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지난 5월 13일 한진칼 주식 5만 3000여 주를 순매수했다. 이날까지만 해도 증권가는 별일 아닌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날인 14일이 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골드만삭스는 이날 한진칼 주식 58만 3545주를 쓸어 담으며 주식매집의 신호탄을 쏘았다. 이어 15일 27만 8767주, 22일 13만 1793주 등 잇달아 주식을 매집해 28일까지 한진칼 주식 620억 원어치를 매수했다. 주식 수로는 150만 주, 지분율 2.54%에 해당한다.
골드만삭스가 연일 한진칼 지분을 매입하면서 한진칼 경영권 향배에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을 서울 서소문 대한항공사옥. 고성준 기자
강성부펀드와 한진칼 최대주주 고 조양호 회장의 지분율(17.84%) 차이는 2%포인트 미만으로 줄어든 상태다. 조원태 신임 한진그룹 회장은 2.34%, 조현아 2.31%, 조현민 2.30%를 보유하고 있다.
KCGI는 한진칼 지분 추가 매입에 나설 것이 확실해 보인다. KCGI는 자산총액이 3000억 원 미만으로 상장법인 지분 15% 이상 취득시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결합신고를 하고 투자자를 공개해야 한다는 공정거래법 제12조도 적용받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골드만삭스까지 가세하자 한진칼 주가는 연일 상승행진을 벌였다. 지난 13일 3만 6600원이던 주가는 불과 열흘 만에 20% 이상 급등하면서 24일 4만 6000원을 넘어섰다. 이후 일부 조정을 거치긴 했지만 30일 현재 4만 3000원을 넘나드는 중이다.
문제는 골드만삭스 창구로 매수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다. 골드만삭스는 투자은행이니만큼 직접 주식을 매입했을 수도 있고, 제3자의 매수창구 역할만 했을 뿐일 수도 있다. 금융권은 ‘누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라고 입을 모은다. 경영권 분쟁에 휘말린 한진그룹과 조원태 회장을 구원해줄 백기사인지, 강성부펀드 혹은 또 다른 주체에게 경영권을 넘기려는 흑기사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주가 상승을 통한 자본차익을 얻으려는 목적일 수도 있다.
금융권은 우선 ‘백기사’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금융권 한 고위 관계자는 “백기사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면서 “강성부펀드 등 사모펀드 지분율이 30%를 넘어간 상황이니만큼 한진 쪽 우호세력이 있다면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는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그에 따르면 백기사는 미국 델타항공 혹은 제3의 외국계 금융사일 가능성이 있다. 델타항공은 2017년 조원태 회장이 주도한 조인트벤처에 참여하는 등 한진그룹과 관계가 돈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골드만삭스 창구를 통한 매수세가 백기사라면 향후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은 한진-골드만 연합군과 KCGI펀드 간 대결로 이어질 공산이 클 것으로 금융권은 내다보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매입으로 한진칼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고 조양호 회장의 지분을 물려받는 조원태 신임 한진그룹 회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한진그룹 제공.
흑기사로 보는 근거 중 하나로 상속세를 거론하는 이들도 있다. 상속세 부과 시점인 오는 6월 7일 이전에 주가를 끌어올려 조 회장의 세금 부담을 늘리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조원태 회장은 부친인 고 조양호 회장으로부터 한진칼 지분 17.84%를 상속받았는데, 6월 7일 주가를 기준으로 세금이 부과된다. 한진그룹은 주가가 3만 원대인 것으로 가정해 1700억 원 정도의 상속세를 예상해둔 상태다. 하지만 최근 주가를 반영하면 상속세는 2000억~25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증권가는 관측하고 있다.
상속세는 5년간 분할 납부하면 되기 때문에 당장 경영권에 위협을 줄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결국 내야 하는 돈이고, 이를 위해 대한항공과 ㈜한진 등 한진그룹 계열사들의 배당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가 상승을 노린 단순 투자일 수도 있다. 경영권 분쟁과 적대적 M&A 가능성에 주가 상승으로 얻을 차익을 노린 투자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공매도 세력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진칼의 공매도 잔고는 이미 5%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는 300만 주에 달하는 물량으로, 금액으로 해도 1400억 원에 이른다. 연일 공매도 물량이 나오고 있음에도 주가가 계속 올라 공매도 세력이 당황하고 있다는 것이 증권가의 후문이다.
이렇듯 정체가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골드만삭스 창구’를 놓고 금융권에서는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일각에서는 ‘골드만삭스 창구’의 정체가 삼남매 중 누군가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직권으로 조원태 회장을 동일인, 총수로 지정하고 관련 서류를 요청했지만 오너 일가 남매간의 내부 갈등은 봉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