올리며 잠깐 눈물을 흘렸다.
현관이모로 일해 온 한 여성도 사정이 비슷했다. 평생을 일해도 결국 무일푼으로 갈 곳이 없다는 것. 이들은 목소리를 높여 수십 년간 자신들을 착취해온 악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다 갑자기 창밖을 내다보곤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인적 드문 동네에 검은 외제차 한 대가 서 있었다.
김 씨는 “저 외제차가 조폭 조카 차인데 우리 여기 있는 거 알고 감시하러 온 모양”이라며 “저 차가 갈 때까지 건물 밖으로 나가선 안 된다”고 말했다. 나머지 사람들도 “그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떨리고 불안하다”며 가슴을 두드렸다.
30분간 창밖을 내다보며 망을 보던 주민들은 차가 떠난 뒤 쏜살같이 사라졌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