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미래당 내홍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는 손학규 대표 퇴진을 겨냥한 ‘혁신위원회’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사진,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5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 안철수계
안철수계는 이동섭·이태규·김수민·김중로·신용현·김삼화 의원이다. 이들은 손학규 대표를 퇴진시키기 위해 혁신위원회 구성을 주장 중이다. 혁신위원장으로는 당내 최다선(5선)인 정병국 의원을 내세우고 있다. 안철수계의 목적은 당권에 있다. 독일에 머물고 있는 안철수 전 대표가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내홍을 가라앉히고, 당권을 재정비하는 등의 사전작업을 뜻한다.
바른미래당의 한 관계자는 “겉으론 그렇게 보이지만, 사실 안철수계 내부에서도 안철수 전 대표의 귀국이 늦어지는 걸 원하는 이들이 있다더라”고 밝혔다. 이유는 둘. 하나는 안철수 전 대표가 돌아오면 유승민 전 대표와 갈등이 생기고 당 지지율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감, 안-유 공천 경쟁이 있었던 ‘4·3 재보궐선거의 악몽’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21대 총선 전략으로 ‘중도 보수’가 유리할 것이란 분석이다.
이런 까닭에 일부 안철수계 의원들 사이에서 ‘안철수 전 대표보다 유승민 전 대표’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들은 손학규 대표 체제로 총선을 준비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를 퇴진시킬 혁신위원회를 준비 중이다.
# 바른정당계
바른정당계는 바른정당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유승민 전 대표와 이혜훈·정병국·하태경·유의동·정운천·지상욱 의원과 오신환 원내대표, 그리고 이준석 최고위원이다. 이들은 패스트트랙 안건 처리를 두고 국민의당계와 큰 갈등을 빚어왔고, 이후부터 손학규 대표의 당 운영 방식에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이들은 당초 안철수계가 제안한 혁신위를 사실상 반대했다. “손 대표의 들러리를 서는 혁신위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쳐 왔다. 바른미래당 한 관계자는 “바른정당계는 혁신위를 원치 않는다. 그저 지금처럼 손학규 대표를 흔들어서 스스로 퇴진하게끔, 그리고 이 과정에서 ‘빅딜’을 하려고 계산 중”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빅딜이란 정계개편이나 ‘제3지대 신당 창당’ 논의 과정에서의 거래를 뜻한다.
일각에선 ‘바른정당계가 원하는 것은 손학규 사퇴가 아닌 손학규 흔들기’라는 말들이 나왔다. 또다른 바른미래당 관계자는 “손학규 대표를 계속 흔들면서 총선 때 한국당과 같이 가려는 것 같다. 그 명분을 만들기 위해 손학규 대표를 흔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준석 최고위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그렇지 않다.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의 사퇴”라며 “처음부터 퇴진을 요구했던 건 아니다. 저도 처음엔 손학규 대표의 ‘재신임’만 이야기를 꺼내 들었는데, 이후 시간이 흘러가며 그가 독단적인 모습을 보였고, 결국 사퇴를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29일 바른정당계는 갑작스레 입장을 바꿨다. ‘정병국 혁신위’를 수용한 것이다. 연일 손학규 대표를 공격하고 법원의 힘도 빌려봤지만, 소득 없고 별다른 출구전략도 없어 마지못해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됐다.
# 당권파
당권파는 박주선·김동철·이찬열·김관영·김성식·채이배(정책위의장)·임재훈(사무총장)·최도자(수석대변인) 의원과 주승용·문병호 최고위원과 손학규 대표다. 이들 모두 호남계로 분류된다. 이 외에 장진영 당 대표 비서실장도 당권파다. 이들은 여러 당의 주요 요직을 맡으며 주도권을 갖고 있으며, 퇴진 시점을 최대한 늦추길 원한다. 문병호 최고위원은 “당 지지도를 올리기 위해선 유-안, 두 사람이 손학규 대표에 대한 지지선언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장진영 당 대표 비서실장도 “지지율이 낮은 이유는 당내 정비가 안 돼서 그런 것이다. 정비를 끝내야만 지지율을 올릴 수 있다”며 “혁신위에 마냥 부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손학규 대표 퇴진이라는) 전제가 틀린 것”이라고 사실상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이어 “추석 때까지 계속 잘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그 전에 어떤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라고 했다. ‘어떤 일’의 의미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여러 정치 배경에 변화가 있지 않겠나”라며 정계개편 등을 암시했다.
당권파는 혁신위에 무조건적인 반대가 아니다. 정병국 의원이 아닌 외부인사를 영입한다는 전제로 혁신위 구성에 부분적으로 찬성하는 상황이다. 혁신위원장 인사는 당헌·당규에 따라 대표 고유 권한으로 제한된다.
# 연합군의 출구전략은
결국 손학규 대표를 중심으로 한 당권파는 바른정당계-안철수계의 ‘연합군’에 맞서는 상황이다. ‘정병국 혁신위’를 놓고 당이 두 개로 갈라진 모습이다. 연합군에게 더 이상의 방법은 없다. 공식 석상에서 손학규 대표에게 항의하거나 부적절한 언행을 보이며 공세에 나섰지만, 오히려 역풍을 맞거나 지지율이 떨어질 뿐이었다. 법원에 ‘지명직 최고위원 임명(당권파인 주승용·문병호) 무효’에 대한 효력정지가처분신청을 했지만 법원도 손학규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29일 최고위원 5명은 “‘정병국 혁신위’ 안건을 최고위 의결 안건으로 상정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현실적 한계점도 피할 수 없다. 최고위원회에 안건을 상정하기 위해선 사무총장이 당 기획조정국과 논의해 안건을 올려야 하지만, 임재훈 사무총장은 현재 당권파로 ‘정병국 혁신위’ 구성에 소극적인 입장이다. ‘흔들기’ ‘법원 가처분신청’ 등 여러 방법을 모색했지만 큰 효과가 없었고 현재 주장하는 ‘정병국 혁신위’도 무산되면 연합군이 내밀 카드는 더 이상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의 관계자는 “손학규 대표를 끌어내릴 방법은 없다. 당헌·당규에도 그런 조항은 없다”며 “손학규 대표가 추석까지 지지율을 10% 넘기지 못하면 사퇴하겠다고 했는데, 그때까지 버티는 게 가능할까? 가능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당 지지율은 뚝뚝 떨어지고 총선은 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른미래당은 6월 4일 의원총회를 열고 혁신위 구성 등을 논의할 예정으로, 이날 의원들의 마찰이 노골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