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서울 강남역 인근에 자리한 대만 버블티 전문점 ‘타이거슈가’. 평일 오후 3시, 한가할 법한 시간이지만 끊임없이 몰려드는 인파로 대기 줄이 계속 이어졌다. 30여 분 끝에 음료를 손에 쥔 윤하람 씨(27)는 어떤 이유로 방문했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28일 오후 서울 타이거슈가 강남점. 대만 버블티를 먹기 위해 고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최준필 기자
해외 외식업계 브랜드 열풍이 불고 있다. 미국 3대 버거 중 하나인 ‘쉐이크쉑’이 2016년 큰 인기를 끈 데 이어, 미국 버거 ‘인앤아웃’은 이달 강남에 팝업스토어를 열고 하루 동안 250개 한정판매를 실시했다. 매장 앞엔 새벽부터 대기 행렬이 이어졌다.
해외 외식 브랜드에 대한 높은 수요는 이들의 국내 진출로 이어진다. ‘타이거슈가’를 비롯해 대왕연어초밥으로 유명한 대만 ‘삼미식당’, 미국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 등 다양한 해외 브랜드가 한국에 진출했다. 블루보틀은 성수 1호점 인기에 힘입어 삼청점 등 연내 2곳을 추가로 오픈할 예정이다.
해외 음식에 대한 수요 증가는 유학과 여행 등의 활발한 해외활동에서 비롯했다는 분석이다. 국내 소비자의 외국 외식업 브랜드 경험이 많아짐에 따라 낯선 식문화에 대한 거부감은 줄고 관심은 늘었다는 것이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한 정보 공유로 유행이 빠르게 번지며 해외 외식 브랜드에 대한 관심과 경험해보려는 욕구도 커졌다.
자기를 드러내는 것을 중시하고 정보 검색에 능한 밀레니얼 세대가 주요 소비층으로 성장한 것도 이유다. 유행은 소비자가 SNS로 지인이나 인플루언서의 소비 행태를 보고 따라하며 생겨난다. 어윤선 세종사이버대학교 외식창업프랜차이즈학과 교수는 “해외에 거주하거나 여행하는 사람들이 국내에 없는 음식점과 카페를 SNS에 공유하며 자신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며 “그렇게 특정 외식업 브랜드가 유행하다 보니 한국에 입점하면 국내 소비자들도 따라 먹어보고 SNS에 인증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음식에 대한 정보 공유가 활발하고 트렌드에 빠르게 반응하는 한국의 소비 성향은 해외 외식업계를 끌어당긴다. 미국에서 쉐이크쉑을 들여온 SPC그룹 관계자는 “한국 소비시장은 전체적으로 트렌드에 민감하고 새로운 것을 경험해보려는 경향이 강해 해외 외식업계가 한국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며 “한국 소비자의 까다로운 선택, 트렌드 민감성을 어느 정도 충족해야 동남아나 중국 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엿볼 수 있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한국 시장에서의 성공이 다른 아시아 지역으로 넘어갈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하는 셈이다.
서울 성동구에 자리한 미국 프리미엄 커피전문점 블루보틀. 커피를 맛보기 위한 대기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준필 기자.
해외 외식 업계의 활발한 국내 진출은 국내 외식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긍정적 측면에서는 경쟁을 통해 국내 브랜드의 제품·서비스 품질이 한층 높아질 수 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외국 업체가 들어오면 국내 업계도 이에 대응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서비스 질을 높이므로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며 “‘이케아’의 한국 진출에 국내 가구 업체들이 자극 받아 성장한 것처럼 외식업계에도 이러한 메기효과(막강한 경쟁자의 존재가 다른 경쟁자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현상)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실제로 세계적 가구 브랜드 이케아가 한국에 진출하자 국내 가구업계에선 시장 잠식에 대한 우려가 컸다. 그러나 국내 업체들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소비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제품·서비스 질을 높이면서 국내 가구시장은 한층 성장했다.
문제는 경쟁에서 밀리는 중소업체다. 국내 중소 브랜드들은 자본과 인프라가 열악해 해외 대형 프랜차이즈에 잠식당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강병오 중앙대 산업창업경영대학원 창업컨설팅학과장(창업학 박사)은 “‘스타벅스’처럼 해외 대형 프랜차이즈가 들어오면 주변 상권은 메뉴 개발과 혁신을 통해 경쟁해야 하는데, 중소·영세업체는 그럴 여력이 없다”며 “경쟁이 가능한 건 대기업인데, 정부 규제를 받고 있어 이를 피해 해외로 눈을 돌리다보니 결국 골목상권을 해외 브랜드가 장악하는 웃지 못할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 외식업계의 도전에 국내 업계가 대응하려면 혁신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뉴트로(Newtro)’가 트렌드인 것처럼 외식업계에도 뉴트로가 필요하다. 기존 방식과 메뉴만 고수할 것이 아니라 현 시대에 맞게 혁신하면서 브랜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이를 위해서는 개별 기업들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가 음식산업에 대해 정의를 새로 내리고 국내 토종 브랜드가 살아남기 위한 포지셔닝 전략을 세우는 한편 업체 교육·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음식에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영애 인천대 교수는 “윤리적인 가치판단에 따라 의식 있게 소비하려는 트렌드에 맞춰 동반성장 등에 포인트를 주면 소비자의 사회적 본능을 자극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
해외 진출 국내 외식업계는 고전중 한국 시장에 진출한 해외 외식업계가 선풍적 인기를 끄는 반면, 해외에 진출한 국내 외식업계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2018년 외식기업 해외진출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에 진출한 국내 외식업체는 166개, 매장은 4721개다. 업체와 매장 각각 전년대비 14%, 21.3% 감소한 수치다. 성공 사례는 ‘파리바게뜨’와 ‘롯데리아’ 등으로 손에 꼽힌다. SPC그룹이 운영하는 베이커리 파리바게뜨는 2004년 9월 중국 상하이에 진출한 이래 현재 중국, 미국, 베트남, 싱가포르, 프랑스에 총 400여 개 점포를 운영 중이다. 최근 중국에 대형 생산시설을 완공하기도 했다. 롯데지알에스의 롯데리아는 1998년 베트남에 첫 매장을 오픈한 이후 현재 241개 매장을 운영 중으로, 2012년부터 베트남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해외 진출한 브랜드가 성공하기 쉽지 않은 이유는 충분한 자본과 인프라가 부족하고 현지 법체계와 규정 등에 익숙지 않기 때문이다. 어윤선 세종사이버대 교수는 “국내 외식업계의 해외 진출은 초보 단계다“며 ”해외 진출에는 서비스와 음식을 얼마만큼 빨리 현지화하느냐가 관건인데 현지 문화와 법체계, 규정 등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은 상황에서 진출하다 보니 문 닫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대기업과 합작해 진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강병오 중앙대 박사는 “외식업은 영업이익이 낮아 절대적인 자본과 인프라가 있어야만 현지 브랜드와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며 “한류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지금, 대기업 자본·인프라와 중소기업의 기술 및 아이디어를 합하면 해외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예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