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 NXC 매각 본입찰에 넷마블과 카카오, MBK파트너스,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베인캐피털이 참가했지만 15조 원으로 치솟는 인수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고성준 기자
업계에 따르면 지난 5월 31일 마감한 NXC(넥슨 지주사) 매각 본입찰에 넷마블과 카카오, 국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글로벌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베인캐피털이 참여했다. 유력한 인수 후보군으로 꼽힌 텐센트는 빠졌다.
업계에서는 카카오와 넷마블을 유력한 인수 후보로 보고 있다. 이들에게 넥슨 인수는 넥슨의 게임 개발력과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세계적인 강자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넥슨 입장에서도 국내 업계에 매각하면 ‘우리나라 최대 게임사를 해외 자본에 팔아치운다’는 부정적 여론을 피할 수 있다.
문제는 15조 원까지 치솟은 인수가격이다. 매각 대상인 김정주 NXC 대표와 특수 관계인들의 NXC 지분 전량(98.64%)은 10조~15조 원대 가치로 추정된다. 넷마블과 카카오 모두 올 1분기 기준 현금성 자산이 2조 원에도 못 미치고, 자금 동원이 유리한 재무적 투자자(FI)들조차 조달하기 부담스러운 규모다. 카카오와 넷마블 입장에서는 FI와 컨소시엄 구성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럴 경우 입찰 후보자 간 혹은 컨소시엄 구성에 참여하려는 투자자 간 합종연횡에 따라 상황이 끊임없이 뒤바뀔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김범수 카카오 의장과 방준혁 넷마블 의장이 나서 사모펀드들을 통해 자금을 동원하려고 할 것”이라며 “넷마블·카카오 두 기업을 축으로 사모펀드가 결합해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텐센트가 배후에서 자금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실제 텐센트는 본입찰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유력 후보들과 손잡고 자금을 대는 방식으로 인수전에 영향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텐센트는 중국 정부의 게임 규제 강화 정책으로 현지 게임 시장이 정체될 것에 대비해 해외 시장을 돌파해야 한다. 여기서 한국과 일본에 게임 개발 및 서비스 기반을 구축하고 있는 넥슨을 인수한다면 해외 확장력이 커진다. 텐센트는 ‘던전앤파이터’를 중국에 서비스하면서 매년 넥슨코리아 자회사 네오플에 1조 원가량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다. 비용 절감 차원에서라도 인수할 동기는 충분하다.
텐센트가 카카오와 넷마블의 주요주주라는 점도 참여 가능성을 높인다. 텐센트는 카카오와 넷마블 지분을 각각 6.7%, 17.6% 보유하고 있다. 양사가 구성하는 컨소시엄에 참여해 보유 지분 가치를 높이면서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교수)은 “텐센트가 넥슨 인수 이후 네오플을 분리 매각하거나 필요시 넥슨 지분 추가 인수 등에 자금을 대는 이면 조건을 내걸 수 있다. 카카오·넷마블을 축으로 구성된 두 컨소시엄을 끝까지 저울질하다가 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한 쪽을 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밖에도 사모펀드에 텐센트가 자본을 넣고 컨소시엄으로 불러들여 배후에서 지분을 확보하는 등 간접적으로 인수전에 참여할 방법은 많다.
매각이 무산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인수가격이 너무 높아져 입찰 후보자들과 협상이 되지 않으면 유찰될 수 있다는 것. 업계에서는 인수가격에 비해 투자가치가 확보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재무적 투자자가 선뜻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넥슨의 영업이익은 높지만, 던전앤파이터라는 단일 게임의 매출이 절반을 차지하는 등 의존도가 너무 커 10조 원대 자산을 투자하기엔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김정주 대표 입장에서 매각 동기가 줄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위정현 학회장은 “최근 넥슨이 출시한 ‘트라하’가 흥행 조짐을 보이고 중국에서도 신규 판호가 나오는 등 규제 완화 조짐을 보인다”며 “중국 규제 강화에 대비해 당장 넥슨을 매각하려던 김 대표의 머릿속은 한층 복잡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마음에 드는 인수 후보나 원하는 가격이 나오지 않는다면 매각 자체를 포기할 수 있다는 얘기다.
넥슨 내부와 국내 게임업계, 국민 여론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점도 김 대표의 고민거리다. 김정수 명지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는 “겉으로는 카카오나 넷마블이 인수에 앞장서서 국내 게임산업의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고 주장하겠지만, 양사 모두 단독 인수가 어려워 재무적 투자자들과 결합할 수밖에 없다”며 “투자자들의 입김이 커지면 산업적 고민과 넥슨 내부 입장보단 투자자들의 단기 이익을 위한 재무적 판단에 따라 넥슨이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매각하더라도 사회적 비판과 이슈에 직면할 수 있어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앞서 김정주 대표는 올 초 “넥슨을 더욱 경쟁력 있는 회사로 만드는 여러 방안을 놓고 숙고 중”이라며 “우리 사회로부터 받은 많은 혜택에 보답하는 길을 찾겠다”고 밝혔다. 본인이 언급한 내용의 정반대 결론이 날 수 있는 상황에서 매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김정수 교수는 “김 대표가 이런 우려를 막고자 단기 이익을 위한 분리매각 등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매각하려 한다면 투자자들이 15조 원이란 가치를 쳐줄지 의문”이라고도 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
강력 인수후보 텐센트 막판 포기 왜? ‘손 안대도 코 풀 수 있다’ 텐센트가 본입찰에 빠진 이유는 직접 참여하지 않아도 넥슨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텐센트가 전면에 나서지 않더라도 넷마블·카카오의 주요주주로서 인수 이후 넥슨에 간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배후에서 인수 자금줄 역할을 하면서 넥슨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다.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참여하지 못했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 정부가 게임을 유해산업으로 보고 강력한 규제를 가하는 상황에서 텐센트는 게임산업의 큰손인 데다 한국에 로열티 등으로 1조 원가량의 돈을 지불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큰돈을 들여 넥슨 인수에 나서면 중국 정부의 심기를 건드려 불똥이 튈 수 있다. 한국에 만연한 ‘차이나 포비아(중국 공포증)’ 현상으로 반중 감정이 일면 정치 이슈로 번질 수 있어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매년 지출하는 던전앤파이터 로열티를 생각하면 인수하는 게 맞지만 10조 원대 입찰가는 너무 높아 중국 정부의 눈치가 보이는 데다 섣불리 나섰다가 한국 반중 감정에 불을 지필 수 있어 전면에 나서지 않고 관망하고 있다”고 봤다. 텐센트가 인수에 참여하지 않아도 넷마블과 카카오 두 기업 중 하나가 넥슨을 인수하면 중국의 국내 게임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더 커진다. 현재 텐센트는 카카오와 넷마블의 2대, 3대 주주이고, 넷마블은 엔씨소프트의 3대 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두 회사 중 어느 곳이라도 인수에 성공하면 우리나라 게임사 ‘빅쓰리’라 불리는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에 미칠 텐센트의 영향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김예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