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들어 눈부신 호투를 이어가고 있는 ‘타이거즈의 심장’ 양현종. 사진=연합뉴스
[일요신문] KIA 타이거즈의 심장이 다시 뛴다. 시즌 초반 부진의 늪에 빠졌던 ‘안경 에이스’ 양현종이 제 기량을 되찾았다.
최근 야구팬 두 명 이상이 모이면,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메이저리그에서 맹활약 중인 코리안 메이저리거 류현진(LA 다저스) 이야기다. 류현진은 5월(28일 기준) 등판한 5경기에서 4승 평균자책 0.71 무결점 투구를 선보였다. 그야말로 ‘불타는 5월’을 보내고 있는 류현진이다.
KBO리그에도 류현진처럼 불타는 5월을 보내고 있는 좌완투수가 있다. 바로 KIA 타이거즈 양현종이다. 양현종은 5월 5경기에 선발 등판해 35이닝을 소화하며 3승 2패 평균자책 0.77을 기록 중이다. 양현종은 5월 등판한 5경기에서 모두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기록했다. 그야말로 ‘KBO 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에이스’란 이름값에 걸맞은 활약이다.
KIA 타이거즈 선발투수 양현종. 사진=연합뉴스
5월 전까지만 해도, 양현종의 행보는 불안하기 그지 없었다. 3월부터 4월까지 6차례 선발 등판한 양현종은 승리 없이 5패를 기록했다. 이 기간 양현종의 평균자책은 무려 8.01까지 치솟았다. 이는 4월 30일 기준 KBO 리그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가운데 가장 높은 평균자책이었다.
이에 양현종을 향한 우려의 목소리는 커져만 갔다. “그간 양현종을 너무 혹사한 것 아니냐”는 혹사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혹사설이 제기될 만한 근거는 충분했다. 양현종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시즌 연속 170이닝 이상을 소화했다. 5시즌 동안 양현종이 소화한 이닝은 무려 933.2이닝이다. 5시즌 동안 KBO 리그에서 최다 이닝을 소화한 투수가 바로 양현종이었다.
야구계 일각에선 “혹사와 더불어 ‘에이징 커브’에 따라 양현종의 기량이 하락세에 접어들었을 수 있다”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기도 했다.
기록으로 보는 양현종의 5월 반등. 자료=스탯티즈
하지만 양현종은 스스로 자신의 기량이 떨어지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 5월 양현종의 눈부신 투구 내용은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흥미로운 대목은 4월과 5월 사이 양현종의 구속과 삼진/볼넷 비율 등 세부수치에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양현종이 5월에 극적 반등한 비결은 무엇일까. 야구 관계자들은 그 이유를 ‘투구 밸런스’에서 찾았다.
KBO 리그 투수 출신 야구 관계자는 “양현종의 투구가 좋았을 때로 돌아온 것 같다. 4월까진 뭔가 ‘급하다’는 인상을 주는 투구가 이어졌다. 투구 동작에 힘이 많이 들어간 모양새였다. 양현종이 좋은 성적을 거둘 때는 공을 쉽게쉽게 던진다는 느낌이 든다. 5월부터는 양현종이 투구 동작에서 ‘매끄러움’을 되찾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누가 뭐라해도 양현종은 호랑이 군단의 핵심 전력이다. 에이스의 성적은 선수단 사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양현종이 상승세를 탄 시점부터 호랑이 군단은 서서히 반등의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박흥식 감독대행이 KIA 지휘봉을 잡은 뒤 양현종은 두 경기에서 15이닝 1실점 비자책 완벽투를 펼쳤다. 사진=연합뉴스
특히 김기태 전 감독이 자진사임한 뒤 KIA의 상승세는 놀랍다. KIA는 박흥식 감독대행이 지휘봉을 잡은 5월 17일부터 열린 9경기에서 8승 1패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올리고 있다. 그 중심엔 양현종이 있었다. 이 기간 양현종은 두 차례 선발 등판에서 15이닝 1실점(비자책) 완벽투를 펼치며 2승을 쓸어 담았다.
양현종의 부활은 KIA 마운드에 엄청난 호재다. ‘양현종의 건재함’으로부터 발생하는 KIA 마운드 시너지 효과는 상상 그 이상이다.
‘일요신문’ 취재에 응한 한 야구인은 “양현종이 연일 호투를 펼치면서 양현종-제이콥 터너-조 윌랜드로 이어지는 KIA의 ‘원 투 쓰리펀치’는 다른 팀에 비해 절대 밀리지 않는 힘을 갖추게 됐다. 양현종이 꾸준히 제 몫을 한다면, 자연스럽게 KIA 4·5선발의 심적 부담도 줄어들게 된다. 결국 KIA의 안정적인 선발진 운영의 열쇠는 양현종이 쥐고 있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양현종의 맹활약으로 KIA 선발진은 안정감을 되찾았다. 이뿐 아니다. 양현종의 쾌투는 불펜진에도 큰 힘이 된다. 양현종의 이닝 소화능력이 빛을 발할수록 고영창-전상현-하준영-문경찬으로 이어지는 ‘젊은 필승조’의 부담은 그만큼 줄어든다.
KBO 리그 1군 경험이 적은 투수들은 시즌 중반 체력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10개 구단 감독이 젊은 불펜투수 체력 안배에 적잖이 공력을 들이는 이유다. 불펜진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젊은피 수혈을 마친 KIA 역시 이 부분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여기서 ‘이닝이터’의 존재감이 빛을 발한다. ‘이닝이터’의 존재는 필승조 투입 상황 자체를 감소하는 데 큰 힘을 보태기 마련이다. KIA에서 이닝이터 역할을 맡을 적임자는 단연 양현종이다. 지난 두 경기에서 양현종은 15이닝을 소화했다. 두 경기에서 불펜이 잡아야 할 아웃카운트는 평균 4.5개에 불과했다. 양현종 호투가 KIA 불펜 소모량을 줄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셈이다.
결국 양현종의 부활은 KIA 마운드에 연쇄적인 상승효과로 작용한다. KIA 에이스, 양현종의 존재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에이스의 자격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좋은 성적은 물론이거니와 상대 타자들이 위압감을 느낄만한 ‘아우라’가 필요하다. 양현종은 KBO 리그에서 ‘에이스의 자격’을 갖춘 몇 안 되는 투수 중 하나다.
호랑이 군단은 이제 막 반등의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타이거즈의 심장’ 양현종의 활약은 호랑이의 진격에 큰 동력을 제공할 전망이다. 남은 시즌 에이스 양현종의 행보에 야구팬들의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