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일본은 과학분야에서만 2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눈에 띄는 건 그 가운데 교토대 졸업생이 7명으로, 선두라는 점이다. 참고로 라이벌 도쿄대는 5명이다. 교토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야마나카 신야 교수(2012년 노벨 의학생리학상 수상) 등을 더하면, 교토대 관련 수상자는 무려 10명에 이른다. 유독 교토대 출신이 노벨상에 강한 이유는 뭘까.
교토대 졸업식 학생들의 코스프레는 수십 년째 이어져오는 전통이다. 사진=트위터
전문가들은 교토대 특유의 ‘자유분방한 학풍’을 비결로 꼽는다. 교토대는 엄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졸업식만 보더라도 학생들은 졸업가운을 입지 않고, 온갖 치장을 하고 나타난다. 마치 코스프레 현장을 방불케 하는데, 졸업식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올 때마다 “기발하다” “유쾌하다”는 반응이 줄을 잇는다.
학생들만큼이나 교수진도 개성이 뚜렷하다. 여기에 대학 측도 적극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부터 교토대는 색다른 시각을 지닌 연구자를 ‘괴짜’로 칭하고, 그들이 연구에 대해 소개하는 일명 ‘괴짜강좌’를 개설 중이다. 또한 올 4월에는 강좌의 일부를 정리한 책이 발매돼 누계 2만 5000부 이상이 팔리는 등 베스트셀러에 등극하기도 했다.
일반적이지 않는 사람, 요컨대 ‘괴짜’ ‘별종’은 사실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가 많다. 하지만 교토대에서 ‘헨진(變人·이상한 사람)’이라는 말은 칭찬으로 통한다. 일본 매체 ‘주간포스트’에 따르면, 실제로 교토대는 학생들에게 ‘괴짜가 세상을 바꾼다’며 장려하는 분위기다.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괴짜’야말로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진실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실패를 반복해도 ‘어라, 그거 재미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면 교토대 측은 허용해준다.
간혹 연구에 푹 빠져 사는 열정은 세상으로부터 ‘별종’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이와 관련, ‘주간포스트’는 ‘교토대 교수들의 별난 연구’를 선정해 관심을 모았다. 천재와 괴짜는 종이 한 장 차이다. 혹자는 ‘쓸데없는 연구를 한다’며 코웃음을 칠 수 있지만, 반대로 이 기괴한 연구들이 또 다른 혁신을 가져올지도 모를 일이다.
교토대 홈페이지 야마기와 총장의 메시지. 애니메이션으로 재밌게 꾸며져 있다.
#고릴라 세계로 유학을 떠난 교수
교토대학교 총장에 재임 중인 야마기와 주이치도 ‘별종’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1975년 교토대학 이학부를 졸업한 그는 혼자 아프리카에서 고릴라 생태연구를 시작했다. 무려 10개월에 걸쳐서 고릴라와 함께 생활한 적도 있다고.
야마기와 총장은 “이른바 고릴라의 세계로 유학을 떠난 것뿐이다. 고릴라 무리에 들어가 진짜 고릴라가 되어 일과를 보냈다”고 전했다. 당연히 고릴라와는 일본어가 아니라 ‘웃’ ‘앗’ 같은 소리로 커뮤니케이션을 취했으며, 그날의 기록을 영어로 쓰고 잠드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래서 일본에 돌아왔을 땐 “왠지 모국어가 낯설게 느껴졌다”고 한다. 심지어 거울도 전혀 보지 않아서 오랜만에 자신의 얼굴을 보고 ‘목이 길고 이상한 얼굴이네’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귀국 후 친한 친구와 술을 마셨을 때의 일이다. “너 아까부터 계속 ‘웃’ ‘앗’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는 고릴라에 동화돼 있었다. 야마기와 총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고릴라의 세계에 흠뻑 빠져 지냈다. 그쪽에서 인간 세계를 바라봄으로써 둘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를 파악한다. 이것이 내 연구 방식이다. 인간이 아닌 고릴라를 연구하는 것은 결국 인간을 객관적으로 알아가는 과정으로도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가와카미 교수. 사진=주간포스트
정보학연구과의 가와카미 히로시 교수도 참 별스러운 인물이다. 가와카미 교수는 ‘불편익’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여기서 불편익이란 불편하기 때문에 얻는 이익을 말한다. 가령 계단이나 단차가 있는 시설 등 ‘배리어프리(barrier free·무장애)’에 역행하는 설비를 굳이 고령자에게 사용하게 함으로써 ‘노화를 방지하겠다’는 생각도 불편익에서 나온 발상이다.
불편한데 인기가 있다? 세상에는 의외로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 취미가 등산인 사람을 떠올려보자. 등산은 체력도, 시간도 만만치 않게 투자해야 한다. 이런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개발한다면 어떨까. 땀을 흘리지 않고 정상까지 도착하는 에스컬레이터다. 하지만 이런 ‘편리함’은 인기를 끌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다리로 직접 산을 오르는 ‘불편함’이야말로 등산의 묘미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공학도는 효율성과 편리함을 추구한다. 그러나 가와카미 교수는 “세상에는 불편해서 오히려 좋은 것들이 있다”고 말한다. 리모컨키보다 열쇠를 꽂는 안심감에 더 주목하는 스타일이다. 재미있는 실험장치도 개발했다. 예컨대 스마트폰 길안내 기능을 상쇄시키는 내비게이션이다. 내비게이션은 편리하지만, 기기에 의지하다보면 길을 외우지 않게 된다. 그래서 역발상으로 한번 지나친 적이 있는 길은 점점 희미해지는 안내기를 개발했다. 만약 3번 지나간 길이라면 하얗게 된다.
“길이 없어지니 확실히 기억하자는 심층심리가 작용해 어느 순간 길을 외우게 된다. 비슷한 발상으로 ‘하얗게 변하는 전자사전’도 기획했다. 이쪽은 상품화 직전까지 갔지만, 너무 불편해 팔리지 않을 것 같다며 결국 무산됐다(웃음).”
다만 그가 개발한 제품이 교토대학 생협 매점에서는 불티나게 팔리고 있단다. 바로 ‘소수 눈금자’다. 자에는 2, 3, 5, 7, 11과 같은 소수만 표시돼 있다. 예를 들어 4cm 선을 긋기 위해서는 ‘7-3’처럼 소수의 차를 이용해야 한다. 그 불편함이 뇌를 활성화시킨다고 한다.
사카이 교수가 개발한 프랙탈 차양. 사진=주간포스트
사카이 교수. 사진=주간포스트
‘괴짜’하면 인간·환경학연구과의 사카이 사토시 교수도 빼놓을 수 없다. 전공은 지구유체역학. 2006년 그가 개발한 ‘프랙탈 차양’은 제법 널리 알려져 있다. 숲의 나뭇잎을 본뜬 차양으로 햇빛을 차단하면서도 적외선을 방출하지 않는다. 지금은 각지 도시계획에서 응용되고 있는 제품이다.
사카이 교수는 연구방법도 독특하다. 첨단 장치를 활용하지 않고, 직접 홈센터를 뒤져 장치를 만든다. 그에 따르면 “연구가 너무 새로운 나머지, 필요한 부품이나 관측 장치가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교수는 홈센터 직원 이상으로 DIY 자재에 관해선 전문가다.
접착제가 붙지 않는 대표적인 소재 폴리프로필렌을 붙이기 위해선 모든 홈센터를 살펴야 했고, 드디어 고정시킬 수 있는 ‘만능밴드’를 발견했을 땐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만끽했다”고 그는 전했다. 또 “차양에 쓰인 플라스틱시트는 특수 장치가 아니라 가정에서 쓰는 핫플레이트를 활용해 모양을 변형시켰다”고 한다.
교토대학 교수들의 매력을 묻자, 사카이 교수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다 보면 지금까지와 다른 발상을 할 수 없다. 지난해 노벨생리학상을 수상한 혼조 다스쿠 교수도 ‘학문의 상식’을 의심해왔기 때문에 획기적인 면역세포 연구로 이어졌다. 나 역시 유행을 좇아 연구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을 할 뿐이다. 그런 ‘괴짜’를 키우는 토양이 교토대에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