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유니클로 명동중앙점 매장 전경. 일본 SPA 브랜드 유니클로가 4년 연속 1조 원 이상을 기록하면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고성준 기자
의류업계 불황에도 일본 패션 인기는 고공행진하고 있다. 대표 일본 SPA(제조 일괄 유통화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무인양품 매출이 지속 성장하는 데 이어 니코앤드, GU(지유) 등 다양한 브랜드가 국내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유니클로에 따르면, 유니클로는 2005년 한국 상륙 후, 10년 만에 ‘4년 연속 연 매출 1조 원’을 달성했다. 2015년에 매출액 1조 1169억 원을 기록하더니 3년 동안 매년 매출액이 올랐다. 유니클로의 2018년 국내 매출액은 1조 3732억 원이다. 4년 연속 1조 원 이상 매출을 달성한 단일 패션 브랜드는 국내에서 유니클로가 유일하다.
또 다른 일본 브랜드 무인양품도 약진하고 있다. 무인양품의 2018년 매출은 전년보다 25.8% 늘어 1510억 원을 기록했다. 2015년 561억 원, 2016년 786억 원, 2017년 1200억 원으로 3년 만에 매출이 약 세 배가 됐다. 이밖에 니코앤드와 유니클로 자매 브랜드 지유 등 다양한 일본 SPA 브랜드가 한국에 진출해 세를 넓히고 있다.
서울 중구 무인양품(MUJI) 영플라자점 매장 전경. 일본 브랜드 무인양품이 한국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넓히고 있다. 고성준 기자
일본 SPA 브랜드가 국내 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이유는 가성비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제조와 유통을 결합한 수직 계열화 시스템으로 가격은 낮추고, 전 연령층이 찾는 보편적이고 기능적인 상품을 개발해 편리성을 높였다. 유니클로는 히트텍과 에어리즘, 초경량 패딩 등 기능성 상품을 저가에 제시해 남녀노소 모두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무인양품은 의류를 뛰어넘어 가구, 생활용품, 식품 등 생활 전반에 필요한 품목을 제공한다. 조정윤 세종대 패션비즈니스전공 주임교수는 “일본 SPA 브랜드는 부담없는 가격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에어리즘·히트텍 등 현 시대 소비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기능성 제품을 개발해 고성능까지 갖추는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도 ‘미니멀리즘(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경향)’이라는 국내 소비 트렌드와 잘 맞아떨어졌다. 장식과 무늬를 간소화한 디자인으로 유행을 타지 않고 어디에든 잘 어울린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주요 소비계층으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는 브랜드보다 가성비를 따진다”며 “여기에 간소한 미를 추구하는 미니멀리즘 트렌드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일본 브랜드가 한국 시장을 점령하는 사이 국내 토종 SPA 업계는 불황의 늪에 빠졌다. 국내 SPA 브랜드 1위인 이랜드월드 스파오의 지난해 매출은 3200억 원으로 유니클로 매출에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2·3위인 신성통상 브랜드 탑텐과 삼성물산 패션부문 에잇세컨즈 매출도 각각 2000억 원대와 1800억 원대에 그친다.
서울 중구 스파오 명동점 매장 전경. 스파오 등 국내 SPA 토종 브랜드들이 해외 브랜드인 유니클로, 무인양품의 공세에 밀려 경쟁력을 잃고 있다. 고성준 기자
전문가들은 국내 토종 SPA 브랜드가 해외 업계에 밀리는 이유는 저가 물량 공세로 대응하는 데 그칠 뿐 특유한 콘셉트가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조정윤 세종대 교수는 “자라는 유행하는 옷을 가장 빠르게 내놓기로 유명하고 에이치엔엠은 해외 유명 디자이너와 컬래버레이션으로 화제를 모은다”며 “국내 브랜드들은 단순히 제품이 다양하고 저렴하다는 정도일 뿐 차별화된 브랜딩으로 포지셔닝하는 데 미흡했다”고 봤다.
국내 소비자들의 패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국내 브랜드들은 국내 트렌드를 가장 먼저 파악하고 상품에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을 활용해, 과거엔 유행 상품을 빠르고 저렴하게 선보였다. 소비자들도 이에 호응했다. 반면 지금은 속도와 가격경쟁력만으로는 고객을 끌어당기기 어렵게 됐다. 국내 소비자들에게 해외직구라는 새로운 문이 열리면서 패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구매 기회가 다양해진 것. 조 교수는 “제대로 된 브랜딩과 포지셔닝 없이는 앞으로도 국내 SPA 업계 불황은 지속될 것”이라며 “대폭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한류 열풍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해외 시장을 먼저 공략하라는 것. 국내 시장은 이미 해외 SPA 업계에 잠식당했으니, 방어하는 데 급급하기보단 해외로 발을 넓히라는 주장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삼성전자가 세계 시장을 보고 제품을 개발하듯 패션업계도 시야를 확장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기 시작하면 국내 소비자들도 눈을 돌릴 것”이라며 “방탄소년단(BTS) 등 한류스타와 컬래버레이션해 한류에 열광하면서도 개성을 강조하는 전 세계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
화장품 저물고 패션·음식 뜬다 우리나라를 찾는 해외 관광객들의 주 소비 제품군이 화장품에서 패션과 음식으로 옮겨가고 있다. 서울시와 서울관광재단이 외국인 관광객 6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8 서울시 외래관광객 실태조사’에 따르면, 패션 상품인 의류(56.4%), 신발류(26.2%), 액세서리(14.8%) 구입이 전년보다 각각 1.9%, 0.6%, 3.1% 늘었다. 화장품·향수(69.8%)는 여전히 가장 많이 구매하는 품목이었지만, 구입률은 전년보다 6.4% 줄었다. 한식 수요도 증가했다. 외국인 관광객의 식도락 여행이 전년보다 7.6% 높은 81%를 기록했다. 식도락 여행을 가장 좋았던 활동으로 꼽은 외국인도 7% 늘어난 66.1%로, 활동 분야 가운데 증가 폭이 가장 컸다. 소비 패턴의 변화는 관광 트렌드 변화와 한류 열풍으로 한국을 직접 체험해보려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요 유명 관광지들만 패키지 형태로 방문하는 단체관광객들보다 개별관광객들이 많아지면서 골목골목 다니며 실제 한국인들의 생활을 경험하려는 것. 김재호 인하공전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현지 사람과 패션·음식을 접하면서 생활문화를 체험하려는 라이프스타일 관광이 세계적 트렌드”라며 “예전엔 면세점에서 화장품을 구매하는 위주였다면 지금은 동대문·남대문 등 지역 전통시장에서 음식을 맛보고 옷을 산다”고 했다. 한류 영향도 크다. K-팝과 한국드라마 등 대중문화에 대한 수요가 일상 생활문화에서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 최경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은 “드라마나 예능에서 보이는 ‘먹방’과 패션이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음식과 패션을 소비하고 싶게 만드는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예린 기자 |