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자회견 때 경인방송의 김예령 기자는 문 대통령에게 “현재의 경제기조를 바꾸지 않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냐”고 물었다. 정부가 추진하는 최저임금인상, 주52시간 근무제 등이 경기침체의 원인이라는 평가에 대통령이 아랑곳하지 않는 이유를 따진 것이다.
KBS 송현정 기자는 일부 야당에서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방식과 관련, ‘독재자’라고 공격하는 것에 대한 대통령의 견해를 물었다.
기자라면 당연히 물어야 할 질문이었고, 묻는 태도에서 예의상 문제될 것은 없었다. 문 대통령은 김 기자의 질문에는 다른 질문에서 답변을 했다면서 넘어갔으나, 송 기자의 질문에는 내심 기다렸던 질문이라는 듯이 제법 길게 답변했다.
문 대통령의 대응이 차분했던 것과는 달리 지지자들은 기자가 문 대통령을 ‘고집불통’이나 ‘독재자’로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벌떼 같이 달려들어 공격을 가했다. 그들의 행동을 비판한 자유한국당 나경원 대표의 ‘달창’ 발언은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나 대표조차 뜻도 모른 채 한 발언이라고 사과했지만, 필자 또한 ‘달창’이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를 비하하는 뜻의 ‘달빛창녀단’의 준말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나 대표는 한동안 문 대통령 지지자의 또 다른 별칭인 이른바 ‘문빠’들의 역공에 시달렸다.
‘독재자’ 논란은 문 대통령 스스로에 의해 확대재생산 되기도 했다. 5·18 39주년 기념사에서 5·18을 비하하는 세력을 가리켜 ‘독재자 후예’라고 했다. 이에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진짜 독재자의 후예인 북한의 김정은에게 해야 할 말을 왜 엉뚱한 사람들에게 하느냐고 했다.
이런 정치 공방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청와대 기자회견이 문재인 정부 들어 진화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과거의 기자회견은 사전에 질문지를 제출하고 질문순서를 정하는 형식적인 일문일답에다, 질문이라기보다 아첨성 발언으로 국민의 눈총을 사는 일이 많았다.
대통령을 상대로 한 기자회견의 전형은 미국 백악관 기자회견이다. 언론의 자유가 아니라 퇴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백악관 기자회견에선 대통령과 기자 사이에 거친 말들이 오고간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특히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과 CNN방송의 백악관 출입기자인 짐 아코스트 기자와의 언쟁은 거의 말로 하는 멱살잡이 수준이다. 기자는 대통령의 아픈 곳을 찌르는 질문을 퍼붓고, 대통령은 기자에게 ‘가짜 뉴스’ ‘국민의 적’이라고 응수한다.
백악관 기자회견은 그래서 긴박감 넘치는 드라마 같다. 지난 2013년 93세로 타계한 UPI통신의 여기자 헬렌 토마스는 이 드라마의 전설적인 주인공 중의 하나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대통령들을 긴장하게 했던 기자”라고 애도했다. 50년 동안 백악관을 출입하며 10명의 대통령을 취재한 그녀가 남긴 대표적인 명언이다.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은 없다”
임종건 언론인·전 서울경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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