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사진 박은숙 기자
초조하게 양보를 기다리던 임 전 실장은 최근 정 의원을 직접 만나 “종로로 이사 오겠다”고 말했다.
임 전 실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내년 초께 당에서 결정을 내주면 (지역구는) 어디든 마다치 않겠지만 그 전까지 일단 종로에 살림집만 옮겨놓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 여권 관계자는 “종로로 집까지 옮겼다가 총선 앞두고 갑자기 다른 지역구에 출마하면 그 지역구 사람들이 좋아하겠나. 임 전 실장은 사실상 꼭 종로에 출마하겠다는 배수진을 친 것”이라고 평가했다.
임 전 실장이 종로 출마를 고집하는 것은 대권을 향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종로는 현직 대통령이 유권자인 지역구라 ‘정치 1번지’로 불린다. 총선 전체 판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지역이라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들이 출마하는 경우가 많았다.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도 종로에 출마한 이력이 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이낙연 국무총리도 종로 출마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의 여권 관계자는 “임 전 실장 과거 지역구는 서울 성동을이었고 현재 살고 있는 곳은 은평구다. 대권 도전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면 종로 출마를 고집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했다. 임 전 실장의 종로 출마가 무산된다면 대권 플랜도 엉켜버린다.
청와대는 권혁기 전 청와대 춘추관장이 용산 출마를 선언하자 해당 지역구 진영 의원을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임명해 교통정리를 한 바 있다.
이번에도 청와대가 교통정리에 나설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지만 진영 의원 사례와는 달리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가장 먼저 정 의원 국무총리 임명설이 거론됐지만 정 의원 측은 “입법부 수장을 지낸 정 의원이 행정부 넘버 2로 간다는 것은 그림이 좋지 않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선 정 의원이 호남으로 지역구를 변경해 총선에서 호남 전체 선거를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서도 정 의원 측은 “정 의원이 전북에서 4선을 하고 선당후사 정신으로 종로에 출마했다. 이제 와서 다시 호남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정 의원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비례대표 선정설도 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의 경우 국회의장을 역임한 후 비례대표(당시 전국구)로 국회에 다시 입성했었다. 이 역시 정 의원 측은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그런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일축했다.
그렇다면 임 전 실장과 경선에서 대결할 생각이냐는 질문에는 “차라리 불출마하겠다”고 했다. 정 의원이 그런 식으로 물러나고 나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종로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야권 정치인은 “종로는 괜히 정치 1번지로 불리는 것이 아니다. 유권자들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지난 총선 때도 (정 의원과 맞붙었던) 오세훈이 (여론조사) 지지율 높다고 타 지역 지원유세 하고 돌아다니다가 완전히 역전패 했다. 정 의원이 그동안 지역구를 잘 다져놨다. 정 의원이 돕지 않으면 제 아무리 임종석이라도 종로에서 승리하긴 어렵다”고 했다.
이 야권 정치인은 “과거 정 의원을 도왔었다. 정 의원이 권력의지가 강하다. 대권까지도 생각하고 있다. 임 전 실장에게 순순히 양보하고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권 내에서는 “국회의장까지 했는데 후배를 위해 양보해야지 정 의원이 욕심을 부리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미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세대교체를 이끌겠다며 스스로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구를 끝까지 지키려 하는 것은 욕심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정 의원 측은 “자리에 대한 욕심은 없다. 다만 종로는 소선구제 이후 민주당이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한 험지다. 정 의원이 호남 기득권을 버리고 출마해 겨우 19대, 20대에서 승리했다. 한국당에서 황교안 대표가 직접 출마한다는 말도 있는데 종로에 연고도 없는 임 전 실장이 승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종로를 지킬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종로에 황교안 대표가 출마하면 지역구 입지가 탄탄한 정 의원 출마론이 힘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 여권 내에서는 정 의원이 종로에서 황 대표를 꺾고 차기 대권에 도전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정 의원 측은 “대권에 욕심 없는 정치인 어디 있겠느냐”면서도 “자리 욕심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정 의원 측 관계자는 “어차피 올해 가을쯤이면 (지역구 배정에 대한) 결론이 나올 거다. (벌써 종로로 이사하겠다고 밝힌 것은) 임 전 실장이 조급했다고 본다. 이낙연 총리 출마설까지 나오니까 다급해서 알박기 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낙연 총리가 종로에 출마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 총리와 소통하고 있는 한 인사는 “내가 출마하려거든 종로에 출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본인도 출마 생각은 있는 거 같다. 본인은 출마하고 싶은데 청와대에서 놔주질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앞서의 여권 관계자는 “임 전 실장과 정 의원이 강대강 대치를 계속하다가 선거를 망칠까봐 우려된다. 자칫 여권 내부 자리싸움으로 비치면 전체 선거 판세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두 사람을 교통정리할 마땅한 방법이 없어 문제”라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
임종석, 종로로 이사 못한 까닭은?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서울 종로로 이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경제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서울 은평구 자택이 팔려야 그 돈으로 새 집을 구할 수 있는데 최근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어 거래가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서울 집값을 잡겠다며 추진한 주택담보대출 억제 등으로 최근 부동산 시장에선 거래 실종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임 전 실장이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부작용을 몸소 체험 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명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