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9일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한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 박은숙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5월 29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강 의원과 자유한국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문 대통령은 “국민 알 권리라거나 공익제보라는 식으로 두둔·비호하는 정당의 행태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면서 “국가 운영의 근본에 관한 문제만큼은 기본과 상식을 지켜 주길 요청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야당과 그 소속 의원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여권이 강 의원 사태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청와대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연이은 폭로 사건으로 곤욕을 치렀다. 전직 청와대 특감반원 김태우 씨, 기재무 사무관 출신 신재민 씨 등이 언론을 달궜다. 이들 주장의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청와대는 내상을 크게 입었다. 청와대가 직접 이들과 설전을 벌이는 과정 역시 국민들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 이후 청와대는 임종석 전 실장 후임자로 발탁된 노영민 비서실장을 필두로 공직사회 기강 잡기를 위한 강도 높은 드라이브를 걸었다. 청와대는 물론 각 부처와 공공기관에 대한 직원들의 감찰과 보안조치도 강화했다. 한 친문 의원은 “실패한 정권은 안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를 잡지 못하면 문 대통령 남은 임기는 공무원들 상대하느라 허비하고 만다는 위기감이 급속도로 퍼지던 때”라고 전했다.
여권이 강 의원 폭로에 당혹감을 넘어 분노하며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내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공직사회 권력 누수 현상이 심상치 않다는 우려도 뒤를 잇는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청와대가 그렇게까지 단속을 했는데 이런 대형사고가 터졌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면서 “외교는 현 정부가 가장 공을 들이고 신경을 쓰는 분야라는 점에서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라고 했다.
그런데 청와대가 본격적인 군기 잡기에 나설 무렵부터 정치권엔 공직사회 내부 제보가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문재인 정부와 대척점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는 자유한국당에 유난히 제보가 쏟아졌다고 한다. 정부부처뿐 아니라 국정원 검찰 등 권력기관에서 고급 정보들이 흘러나왔다. 공직사회가 청와대 뜻과는 정반대로 움직였던 셈이다. 자유한국당 한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2월 평소 친분이 있던 고위 공무원으로부터 “지금까지 미안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동안 청와대 눈치를 보느라 비협조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해명이었다. 그러면서 청와대 지시로 인해 발생한 부처 내 문제들을 털어놓더라. 우리 당은 정권을 내준 후 야당의 설움을 톡톡히 겪었다. 부처로부터 자료 하나 얻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들어선 조금씩 달라졌다. 공식적으론 아니지만 여러 채널을 통해 이런 저런 제보들이 들어왔다. 경험상 공직사회는 틀어막는다고 잡히는 게 아니다.”
공무원들은 정부 출범 후 누적된 불만들이 표출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중앙부처 한 고위 관료는 “현 정부는 처음부터 공무원 사회를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고쳐야 할 개혁대상이자 적폐로 취급했다. ‘어공’들은 점령군처럼 조직을 휘저었다. 이 과정에서 피아가 확실히 나뉘었다”면서 “소수 잘나가는 공무원들은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소외감과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자유한국당 관계자들은 현재 확보한 제보들을 들려주기도 했다. 우선 복수의 부처에서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청와대가 과거 정권에서 임명된 인사들의 명단을 작성, 이들을 내쫓는 데 개입했다는 게 골자다. 환경부에서 문제가 됐던 일들이 또 다른 곳에서도 벌어졌다는 얘기다. 부당하게 퇴출당했거나 좌천성 인사를 당한 전·현직 관료들이 여러 차례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만나 USB 파일 등을 건넨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당의 한 재선 의원은 서훈 국정원장과 관련된 자료를 내부 제보자로부터 전달받았다고 귀띔했다. 최근 서훈 원장은 ‘문의 남자’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의 만남으로 인해 도마에 오른 상태다. 이 의원은 “국정원 내에 서훈 원장을 ‘비토’하는 세력들이 곳곳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 중 일부가 서 원장의 개인 비리, 그리고 국정원의 정치편향 인사 등이 담긴 내용을 은밀히 보내왔다”고 말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공수처 설치를 놓고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검찰이 친문 인사들의 ‘은밀한’ 비리를 흘리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얼마 전 검찰 출신의 한 한국당 의원은 사석에서 “검찰이 알고도 수사하지 않는 메가톤급 비리가 최소한 5개 이상”이라고 말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 친문 관계자는 “처음엔 눈치를 보던 국정원과 검찰의 못된 버릇이 또 도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두 기관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통일부와 국방부 직원들로부터 나온 제보도 눈길을 끌었다. 한국당의 한 의원은 통일부의 대북 정책과 관련해 내부에서 불거진 문제점을 확인 중이다. 이 의원은 “아직 말해줄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통일부, 그리고 청와대에서 감추고 싶어 했던 것”이라고 했다. 국방부에선 군 장성 인사에 특정 지역 여권 실세가 개입됐다는 주장을 하는 직원이 자유한국당 의원을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선 산하 예산 문제를 놓고 의혹이 제기됐는데, 이 업무에 관여한 직원 한 명이 조만간 양심선언을 할 것이란 얘기가 돈다.
한국당은 이러한 공직사회의 심상찮은 움직임에 반색하는 기류다. 하반기 국정감사 등을 통해 최대한 이슈화하고, 이를 내년 총선으로까지 연결시킨다는 전략이다. 자유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은 “공직사회 민심 이반이 빠르게 퍼지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한국당으로선 이를 잘 활용해야 할 것 같다. 들어오는 제보에 대한 확인 여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식적인 자료 요청으론 힘드니 의원들 개개인의 인맥에 기대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여권이 강효상 의원 건을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스탠스로 접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직사회를 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동시에 정치권의 폭로전을 사전 진압하기 위한 차원이다. 한 친문 의원은 “소위 말하는 ‘빨대’에 대해 단속을 했는데도 이 정도다. 이는 그만큼 한국당을 대표로 하는 기득권의 저항이 본격화됐다는 것”이라면서 “대통령 임기가 아직 3년 가까이 남았다. 밀릴 수 없는 사안이다. 공직사회 감찰을 보다 강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