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 고유정 씨가 지난 4일 오전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을 나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제주지방법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 출신 고유정 씨(36)는 동갑내기 강 아무개 씨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부부는 아이 문제로 갈등을 겪다 2017년 성격 차이를 이유로 협의 이혼했다. 이후 양육권을 가진 고 씨는 아이를 키우다 재혼하며 친정에서 주로 양육을 맡았다. 고 씨는 재혼한 남편이 전처 사이에서 낳은 의붓아들을 키우며 시가에서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고 씨의 주된 생활권은 제주도였지만 남편이 청주에서 일자리를 구해 제주와 청주를 오간 것으로 전해진다.
강 씨는 매달 양육비 40만 원을 보내고, 잠들기 전 아들 사진을 볼 정도로 부정이 컸다고 한다. 하지만 고 씨는 양육권을 이유로 2년 동안 강 씨와 아들을 만나지 못하게 했다. 이에 강 씨는 가사소송을 제기해 지난달 초에야 면접교섭권을 얻었다. 가까스로 아들을 만나게 된 강 씨는 기대감이 상당히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강 씨가 탄 차량의 블랙박스에서는 아들을 만나러 간다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부자의 재회는 5월 25일에 성사됐다. 고 씨와 강 씨, 아들 이렇게 세 사람은 제주도 서귀포시의 한 테마파크에서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후 고 씨는 강 씨와 제주시 조천읍의 한 무인펜션으로 이동했다. 펜션으로 출발하기 전 고 씨는 강 씨에게 자신의 차량으로 이동할 것을 제안했다. 강 씨가 고 씨의 차에 옮겨 타는 모습이 한 마트 CCTV에 포착됐다. 이들이 펜션으로 들어가는 모습 역시 인근 CCTV에 찍혔다.
하지만 사흘 뒤인 27일 펜션을 나선 사람은 고 씨 혼자였다. 이날 낮 12시경 고 씨가 큰 가방으로 보이는 물체를 들고 펜션을 나서는 모습이 확인됐다. 강 씨의 행방이 확인된 것은 펜션에 출입하는 데까지가 전부다.
고 씨는 범행이 우발적이었다고 주장했다. 경찰 조사에서 고 씨는 “아들과 강 씨와 함께 만났고, 펜션으로 이동했는데 아들이 자는 사이 전남편을 살해했다” “셋이 파티를 위해 수박을 자르다 전남편과 문제가 생겨 다퉜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등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경찰의 CCTV 분석에 따르면 아들이 펜션을 드나드는 장면이 확인된 바 없어 고 씨 진술의 신빙성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또 고유정은 남편을 만나기 전에 칼과 톱 등의 흉기를 준비하고, 휴대전화로 ‘니코틴 치사량’ ‘살해도구’ 등을 검색해 범죄를 계획한 정황이 포착됐다. 범행 후에는 강 씨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자신의 번호로 문자를 발송해 범죄를 은폐하려고 했다. 고 씨는 전남편인 양 자신의 번호로 ‘내가 그런 행동을 해서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고 씨가 펜션을 나선 27일 이후 동선은 파악되지 않았다. 다만, 고 씨는 28일 제주항에서 완도행 여객선을 타기 전 대형마트에 들려 종량제 봉투 30여 장과 비닐 장갑, 여행용 가방 등을 구매했다. 이후 배 안에서 강 씨의 시신을 담은 것으로 추정되는 봉투를 여러 차례 바다에 버리는 장면이 확인됐다.
육지에 도착한 고 씨는 곧장 청주 집으로 가지 않았다. 28일부터 전남 무안과 영암, 경기도 김포 등을 떠돈 고 씨는 31일에서야 청주 소재의 자택으로 돌아갔다. 경찰은 고 씨가 미처 처리하지 못한 사체를 여러 곳에 유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수사 내용을 종합하면 경찰이 고 씨가 시신을 유기한 장소로 확인한 곳은 제주항~완도항 항로, 전남 완도군 바다, 경기도 김포시 아버지 소유의 집 등 3곳이다. 하지만 고 씨가 시신유기에 사용한 종량제 봉투를 30장이나 구매한 점, 전남 일대 등을 떠돈 점에 비춰 유기 장소는 더 늘어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유가족은 강 씨가 귀가하지 않는다고 신고했고, 경찰은 5월 31일 고유정의 충북 청주시 자택에서 범행도구로 추정되는 칼과 톱 등 흉기를 발견했다. 고 씨는 6월 1일 청주의 자택에서 긴급체포됐다. 4일 제주지방법원은 고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살해, 사체 손괴와 유기, 은닉 혐의가 적용됐다.
경찰은 CCTV 분석과 진술을 통해 고 씨가 시신을 바다와 육지 등에 버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강 씨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프로파일러를 대거 투입했으나 고 씨의 범행동기조차 파악되지 않았다. 범행 전후 고 씨의 행적도 오리무중이다. 경찰은 살해 시점과 범행 직후 고 씨의 동선을 밝히지 않고 있다.
유족들은 엄정한 법의 심판을 촉구하며 “고 씨에게 사형을 내려달라”는 국민청원을 했다. 한편, 제주지방경찰청은 지난 5일 오전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살인과 사체손괴, 사체유기, 사체 은닉 등의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고 씨의 신상이 공개되며 온라인에서는 그 아들과 가족들의 사업장, 직업, 사진 등 민감한 신상이 유포돼 2차 가해 우려도 나오고 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