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두 조직이 약점으로 잡힌 사건들이 ‘모두 예민한 곳’이라는 부분이다. 특히 검찰의 경우 수사 시작이 내부 검사에서 비롯된 것이 뼈아프다. “사건 잘잘못을 떠나, 조직 내 단속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기도 하다.
# 전 검찰총장 제대로 발목 잡힌 검찰
검찰이 경찰에 잡힌 약점은 ‘내부사건’이다. 현직 금융 고위 관계자의 딸인 A 전 검사는 지난 2015년 부산지검에 근무하면서 ‘사고’를 쳤다. 고소인이 낸 고소장을 분실하자 실무관을 시켜 고소인이 이전에 제출한 다른 사건 고소장을 복사하고, 고소장 표지를 만든 뒤 상급자 도장을 임의로 찍어 위조한 것. 명백한 공문서 위조였다.
하지만 검찰은 징계를 하지 않았다. A 전 검사는 논란이 불거지자 사표를 제출했는데, 검찰 내부가 ‘뒤숭숭’했음에도, 검찰 수뇌부는 별도 징계나 감찰 없이 A 씨의 사표를 수리했다. 이를 두고 ‘제 식구 감싸기’ 비판이 일자 검찰은 사건 발생 2년 만인 지난해 10월 A 씨를 공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검찰은 최근 결심 공판에서 A 전 검사에 대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문제는 A 전 검사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고위 금융 관계자의 자녀라는 점. 실세의 자녀인데다가, 말도 안 되는 명백한 실수인데도 ‘쉬쉬하려고 한다’는 얘기가 검찰 내에서 공공연했다. 당시 한 여검사는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사건인데, 당시 징계조차 없이 그냥 사표를 처리해줬고 논란이 불거지는 것을 막으려는 분위기가 있어 검사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던 사건”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이임식 당시의 김수남 전 검찰총장. 임준선 기자
그리고 이 사건은 결국 4년여의 시간이 흘러서야,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경찰에 약점으로 잡혔다. 2015년 당시 검찰 수뇌부 전·현직 검찰 고위 인사들이 부하 검사의 공문서 위조 사실 관련 징계를 미룬 채 묵인한 혐의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이 겨누고 있는 고위공직자는 4명. 김수남 전 검찰총장과 김주현 전 대검찰청 차장, 황철규 부산고검장, 조기룡 청주지검 차장 등이다. 이들 4명이 이를 쉬쉬하며 징계를 하지 않았다는 직무유기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측은 강제 수사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고발인 조사도 하지 않은 5월 21일, 이례적으로 “김 전 총장을 포함해 이 일로 고발된 전·현직 검찰 간부 4명이 소환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강제수사에 나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 청장은 “이들이 수사에 성실히 임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법적 절차는 차별 없이 적용돼야 하고, 임의적 방법으로 안 될 경우 여러 강제수사 절차가 있는 만큼 그에 따라 처리해나갈 것”이라며 체포영장 신청 가능성도 언급했다.
# 경찰 향해 ‘여러 칼날’ 준비한 검찰
하지만 규모의 차이 때문일까. 상대 조직을 겨눈 칼날이 더 많은 것은 검찰이다. 경찰이 김수남 전 검찰총장을 겨누고 있다면, 검찰은 원경환 현 서울경찰청장과 강신명 전 경찰청장, 이철성 전 경찰청장 등을 수사 중이거나 선상에 올려놓고 있다.
이 가운데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친박계를 위한 선거정보를 수집한 혐의 등으로 이미 구속이 됐고, 당시 지시를 받았던 이철성 전 청장도 구속영장이 청구됐다가 기각되는 등 기소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원경환 서울경찰청장은 뇌물 수수 의혹을 받고 있다. ‘함바(건설 현장 식당) 비리’로 유죄를 선고받은 브로커 유상봉 씨가 2009년 당시 경찰서장이었던 원경환 현 서울경찰청장에게 뇌물을 줬다는 취지의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한 것.
원경환 서울경찰청장. 연합뉴스
‘함바 비리’는 지난 2010년 유 씨 측이 정·관계 유력 인사들에게 공사 현장 민원 해결과 경찰관 인사 청탁 등 명목으로 뇌물을 제공한 사건으로, 당시 강희락 전 경찰청장이 유 씨에게서 1억 9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3년6월을 선고받는 등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됐던 사건이다. 그런 유 씨가 원경환 청장을 언급한 것.
원 청장은 5월 27일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유 씨 진정에 대해 “지난주 (무고죄로 유 씨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했다는 것으로 갈음할 수 있다. 수사 결과를 보시면 알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잡음’ 자체가 불리하다는 평이다.
검찰 출신의 법조인은 “이미 청와대나 여권의 검찰 개혁 의지는 막강하지만, 이런 사건들이 중요한 것은 흐름에 따라 ‘여론’이 바뀔 수 있다는 점”이라며 “아직까지는 두 사건 모두 큰 영향을 주지 않겠지만, 향후 검경 수사권 조정이 구체화되면 검찰과 경찰 모두 내부 판단을 통해 사건을 더 키우려고 할 것이고 여러 사건으로 엮여 있는 경찰이 더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 경찰도, 검찰도 내부 단속이 관건
검찰과 경찰 수뇌부의 고민은 이제 내부 단속이다. 내부에서 터지는 폭로는 더 뼈아프기 때문. 내부적으로 ‘자기 조직’을 비판하는 글이 올라오는 것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공격의 빌미가 될 수밖에 없다.
실제 5월 12일 오후, 경찰 업무용 포털 ‘폴넷’에는 손석희 JTBC 대표 사건에 대해 배임 혐의를 무혐의로 처분한 것을 놓고 내부 비판 글이 올라왔다. 충남의 경찰서 소속 B 경위는 ‘검찰에 보기 좋게 퇴짜 맞은 경찰의 수사력’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손석희 사건에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출신의 변호사가 경찰 앞마당에 똬리 틀고 들어앉아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하는 현실을 보며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경찰 수사의 공정성 시비를 차단하려 외부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할 상대가 민변 출신 변호사 외에는 없었느냐. 이런 사건 하나 자주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는데, 수사권 가져온다고 또 다시 민변에 물어보고 의견 구해 처리하지 말라는 보장이 있느냐”고 비판했다.
앞서 손 대표는 지난 1월 10일 서울 마포구 한 일식집에서 프리랜서 기자 김 아무개 씨를 폭행한 혐의로 고소됐는데, 김 씨가 공개한 손 대표와의 문자메시지 등에 김 씨에게 투자·용역 계약을 약속하는 내용이 담겨있어 배임 의혹도 불거졌다. 사건을 맡은 마포서는 “폭행 혐의는 있지만, 배임 혐의는 무혐의 처리하는 것이 법리에 맞는다”는 취지로 결론을 냈다가 검찰에서 “수사가 전반적으로 부실해 수사를 보완해라”라며 재수사 지시를 받아야 했다.
임은정 검사. 페이스북 캡처.
반대로 검찰 수뇌부는 ‘스타 검사’들이 부담스럽다. 앞서 김수남 전 총장을 고발한 것도 임은정 충주지검 부장검사가 대표적이다.
임 부장검사는 지난달 19일 김 전 총장 등 4명에 대해 서울지방경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했는데, 이보다 앞선 지난해 5월에도 김수남·김진태 두 전 검찰총장 등을 검찰 내 성폭력 의혹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감찰까지 무마했다며 직권남용과 직무유기로 고발하기도 했다.
문무일 총장에 대한 고발 의지도 드러낸 바 있다. 임은정 청주지검 충주지청 부장검사가 5월 16일 자신의 SNS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가 도입되는 대로 ‘제 식구 감싸기’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과 징계요구를 거부한 문무일 총장 등 현 감찰 담당자들에 대한 직무유기 고발장을 제출할 각오”라고 글을 올렸다.
상당수 검사들은 임 부장검사에 동의하지 않지만, 임 부장검사를 따르는 검사들도 적지 않다는 게 검찰 수뇌부의 고민이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임 부장검사를 아는 사람들은 문제가 없지만, 검찰 조직이 워낙 10%의 핵심 인재들만 요직을 순환하고 나머지 검사들은 비 핵심 형사부서에서만 근무를 하는 구조이다 보니 임 부장검사 말을 다 믿는 검사들도 있다더라”며 “결국 내부를 잘 단속해서, 한 목소리로 조직의 힘을 뺏기지 않기 위해 싸우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임은정 검사의 존재는 누가 봐도 검찰에 불리하다”고 평가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