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경기 맹위를 떨치고 있는 류현진은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사이영 상 후보로 꼽히고 있다. 연합뉴스
[일요신문] ‘사이영 상’은 메이저리그가 매년 양대 리그에서 가장 가치 있는 투수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세계 최고 리그에서도 최고로 인정받은 투수들만 이 상의 영예를 누릴 자격이 있다. 전 세계 투수들이 모두 동경하는 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한국 야구와 큰 관계가 없어 보이던 이 상은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국내 언론과 야구팬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 LA 다저스 류현진(32)이 일찌감치 내셔널리그 사이영 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어서다. 그동안 여러 한국인 투수가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았지만, ‘사이영 상’ 후보로 언급될 만한 활약을 펼친 선수는 류현진이 유일하다. 내셔널리그 다승과 평균자책점 선두권을 달리고, 경이적인 삼진/볼넷 비율을 자랑하고 있는 류현진의 올해 성적이 그만큼 어마어마하다는 얘기다.
#류현진은 어떻게 ‘사이영상 컨텐더’가 됐나
류현진은 5월 31일(한국시간) ESPN이 발표한 내셔널리그 사이영 상 예측 지수에서 82.5점을 얻었다. 다른 경쟁자들을 20점 가까이 추월한 기록이다. ESPN 사이영 상 예측은 야구 통계의 선구자인 빌 제임스와 ESPN 칼럼니스트 롭 네이어가 함께 수립한 공식에 따라 순위를 매긴다. 투구 이닝, 자책점, 탈삼진, 승패 수 등을 자체적으로 만든 복잡한 공식에 대입하고, 소속팀이 지구 1위에 올라 있을 경우 승리 보너스 12점을 추가하는 방식이다. ESPN이 이 집계를 발표하던 당시 류현진의 시즌 성적은 8승 1패, 평균자책점 1.48. 여기에 다저스가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선두를 지켜 보너스 점수도 합산됐다.
ESPN 지수에서 류현진의 뒤를 잇는 2위와 3위는 모두 마무리 투수들이다. 류현진의 팀 동료 켄리 잰슨이 65.9점, 샌디에이고 소방수 커비 예이츠(63.1점)가 차례로 뒤를 잇고 있다. 불펜 투수가 사이영 상을 수상한 사례가 지극히 드문 점을 고려하면, 류현진은 그야말로 독보적인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셈이다.
이뿐 아니다. 류현진은 또 다른 사이영 상 예측 지수인 ‘톰 탱고 포인트’에서도 내셔널리그 1위를 유지했다. 야구 통계 전문가 톰 탱고가 고안한 이 지수는 ESPN 예측보다 훨씬 쉬운 계산법을 쓴다. 투구 이닝을 2로 나눈 수치에서 자책점을 빼고, 여기에 탈삼진을 10으로 나눈 수치와 승수 등 세 항목을 더해 점수를 계산하는 방식이다. 더 많은 이닝을 던지면서 자책점이 적고 탈삼진과 승수가 높을수록 점수를 많이 얻게 된다. 한 통계 사이트는 “2006년 이후 사이영 상 수상자 예측에서 톰 탱고 포인트가 ESPN 포인트보다 적중률이 높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집계 당시 65⅓이닝을 던져 자책점 12점을 기록하고 탈삼진 62개를 잡았던 류현진은 총 33.9점을 받았다. 한 주 전 집계(31.6점)보다 2.3점이 더 오른 수치다. 5월 26일 피츠버그전에서 6이닝 2실점을 기록하면서 자책점이 2점 늘어난 대신 투구 이닝(6이닝) 탈삼진(3개) 승수(1승)가 각각 높아져 점수가 올랐다. 이런 수치들은 단순히 통계를 기초로 한 예상 집계에 불과하고 아직 시즌은 한참 더 남았지만, 류현진으로선 충분히 기분 좋을 만한 결과다.
#사이영 상의 기원과 투표 방식
사이 영(Cy Young)은 1890년부터 1911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뛴 투수다. 본명은 덴톤 트루 영. 그러나 ‘사이 영’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했다. 태풍의 한 종류인 사이클론처럼 공이 빠르다는 의미로 붙은 별명이다. 그는 클리블랜드(1890∼1898년·1909∼1911년) 세인트루이스(1899∼1900년) 보스턴(1901∼1908년·1911년)에서 22년간 선수 생활을 하면서 통산 906경기에 등판해 7354이닝을 던지고 무려 511승을 올렸다. 통산 평균자책점은 2.63. 탈삼진은 2803개에 달한다. 선발 등판한 815경기 가운데 무려 749경기를 완투했고, 그 가운데 완봉승도 76번이나 된다. 말 그대로 ‘전설’로 기억될 만한 성적을 남겼다.
메이저리그는 사이 영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1956년 사이영 상을 처음으로 제정했다. 1966년까지는 양 리그를 통합해 한 명에게만 상을 줬지만, 1967년부터는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를 구분해 시상하기 시작했다. 그 후 꾸준히 역사가 쌓여가면서 명실상부한 최고 권위 투수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수상자는 전미야구기자협회 소속 기자로 구성된 투표인단이 결정한다. 매년 각 리그 15개 구단의 연고지역에서 팀당 두 명씩 대표로 투표할 기자가 선정되고, 그렇게 꾸려진 30명이 해당 리그 투표에 참여한다. 투표 자체는 정규시즌이 끝난 직후에 진행되지만, 수상자는 월드시리즈가 끝나야 발표된다. 포스트시즌 경기 내용이 투표에 영향을 주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초창기에는 투표인단이 최고의 투수 한 명에게 투표해 최다 득표자를 수상자로 결정했다. 하지만 1969년 아메리칸리그 투표에서 동점이 나와 데니 맥레인과 마이클 케야르가 공동 수상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1970년부터는 1위부터 3위까지 세 명을 뽑아 총점을 계산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1위 표는 5점, 2위 표는 3점, 3위 표는 1점으로 환산해 총점이 가장 높은 선수에게 상을 줬다.
또 2010년부터는 1위부터 5위까지 투수 다섯 명에게 표를 던지는 방식으로 더 세분화됐다. 1위 표 득점을 7점으로 높여 변별력을 강화한 게 가장 큰 특징이다. 그 외에 2위 표는 4점, 3위 표는 3점, 4위 표는 2점, 5위 표는 1점이 각각 주어진다. 이 모든 득표를 합산해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선수가 상을 받는다.
하지만 진화를 거듭해 온 새 투표 방식도 논란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2016년 아메리칸리그 투표에서 돌발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1위 표를 14장으로 가장 많이 받은 저스틴 벌랜더(디트로이트·14장)가 1위 표 8장을 받은 릭 포셀로(보스턴)에 총점에서 밀려 사이영 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포셀로가 2위 표 18장을 가져가면서 2위 표를 2장밖에 챙기지 못한 벌랜더를 총점 5점 차로 앞지른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밝혀진 득표 세부 사항도 공정성 논란에 불을 붙였다. 포셀로는 30명 전원에게 1~5위 표 가운데 한 장을 얻었지만, 투표 인단 중 두 명의 기자는 아예 벌랜더를 5위 안에도 포함시키지 않은 사실이 알려져서다. 어쨌든 이로 인해 포셀로는 역대 최초로 차점자보다 1위표 수가 모자라고도 트로피를 받은 주인공으로 남게 됐다.
류현진의 팀 동료 클레이튼 커쇼 또한 사이영 상 수상 경험이 있다. 사진=LA 다저스 페이스북
지금까지 메이저리그에서 사이영 상을 가장 많이 수상한 투수는 로저 클레멘스다. 무려 일곱 번이나 트로피를 받아 들었다. 2004년엔 42세 나이로 수상자가 돼 역대 최고령 기록도 갖고 있다. 클레멘스 다음으로 많이 받은 선수는 5회 수상한 랜디 존슨이다. 존슨은 1999년부터 2002년까지 4년 연속 수상작 돼 그렉 매덕스(1992~1995)와 함께 역대 최다 연속시즌 수상 기록도 남겼다. 매덕스와 존슨 이후에는 아직 세 시즌 연속 수상자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사이영 상을 2회 이상 수상한 투수는 총 19명뿐. 이 가운데 현역 선수는 클레이튼 커쇼(LA 다저스) 맥스 슈어저(워싱턴) 코리 클루버(클리블랜드)까지 세 명이다.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에서 모두 사이영 상을 받은 선수는 지금까지 총 6명 나왔다. 클레멘스와 존슨, 게일로드 페리, 페드로 마르티네스, 로이 할러데이 그리고 슈어저다.
가장 최근 통합 수상자로 기록된 슈어저는 2003년 디트로이트 소속으로 아메리칸리그에서 수상한 데 이어 2016년 워싱턴에서 내셔널리그 상을 가져가면서 이 쟁쟁한 명단에 합류했다. 슈어저가 2015년 워싱턴으로 이적한 뒤에는 다저스 에이스 커쇼와의 내셔널리그 사이영 상 경쟁 구도가 메이저리그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슈어저는 2016년과 2017년에 2년 연속으로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던 커쇼를 제치고 사이영상을 탔다. 2013·2014년 연속 수상한 커쇼의 뒤를 이어 통산 10번째 2년 연속 사이영 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또 개인 세 번째 사이영 상 트로피를 손에 넣으면서 커쇼의 수상 횟수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역대 만장일치 수상자는 총 23번 나왔다. 샌디 쿠팩스가 3회(1963·1965·1966년), 매덕스(1994·1995년) 클레멘스(1986·1998년) 마르티네스(1999·2000년) 요한 산타나(2004·2006년)이 2회씩 각각 기록해 만장일치 수상 선수 수는 총 17명이 된다. 현역 선수 가운데 만장일치로 선정된 선수는 벌랜더(2011년)와 커쇼(2014년)밖에 없다. 두 투수는 사이영 상과 정규리그 MVP를 동시 수상한 10명 가운데서도 단 두 명에 불과한 현역 선수다. 페르난도 발렌수엘라는 1981년 역대 유일하게 사이영 상과 신인왕을 동시 석권했다.
역대 사이 영 상 수상자 가운데 최다승 투수는 1968년 31승을 올린 데니 맥클레인. 반면 가장 적은 승수(선발투수 기준)로 수상한 투수는 지난해 ‘불운의 아이콘’으로 이름을 날렸던 제이크 디그롬(뉴욕 메츠)이다. 디그롬은 10승을 올리고도 지난해 내셔널리그 수상자로 선정돼 역대 최소 승리 수상 기록을 썼는데, 반대로 평균자책점 1.70을 올리면서 내셔널리그 역대 최저 평균자책점 수상 기록도 동시에 썼다.
류현진의 소속팀 LA 다저스는 전신 브루클린 다저스 시절까지 포함해 총 12번의 사이영 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2011년 이후 나온 세 차례 수상은 모두 커쇼가 이룬 업적이다. 커쇼는 2011년 233⅓이닝 21승 5패 평균자책점 2.28, 2013년 236이닝 16승 9패 평균자책점 1.83, 2014년 198⅓이닝 21승 3패 평균자책점 1.77이라는 괴물 같은 성적으로 최고 투수 영예에 올랐다.
다만 아시아 출신 투수들은 아직 사이영 상 트로피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역대 동양인 투수 가운데 사이영 상 투표 최고 성적은 2위. 2006년 대만 출신 왕첸밍과 2013년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 유가 이뤄냈다. 그 뒤로는 2013년 이와쿠마 히사시가 3위, 2008년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1995·1996년 노모 히데오가 4위에 각각 올랐다. 한국인 투수들 가운데선 사이영 상 투표에서 표를 받은 선수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한국의 ‘사이영 상’ 꿈꾸는 ‘최동원’ 상 ‘최동원 상’은 ‘한국의 사이영 상’을 목표로 제정된 상이다. 시즌이 모두 끝난 뒤 그해 최고의 투수 한 명에게 주어진다. KBO 리그의 전설적 투수이자 전무후무한 한국시리즈 4승 역사를 남긴 고(故) 최동원을 기리기 위해 최동원 기념사업회 주도로 만들어졌다. 최동원의 등번호가 11번이었던 터라 시상식도 매년 11월 11일 진행한다. 지난 시즌 최동원 상 수상자 조쉬 린드블럼. 연합뉴스 물론 KBO가 주관하는 상이 아니기 때문에 공식 시상으로 분류되지 않는 한계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일본의 사와무라 상 역시 NPB가 아닌 야구 잡지 ‘열구’에 의해 제정된 뒤 점점 권위를 더해갔고, 지금은 일본 투수들이 모두 받고 싶어 하는 명예로운 상으로 자리를 굳혔다. 최동원 상의 가치 역시 앞으로 더 높아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실제로 최동원 상 수상자 선정 방식은 사이영 상보다 사와무라 상과 더 비슷하다. 기자단 투표 없이 야구 원로 혹은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가 수상자를 결정한다. 야구 원로 어우홍 전 감독이 선정위원장을 맡고 있고, 김인식 전 국가대표 감독과 허구연 MBC 해설위원, 강병철 전 롯데 감독, 박영길 전 삼성 감독 등이 지난해 선정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김성근 전 한화 감독과 선동열 전 국가대표 감독도 과거 선정위원으로 참여했다. 최동원 상 후보에 오르려면 지난해 기준으로 ▲선발 25경기 이상 ▲180이닝 이상 투구 ▲15승 이상 ▲150탈삼진 이상 ▲15 퀄리티스타트 이상 ▲평균자책점 3.00 이하 ▲35세이브 이상 가운데 한 가지를 충족해야 한다. 처음에는 선발 30경기, 평균자책점 2.50 이하, 12승 이상, 40세이브 이상 등으로 더 엄격한 마지노선을 적용했다. 하지만 갈수록 타고투저 현상이 심해지면서 후보군을 추리는 데 어려움을 겪자 2년에 걸쳐 기준을 대거 완화했다. 최동원 상이 출범한 2014년부터 4회 시상식이 열린 2017년까지는 “국내 투수 양성에 앞장선다”는 이유로 외국인 투수를 후보에서 제외했다. 그 결과 1회는 KIA 양현종, 2회는 두산 유희관, 3회는 두산 장원준, 4회는 다시 KIA 양현종이 각각 수상했다. 하지만 국내 투수들의 전체적 부진 속에 평균자책점 4점 대 선수가 상을 가져가거나 다승 지표에서만 1위를 한 투수가 수상자로 뽑히는 등 꾸준히 선정 기준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외국인 투수를 제외하는 것은 ‘최고 투수’를 가리는 상의 성격과 맞지 않다”는 의견도 계속 이어졌다. 결국 최동원 기념사업회는 외국인 투수까지 시상자 범위를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지난해 최초로 두산 외국인 투수 조쉬 린드블럼이 상을 받았다. 배영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